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행정학회서 전문가들 열띤 토론..."큰 틀 바꾸자" VS "가능한 것부터"
개편 방향성엔 공감대...일부 전문가, 개편 범위·우선순위 고민 필요성 제기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위한 대안이 우리나라 의료소비·공급 행태를 충분히 반영해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시돼야 한다는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 제기됐다.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위한 종합 계획이 비현실적이라는 쓴소리도 나왔다.
정부와 일부 보건의료정책 전문가가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추진하고 있는 의료전달체계 개편안이 전체 의료환경의 틀을 흔들 만큼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이상적이어서, 우리나라 의료시장에 접목하기 쉽지 않다는 우려다.
한국보건행정학회는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전기 학술대회를 열어 미래 보건의료제도 발전 방안을 모색했다.
'국민의료서비스 개선을 위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방안'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한 김윤 서울의대 교수(의료관리학교실)는 "의료전달체계 붕괴로 인한 의료공급 과잉, 특히 비급여 확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급여를 전면 급여화하면서 의료기관을 기능별로 분화해 유형별 진료비 차등제로 보상하는 방식으로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하자"는 기존 제안을 반복했다.
김 교수가 제안한 의료전달체계 개편의 주요 골자는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 개편 및 확대 △필수의료 책임병원 육성 및 지리적 균등 배치 △전문병원(급성기, 아급성기, 요양형) 육성과 분화 △만성질환 중심 일반의원과 일반진료 외 전문의원 기능 분화 및 육성 등이다.
이와 함께 병상 공급을 규제하고, 의료인력 공급은 확대하며, 의료인의 의료행위 가치를 기반으로 보상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와 권순만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등은 김 교수의 제안이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위한 지향 방향에서 이상적이라는 데는 동의했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윤 교수는 "김 교수의 일부 진단에 대해 동의하지만, 보건의료의 판을 전체적으로 흔드는 방식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라면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전체 체계를 개편하는 방식보다는 필수의료 공급체계 강화 등 실현 가능성이 높은 부분부터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순만 교수 역시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다. 권 교수는 먼저 "김 교수가 제안한 의료전달체계의 이상적인 형태에 동의하지만, 과연 그 모습으로 갈 수 있을까, 가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제했다.
"제안대로 전체적으로 큰 그림이 현실에서 그려질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많다"고 지적한 권 교수는 "이런 논의를 이전부터 많이 돼 왔지만, 실현되지 못하는 이유가 정책담당자의 의지가 없어서인지, 정책 적용이 불가능했던 것인지, 정책 집행단계에서 안 된 것인지, 그야말로 물 샐 틈이 없는 종합적 계획이 없어서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특히 "종합적 계획, 즉 '그랜드 디자인'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한국의 독특한 건강보험제도 탄생 배경, 환자의 의료이용 행태, 의료공급자의 공급 행태 등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은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전체적 변화보다는 핵심적으로 개선할 부분을 몇 개 정해서 개선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필수의료 분야의 역량을 하루빨리 강화하고, 고령화에 대비할 일차의료 역량 강화해야 한다"면서 "확실한 진전이 큰 진보로 가는 길이지 않을까 한다"면서 "전체적인 방향이 아쉽더라도 의료소비와 공급의 현실적 흐름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측은 의료전달체계 개편이 쉽지 않은 과제임을 인정하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가능한 부분부터 개선해 나가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재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