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숭덕 대한의료법학회장 "의료분쟁·의료제도·의료법 연구"
환자·의사·사회 '만남' 통해 공평 분담제도 변화 이끌어 내야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말은 요즘에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법을 몰랐다고 죄를 안 묻나요. 법을 잘 알아야 낭패를 면할 수 있습니다."
올해부터 대한의료법학회를 대표하고 있는 이숭덕 신임 회장(서울의대 교수·법의학교실)은 "대한의료법학회는 의료법학에 관심이 있는 법학계·법조계·의료계 인사들이 함께 모여 월례학술발표회·세미나·워크숍·학술대회 등을 통해 의료분쟁·의료제도를 비롯한 의료관련 법현상을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순수 학술단체"라고 설명했다.
1994년 법학계·법조계·의학계 인사를 중심으로 출범한 의료법학회는 20년 넘게 의학계와 법학계의 이해와 공감대를 넓히는 가교 역할을 해 왔다.
"의학과 법학이 각각 전문 영역이다보니 용어도 생소하고, 이질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의료사고나 의료분쟁을 비롯해 보건의료관련법 영역에서 의학과 법학이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 회장은 "의료인과 법학자·법조인이 함께 모이는 의료법학회는 공동 관심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의학과 법학의 '통역사' 역할도 하고 있다"며 "의료법학 발전을 도모하면서 의료와 복지 제도를 개선할 수 있도록 법령 개정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어떤 행위로 인해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 '인과관계'입니다. 의료행위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비의료인이 어떤 원인으로 인해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인과관계를 명확히 특정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때로 의료 현실과 맞지 않거나, 과실과 인과관계를 뭉뚱그려 판단하거나, 판결문을 옮기는 과정에서 의미하고자 하는 게 잘못 전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료와 법이 더 자주 만나 대화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언급한 이 회장은 "의료계 역시 자신의 분야만 들여다보다 사회라는 큰 숲을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며 "방어적인 대응만 하다가는 고립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의료계도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법·의료·사회 제도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잘못된 제도로 인한 부담을 환자에게 미룰게 아니라 환자·의사·사회가 공평하게 분담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속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부터 시작해야겠죠."
이 교수는 "의대 보건의료법률 강의가 몇 점짜리 시험 점수를 얻기 위한 강의가 아니라 의료사고를 예방하고, 의료윤리에 대해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주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며 교육자로서의 입장도 내비쳤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과 관련된 사망진단서에 대해서도 말을 꺼냈다.
"사망진단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망의 원인을 의학적으로 설명한 '사망원인'과 사망을 규범적·법률적으로 판단한 '사망의 종류'입니다. 결국 모든 책임이나 잘못이 의사에 있다기 보다는, 수사기관이나 법조계 등 사망진단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는지 여부도 매우 중요합니다."
"사망진단서를 작성하는 주치의가 규범적·법률적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역량을 갖추든지, 어렵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야 한다"고 지적한 이 회장은 "결국 의사의 사망진단서를 포함해 사건 전체와 연관된 증거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결론을 내리는 것은 진단서를 활용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언급했다.
"의료인들이 대한의료법학회를 비롯해 법·제도·사회 등 여러 영역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참여해서 의료계의 입장도 이야기 하고, 서로 교류하다보면 이해의 폭도 그만큼 넓어지지 않겠어요."
이 회장은 1987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병리과에서 전공의과정을 거쳐 1992년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의대 졸업과 함께 법의학 분야에 입문, 30년째 법의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2012부터 서울의대 법의학교실 주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DNA지문연구회장을 역임했다. 2015년 제11회 과학수사대상을 받았다.
한국 법의학을 개척한 도상(度想) 문국진(92) 교수의 영향을 받아 법의학자의 길을 걷게 됐다는 이 회장은 "법의학 전문가가 사건 현장을 주도하는 한국형 검시제도를 만들어 더 이상 억울한 죽음, 원인 불명 사건이 벌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법의학 발전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