고법, 뇌파계 쓴 한의사 "면허외 의료행위라 할 수 없어"
한의대 교과 수록·국시 출제...전문지식·기술 필요치 않아
서울고등법원은 19일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치매 등을 진단한 한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한의사면허 자격정지처분 취소 항소심(2013누50878)에서 1심 판결을 취소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A씨에게 내린 한의사면허 자격정지처분도 취소했다.
뇌파계(Electroencephalograph)는 대뇌 피질에서 발생하는 전압파(뇌파)를 검출해 증폭을 기록하는 의료용 측정장비. 정상인의 경우는 거의 주기적인 파형을 나타내지만 뇌종양·간질·등 뇌질환이나 의식장애가 있는 경우 이상 파형을 나타낸다.
A씨는 지난 2010년 9월부터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 여부를 진단했다. 11월 모 경제신문은 A씨가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 여부를 진단하는 내용의 기사와 사진을 게재했다.
관할 보건소는 A씨의 뇌파계 진료가 면허된 것 외의 의료행위이며, 의료광고 심의 없이 기사를 게재했다는 이유로 3개월 업무정지 처분을 했다. 보건복지부도 같은 이유로 3개월의 한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을 했으나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자격정지 기간을 1개월 15일로 낮췄다.
A씨는 뇌파계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다기능전자혈압계나 귀적외성 체온계에 속해 있는 위해도 2등급인 점, 한방신경정신과 진료를 하면서 짧은 기간 동안 보조적으로 사용한 점, 한의학에서도 뇌파를 연구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2013년 10월 1일) 재판부는 한의사의 주장은 모두 이유없다며 기각했다.
하지만 2심은 1심과 의견을 달리해 "뇌파계를 파킨슨병·치매 진단에 사용한 행위는 한의사로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구 의료법은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된 의료행위 내용을 정의하거나 구분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면서 대법원 판례(2014년 2월 13일 선고 2010도 10352판결)를 인용, "한의사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의료기기나 의료기술 이외에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 개발·제작된 의료기기나 의료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이러한 법리에 기초하여,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의료기기 등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이 있는지, 의료기기 등의 개발·제작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한 것인지,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의 응용 또는 적용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의료기기 등의 사용에 서양의학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아 한의사가 이를 시용하더라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단지 의료기기 등의 개발·제작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한의사가 해당 의료기기 등을 진료에 사용한 것이 그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를 한 것이라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는 대법원(2014년 1월 16일 선고 2011도16649)과 헌법재판소(2013년 2월 28일 선고 2011헌바398/2013년 12월 26일 선고 2012헌마551) 결정도 인용했다.
재판부는 "한방신경정신과 영역에서는 뇌를 골수가 모이는 곳으로, 뇌수를 뇌 기능의 물질적 기초로 파악하고 있으며, 뇌파는 이러한 뇌의 활동에 의한 미세전류의 변화를 측정하는 것으로 기와 형의 개념에 비유해 기의 승강출입과 경락의 변화에 따른 결과로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복진 또는 맥진이라는 한의학적 진찰법을 통해 파킨슨병 등을 진단함에 있어서 뇌파계를 병행 또는 보조적으로 사용한 것은 절진의 현대화된 방법 또는 기기를 이용한 망진이나 문진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한의대 교과과정 중 한의신경정신과학에서 뇌의 구조와 기능 등 기초적 이론부터 뇌파촬영 기법, 뇌파의 종류 및 정상·이상뇌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점, 한의대 진단학 교재의 하나인 <생기능의학>에서 뇌파(뇌전도)에 대한 개요·측정방법·분석방법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는 점, 2012년 한의사 국가시험에서 뇌파기기 항목이 1문제 출제됐고, 총 60개 영역 중 2개 영역에서 뇌파기기 항목이 평가 항목으로 포함돼 있는 점, 의사국시의 경우 뇌파검사 능력에 대한 평가는 필기시험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을 뿐 특별히 임상경력이 요구되지 않는 점 등을 제시하며 "한의사도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판단지표 중 하나로 충분히 뇌파계를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영상의학과에서 취급하는 X-ray·CT·MRI·초음파 기기 등의 경우, 이를 설치·등록하기 위해서는 특수의료장비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 제2조 제2항에 따라 영상의학과 전문의자격이 있는 의사를 고용할 필요가 있는데 실질적으로 한의원은 이 기기들을 설치할 수 없고, 또한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에서 의료기사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지도하에서만 진료 또는 이화학적 검사에 종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한의사의 지도를 금지하는 반면에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을 금지하는 어떠한 규정도 두고 있지 않다"고 의료법에 별도의 규제가 없다는 점을 들었다.
"뇌파계는 안압측정기·자동안굴절검사기·청력검사기 등과 같아 측정결과가 자동으로 추출되는 것이 아니다"는 보건복지부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자동으로 추출되는 검사결과에는 뇌파 데이터를 정량적인 방법으로 분석하고 표준화해 파형별로 정상 뇌파·검사대상자의 뇌파·두 뇌파 간의 차이를 시각화한 뇌지도 뿐만 아니라 두뇌 부위별 뇌파의 저하·정상·항진 여부와 검사 대상자의 기능·심리상태·통증 등과 같은 분석결과도 포함하고 있다"며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재판부는 "검사의 시행자가 추가로 판독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X-ray·CT·MRI·초음파 기기와 같이 전적으로 의사의 판독에 의해서만 결과가 추출되는 것과 달리 자동 추출되는 측정결과를 활용할 수 있고, 뇌파계의 사용에 특별한 임상경력이 요구되지 않으며, 위해도도 높지 않다"면서 "서양의학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점에 비추어 보면 한의사가 이를 사용하더라도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는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 보건소의 경고처분에 대해서도 "경고처분을 할 수 있다고 정한 구 의료법이나 시행령상의 근거가 없다"며 "이 사건 경고처분은 법령상 정한 처분이 아니라 행정조직 내부에서 사무처리기준으로 제정한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에 의해 정한 것으로서 일반 국민이나 법원에 대한 대외적인 구속력이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