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정신질환자·투석환자 '정액수가' 폐지 요구
법조계도 "의료급여 환자 권리 침해...위헌소지"
의료급여환자 중 유독 정신질환자와 투석환자에게만 적용되는 '정액수가'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정신질환자나 투석환자의 경우 처음 내원한 병원에서 다른 질병 치료를 동시에 받는 경우가 많은데, 정액수가로 묶여 있다보니 병원 입장에선 정성껏 진료하고도 정당한 비용을 받지 못한다. 병원이 손해보지 않기 위해선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켜야 하는데, 환자의 극심한 불편과 진료비 부담 때문에 주저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정신질환자의 경우 올해 3월 입원수가가 인상됐고, 외래 정액수가도 행위별수가로 변경돼 한시름 덜게 됐지만 투석환자는 다르다.
김성남 대한신장학회 보험법제이사에 따르면 정액수가에는 두가지 문제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투석 행위자체가 적정 수가가 아니라는 점과 관련 보건복지부 고시에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만성신부전증환자 외래 혈액투석 수가는 의료급여기관 종별과 무관하게 1회당 14만6120원이다. 10년동안 변화가 없다가 2014년 딱 한차례 인상됐다.
김 이사는 "인상된 수가 수준도 적정하지 않다. 식대수가 처럼 환산지수를 통해 매년 자동인상 기전이 있어야 한다. 일률적인 수가로 묶어버리면 인상 주기가 너무 길다"고 지적했다.
2013년 심평원이 시행한 의료급여 혈액투석 원가분석에 따르면 정액수가는 최소 2만원 인상돼야 한다. 보건복지부도 2만원 인상을 제시했으나 최근 기획재정부는 건당 1만원 인상하는 방안을 통과시켰다.
김 이사는 "2만원 인상안으로 환원해야 한다. 향후 물가·임금상승·의료신기술 도입 등을 고려한 정기적인 정액수가 조정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급여 정액수가 관련 고시 내용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현행 고시는 '외래 1회당 혈액투석 정액수가에는 진찰료, 혈액투석수기료, 재료대, 투석액, 필수경구약제 및 Erythropoietin제제 등 투석 당일 투여된 약제 및 검사료 등을 포함한다'고 돼있다.
김 이사는 "정액수가는 해당 의료행위의 평균 비용 및 재료비, 인건비 등 평균을 책정한 것인데 또 다른 의료행위가 정액수가에 적용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며 "혈액투석고 관련 있는 약제 및 검사로만 한정하고, 이외 행위에 대해서는 별도 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조계도 의료급여환자 혈액투석 정액수가 제도가 위헌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변호사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 하에서 진료수가(요양급여비용)는 진료에 소요된 약제 또는 재료비를 별도로 산정하고 의료인이 제공한 진료행위마다 일정한 값을 정해 의료비를 지급하는 행위별수가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행위별수가는 각 행위별 상대가치 점수에 점수당 단가를 곱한 금액으로 결정되는데 여기서 점수 당 단가는 매년 의료계와 건강보험공단의 협상에 의해 인상되기 때문에 인상분만큼은 진료수가가 매년 올라간다.
하지만 정액수가는 진료행위와 거기에 소요되는 치료재료와 약품 등을 일체로 묶어 일정한 금액으로 수가를 매기기 때문에 상대가치점수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현 변호사는 "정부가 정액수가를 변경하지 않는 한, 몇 년이 지나도 정해진 수가만을 받아야 한다"면서 "물가 인상, 새로운 의약품이나 치료재료 등장 등과 같은 경제지표나 의료환경의 변화를 전혀 반영할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정액수가제는 의료급여환자 중에서도 정신질환자와 혈액투석환자들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해서만 정액수가를 적용해야 할 합리적 근거도 찾기 어렵다"며 "더구나 정액수가제는 국민건강보험법이나 의료급여법에 근거가 없이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라 도입됐다는 점에서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난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