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측 "심정지 후 119 부를까 물어" VS 한의사 측 "동시에 연락"
SBS 궁금한 이야기 Y, 봉침 시술 사망 한의원에서 무슨 일이? 방영
최근 한의원에서 봉침시술 후 환자가 쇼크로 사망한 사건에서 한의사가 알레르기 테스트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과 함께 심정지 상태 이후에야 119에 신고를 했다는 유족들의 주장이 나왔다.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궁금한 이야기 Y'는 17일 방송(봉침 시술 사망 사건 그날 한의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에서 한의사의 봉침 시술로 사망한 30대 A씨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봉침 시술로 A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한의사 측 변호사는 "봉침 시술에 의한 사망은 환자의 체질 때문"이라며 "봉침 시술 부작용에 대비해 '아이스팩'을 구비했다"고 말했다.
A씨의 오빠는 "병원 응급실에서 마주한 동생은 의식불명의 상태였다.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심정지 시간이 너무 길어 회생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담당의의 말을 들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뇌사상태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던 A씨는 결국 지난 6월 6일 새벽 사망했다. 허리 통증 치료를 위해 한의원을 방문했던 환자가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것.
경찰은 "부검결과 사망원인은 벌 독으로 인한 알레르기 증상인 아나필락시스 쇼크"라고 밝혔다.
졸지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측은 "최근 임신 준비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철저하게 건강관리를 하고 있던 A씨는 감기약도 잘 먹지 않았다"면서 "평소 봉침을 맞지 말라고 가족들에게 신신당부했던 A씨가 갑자기 왜 봉침 시술에 동의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CCTV에 포착된 시간을 보면 A씨가 B한의원을 찾은 건 오후 2시 7분이며, 한의사가 같은 층에 있는 가정의학과를 향해 황급히 한의원을 나선 시간은 2시 41분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의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원이 A씨를 들 것에 실어 나간 시간은 오후 3시 19분으로 나왔다.
A씨가 내원한 지 34분 가량이 지났을 때, 한의원 내부를 비추는 CCTV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포착됐다. 한의사가 처치실에서 나와 가정의학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를 데리고 다시 돌아왔다. 이후 가정의학과 의사가 분주히 자신의 병원과 한의원을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유족들은 "처치실에는 한의사와 A씨 둘 뿐이었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꼭 알고 싶다"고 호소했다.
현재 B한의원은 굳게 닫힌 상태. SBS 제작진은 한의사 측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전해 들었다. 한의사측 변호사는 "봉침의 극소량 0.05cc투여해서 피부 과민반응 테스트를 확인했으나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기존 병력도 없었다"고 밝혔다.
"반응 테스트까지 했는데 왜 이상이 생겼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환자 체질에 따라 알레르기 반응이라는 게 급격하고 현저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며 환자의 체질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라고 답했다.
반면 가족들은 "해당 한의사가 봉침에 대한 테스트를 건너뛰었다고 일관되게 말했다"며 한의사 측과는 정반대 주장을 했다.
한의사 측 변호사는 "한의사가 평소에 환부가 붓는 정도의 과민반응을 봐 왔다고 한다. 국소적인 반응이었다. 아이스팩 얼음찜질을 하면 보통 가라앉았다더라"고 밝혔다. "종종 발생하고 있는 봉침 부작용에 대해 어떻게 대비했느냐"는 제작진의 질문에는 "아이스팩을 준비했다. 한의사들은 아나필락시스 쇼크에 대비한 의약품인 에피네프린을 구비할 수 없다. 같은 층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해당 의약품을 구비한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119 구급대에 연락한 시점도 유족과 한의원 측 주장이 엇갈렸다.
가정의학과 의사로부터 당시 상황을 들었다는 A씨의 오빠는 "심정지 상태가 되고 그 상황에서 가정의학과 의사에게 한의사가 '119 구급대를 부를까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정의학과 의사가 왜 안 불렀냐고 다그쳤다고 하더라. 그때서야 119 구급차를 불렀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의사 측 변호인은 "가정의학과 의사를 부르면서 거의 그와 동시에 119에 연락했다. 구급대에 연락이 늦는 등의 의료과실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A씨가 B한의원에서 받은 시술은 봉침. 봉침은 한의학에서 벌의 독을 추출·정제해 경혈에 주입하는 시술로 알려졌다.
대한한의사협회는 봉침 시술 후 사망 사건과 관련해 "응급의약품을 모든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에서 구비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의계의 주장에 대해 김교웅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해당 의약품은 단순한 응급 세트가 아니다. 면허에 따라 규정된 행위를 해야 한다. 사람의 생명이 직접 연관된 전문적 지식이 반드시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최근 혈압약 중 발암물질 성분을 감지한 후 바로 조치를 취한 일이 있었다"며 발사르탄 사태를 예로 든 김교웅 한특위 위원장은 "안전성이 제일이다. 문제가 생기면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고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모든 의약품이나 한의약품을 규격화·체계화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는 치명적인 전신 면역반응을 비롯해 수많은 부작용을 일으키는 위험천만한 '봉침' 시술을 전면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의료계는 화학물질에 의한 전신 면역반응인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를 유발, 사망에 이를수도 있는 봉침액을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에 관한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한의원이나 원외 탕전실에서 임의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한의계와 위험한 약물 조제 및 제조 행위를 묵인하고 있는 보건당국의 한방 약물 관리체계가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응급의약품을 한의원과 한방병원에 구비해야 한다는 한의계의 요구에 대해서도 봉침액 자체의 안전성을 확보하지도 않고, 위험성을 제거하지도 않은 채 환자에게 투여하는 비윤리적인 행위부터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다.
의협은 10일 성명을 통해 "한의원 봉침사용 즉각 중지와 한약의 안전성·유효성 검증을 의무화 하라"고 촉구했다.
의협은 "사망사고를 일으킨 한의원 및 한의사에 대한 책임 여부는 수사기관의 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겠지만, 이번 사고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한의원에서 사용하는 약침에 대한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고,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있다"고 지적했다.
'한의원에 현대의학의 응급 전문의약품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한의계의 주장에는 "한의원에서 아나필락시스 같이 생명이 위중한 환자를 진료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며 "한의사들에게 무면허 불법의료행위를 시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모든 한의사를 범법자로 만들겠다는 몰염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대한의원협회 또한 최근 "한의계는 자신의 학문의 한계를 인정하고 봉침과 같이 심각한 부작용의 우려가 있는 시술을 애초에 시행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의원협회는 "배운 적도 없고 사용한 적도 없는, 그리고 투여용량이나 투여방법조차 모르는 에피네프린·항히스타민제와 같은 현대의학의 의약품을 사용하겠다는 것은 환자를 마루타 같은 실험대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라며 "한방이라는 학문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