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의료연구소 "증거인멸 우려 없고, 개연성 이유로 영장 발부"
"왜곡된 의료시스템 개혁해야 제2, 제3 목동병원 사태 막을 수 있어"
명확한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연성을 이유로 3명의 의료진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이대목동병원 사건'에 대한 비판과 의문이 쏟아지고 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경찰은 주사제 준비 단계에서 오염이 역학적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질병관리본부의 개연성 없는 역학조사 결과를 근거로 신생아 사망의 원인을 의료진의 감염 관리 소홀로 단정짓고, 감염 관리 지도·감독 업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면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신생아중환자실 의료진 구속에 대해 바른의료연구소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환자를 살리겠다는 의료인들의 희생으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대한민국 중환자 진료체계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면서 "국민의 생명보호가 최고의 책무인 정부에 비난의 화살이 향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의료진을 희생양 삼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증거인멸' 우려된다는 구속영장 발부 이유 납득할 수 없어
바른의료연구소는 검·경과 법원이 증거인멸을 우려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고 한 데 대해 "병원 대부분이 운영하는 전산의무기록 시스템은 기록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면 흔적이 남게 돼 있다. "이 사건에서도 신고를 받은 경찰들이 중환자실에 바로 들이닥쳐 대부분의 증거들을 압수했고, 의무기록의 수정이나 삭제 시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이 이미 처방 및 간호, 투약 기록 등을 확보하고 있고, 의료진이나 병원 측에서 인멸할 증거가 없음에도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어 구속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고 언급한 바른의료연구소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하는 대원칙에서 의료인들은 제외된 것"이라고 의료인을 다르게 취급한 불공평 문제를 짚었다.
실증적 증거 없이 '개연성' 만으로 구속영장 발부
바른의료연구소는 "감염 및 위생관리 지도·감독 의무 위반과 신생아 사망 간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주사제 준비 단계에서 의료진의 부주의로 시트로박터균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실증적인 증거가 없음에도 법원은 단순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개연성'만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며 명확한 증거없이 의료인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위법하다는 입장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세계 병원에는 원내감염 환자들이 있고, 그 중에는 패혈증에 빠져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 바른의료연구소는 "이 사건처럼 원내감염으로 환자가 사망하면 담당 의료진을 모두 구속한다면 어느 의료진이 구속될 것을 감수하고, 중환자를 치료하려 들겠냐"면서 "필수의료 종사자들이 범법자가 되지 않기 위해 직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촉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사제 나눠쓰라는 심평원 심사기준...왜곡된 의료시스템 누가
바른의료연구소는 이 사건의 진정한 책임자는 열악하고 왜곡된 의료시스템을 만든 정부라고 지적했다.
"민간의료기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진료비를 청구하면, 동일한 사안도 지역에 따라 삭감여부가 달라지는 등 심사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밝힌 바른의료연구소는 "이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바이알제제 분할 투여 문제도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이유로 심평원이 장려해온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병원감염 관리규정을 수시로 교육하고 자료를 배포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질병관리본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형식에 그치는 인증기준으로 의료기관 인증평가를 한 의료기관인증평가원의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이 사건은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총체적인 부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임에도 근본 원인은 고치지 않은 채 의료진에게만 모든 책임을 덮어씌워 형사처벌로 끝내버린다면, 앞으로 제2, 제3의 이대목동병원 사건은 계속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질적 적폐 개혁하지 않으면 목동병원 사태 또 재발
이대목동병원 사건을 의료시스템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의사 및 간호사 1인당 돌봐야 하는 신생아 환자 수가 OECD 선진국의 5배 이상이면서도 OECD 선진국 보다 낮은 신생아 사망률을 기록한 것은 자신의 개인생활을 희생하면서까지 오로지 환자 진료에만 전념한 의료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른의료연구소는 "의료기술의 발달과 의료진들의 실력 향상으로 초저체중아도 살릴 수 있는 의료수준을 확보지만 신생아 중환자를 담당해야 할 의사와 간호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이번 사건은 시스템의 문제로 발생한 만큼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면서 "영국의 신생아실 녹농균 집단감염 사건이나 미국의 신생아실 황색포도상구균(MRSA) 집단감염 사건과 달리 정부의 대처는 선진국과 완전히 반대"라고 진단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이대목동병원 사건을 통해 ▲불명확한 심사 기준 ▲인색한 필수의료 지원 ▲부족한 인력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야 하는 중환자실 의료진 등 대한민국 의료의 고질적인 적폐가 드러났음에도 정부는 문제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오히려 의료진을 형사 처벌함으로써 왜곡된 의료체계를 더욱 더 왜곡시키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환자진료에 최선을 다한 의료진들이 살인자로 매도 당할 위기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직업적 소명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겠냐"면서 "정부가 이 사건을 교훈 삼지 않는다면, 신생아 중환자실 의료인력의 대대적인 유출을 초래해 신생아 중환자 진료체계가 파국을 맞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 뒤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