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치료해야 할 '질병'...당뇨병·고혈압 등 유발 사망률 높여
소외계층 '사각지대'...비만 캠페인·한국인 임상비만 치료지침 추진
"비만은 체내에 지방조직이 비정상적으로 과도하게 축적돼 건강을 해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주로 중성지방 형태로 과도하게 축적된 지방조직은 당뇨·고혈압·고지혈증·심뇌혈관질환·암 등을 일으키는 만성질환의 주된 원인입니다."
1일 제23회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한 김민정 대한비만연구의사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세계보건기구는 비만을 '치료해야 하는 질병'으로 선포한 데 이어 '21세 신종 감염병'으로 규정했다"면서 "비만은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나 신종 인플루엔자 처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퇴치해야 할 신종 감염병"이라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6년 건강검진을 받은 1454만명의 체질량지수(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 BMI)를 조사한 결과, 518만 명(35.6%)이 BMI 25 이상인 비만인구로 집계됐다. 444만 명은 1단계 비만(BMI 25∼30), 74만 명은 고도비만(BMI 30 이상)으로 분류됐다. 비만인구는 2014년 33.4%, 2015년 34.8%, 2016년 35.6%로 지속해서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국인 3명 중 1명이 비만일 정도로 많다보니 TV 채널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건강보조식품·다이어트 제품·헬스 분야 광고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범람하는 비만 광고가 과학적으로 효과가 있는지, 안전한지 제대로 검증을 하지 않은 채 소비자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김 회장은 "10조 원 규모로 추정되는 비만시장에서 의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비만 치료 약물·수술 등 의료분야는 1조 9000억 원에 불과하다"면서 "비만 환자들이 제대로 된 관리와 예방·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만의 원인은 물론 치료법까지 확립돼 있음에도 정작 효과가 불분명한 광고에 현혹되다보니 체중 관리에 실패하기 십상이다. 국가적 관리와 예방·치료 체계 역시 부실한 까닭에 사회경제적 비용도 막대한 실정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건강수명 향상을 위한 보험자 비만관리사업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서는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2006년 4조 7654억 원에서 2015년 9조 1506억 원으로 약 2배 늘었다.
9조 1506억 원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의료비 58.8%(5조 3812억 원), 조기사망액 17.9%(1조 6371억 원), 생산성 손실액 14.9%(1조 3654억 원), 간병비 5.3%(4864억 원), 교통비 3.1%(2804억 원) 등이다.
김 회장은 "비만은 다른 질환과는 달리 전체 치료의 80∼90%를 개원가에서 맡고 있다"면서 "비만연구의사회는 학술대회·워크숍·심화아카데미를 열어 비만 진료를 맡고 있는 회원들이 체계적으로 임상과 이론을 겸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만연구의사회는 치료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학술 활동과 함께 '한국인의 임상비만 치료지침'을 만들기 위해 전문가 그룹을 구성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개원가 정통 비만학회로서 20년 가까이 축적한 임상 자료와 국내외 비만치료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인에 적합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계획입니다."
'비만은 질병이다'를 주제로 2013년부터 펼치고 있는 대국민 인식 전환 캠페인에 '비만치료는 의사에게'를 추가해 환자들이 제대로된 비만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할 방침이다.
특히 2014년부터 펼치고 있는 저소득층 비만 환자를 위한 사회공헌 활동(비만 제로 행복 더하기 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할 계획이다. 비만연구의사회는 한국의료지원재단의 협조를 받아 일정 소득 이하인 저소득층 비만환자의 신청을 받은 후 비만연구의사회 회원을 주치의로 연결, 6개월 동안 식이·운동요법·상담 치료·약물 치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저소득층은 좋지 않은 식습관과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하고, 높은 치료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의료접근성이 떨어져 스스로 비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비만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고, 당뇨와 고혈압에 시달리면서 제대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없다보니 악순환의 고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보면 저소득층 비만 증가율은 2010년 30.1%에서 2015년 36.7%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상위소득층 비만율은 31.7%에서 30.1%로 줄어드는 반대 경향을 보였다.
김 회장은 안상준·박은정·천지현·황희진 공동연구팀과 함께 지난해 대한임상건강증진학회지에 '한국인 저소득층 비만 환자의 치료 유효성 평가를 위한 전향적 연구'를 통해 "저소득층이 적절한 비만치료를 받으면 체중 감량·허리 둘레 감소뿐 아니라 우울감·섭식패턴에 영향을 줘 장기적으로 사회경제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발표, '비만 제로 행복더하기 사업'의 타당성을 입증했다.
비만연구의사회는 저소득층 비만환자 치료 지원사업 외에 초고도비만 환자를 위한 '엔드볼(위풍선)' 시술 지원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회원들의 재능 기부를 신청받고 있다. 내시경을 이용해 엔드볼을 위 속에 삽입하는 엔드볼 시술은 수술 흉터가 발생하는 위절제술이나 위밴드 수술과 달린 전신마취가 필요없고 부작용이 덜한 최소침습 수술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김 회장은 "비전문가들이 난무하고 있는 다이어트 시장에서 국민이 제대로 된 비만치료를 받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활발히 경제활동에 참여하도록 하자는 것이 올해 비만연구의사회가 추진하는 목표"라면서 "임상과 이론을 겸비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모든 개원의들이 일차의료 현장에서 전문적인 비만 진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안상준 비만연구의사회 정책이사는 "비만을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해 개인의 책임과 부담으로 떠넘기는 것은 문제"라면서 "비만으로 유발되는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사회와 국가가 관심을 갖고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