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건보 심사평가체계 개편(안)' 진료 하향 평준화 조장 우려
'중재'·'심층심사' 의사들에게 책임 떠넘기기…사전 협의도 없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한적 심사기준 기반의 건별 심사에서 의료의 질과 의학적 타당성 기반의 주제별 경향평가심사체계로 전환한다는 내용의 '건강보험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을 19일 공개했다.
그러나 심사평가체계 개선과 관련 의료계는 경향심사가 결국 총액계약제 시행을 위한 포석이고, 진료의 하향 평준화를 조장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2019년부터 예정돼 있는 시범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지 불투명해 보인다.
심사평가원은 19일 제1차 심사평가체계개편협의회 회의를 앞두고 기자 간담회를 열고 '건강보험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심사평가원이 밝힌 개편 방향은 ▲건벌 심사방식에서 주제별(환자·질환·항목·기관 등) 진료경향을 체계적으로 관찰·분석·중재하는 심사시스템으로 전환 ▲의학적 필요성, 의료의 질,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판단하는 체계적 심사운영 방식 도입 ▲경향분석·중재 등 심층심사과정에 의료계 참여기반의 개방형 심사결정구조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영아 심사평가원 심사평가체계개편반장은 "진료의 자율성은 보장하되, 적정수준을 벗어나 남용 등이 현저한 경우 의료 책임성을 강조하는 심층심사를 실시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임상적 효과(진료과정 및 결과), 기준, 절차 준수, 비용 및 자원 사용량 등 영역별로 지표를 개발하고 진료경향 분석을 실시하는 것은 물론 진료과목별·지역별 임상의사와 심사평가원 심사위원이 함께 경향분석 및 심사결정을 하는 방식으로 변화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적정 진료와 의료보장을 높일 수 있는 심사 결정 기반이 마련된 것을 특히 강조했다.
이 반장은 "환자의 개별 상황을 고려한 진료가 가능하도록 제한적 급여기준을 개선하고, 임상진료지침에 근거한 심사결정 기전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공개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적용하는 기준은 전면 재검토 하고, 이를 위해 이해관계자(의료계·전문가·가입자 등) 참여기반의 협의체 운영 및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심사평가체계 개편은 2019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20∼2021년까지 본사업(30∼50%)이 정착되는 시기를 거쳐, 2022년에는 본사업(80%)이 완성될 수 있도록 목표를 정했다.
경향평가심사체계의 구체적인 운영 시스템을 보면, 주제별 분석지표를 통해 기관별 진료경향을 관찰·분석해 '변이'가 감지되면 해당 의료기관에 '피드백' → '중재' → '개선을 지원하는 심사'가 진행된다.
또 변이가 감지된 의료기관은 우선 정보를 제공하고 중재를 하지만, 중재 후에도 개선되지 않으면 동료의사의 심층심사가 이뤄지고 후속조치로 삭감이 뒤따르게 된다.
특히 경향평가심사 대상 선정은 ▲의료의 질과 비용 통합관리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영역 ▲공공성이 강하고 전문성·자율성 보장이 필요한 영역 ▲과잉진료 등 낭비가 우려되는 영역 ▲건별 심사 혹은 제한적 급여기준으로 의료이용의 왜곡이 우려되는 영역이 된다.
이밖에 경향평가심사 지표는 적용 가능한 적정성 평가지표를 우선 활용하고, 경향평가심사 대상과 동일한 적정성 평가항목은 지표정비를 통해 일원화 한다는 계획이다.
또 경향평가심사 정보 등을 진료비 청구시점에 명세서를 통해 제출하도록 하고, 적정성 평가기간 단축 및 평가결과 연동형 경향평가심사 기법도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현행 심사와 경향평가심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심사 기준 기반 건별 심사'에서 '의학적 타당성 기반 경향평가심사'라는 것도 심사평가원은 강조했다.
이영아 반장은 "의료현장 임상의사가 기관별 진료경향 분석부터 변이 발생기관에 대한 원인분석, 컨설팅, 의무기록 기반 심층심사 등 직접 심사를 실시하는 '동료의사 심사평가'가 확대된다"고 말했다.
또 "중앙심사조정위원회 심사위원 비율을 의약단체 추천 인사로 구성하고, 심사위원 실명제 실시 등을 통해 경향평가심사가 힘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국내·외 임상진료지침을 토대로 의학적 근거 중심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하고, 기존의 급여기준을 벗어나더라도 의학적 타당성이 있는 경우는 건강보험으로 수렴될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은 물론, 그동안 심사평가원에서 공개하지 않았던 의학적 근거가 미흡한 내부 심사기준을 검토해 정비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개편(안)이 2019년부터 문제 없이 시행될지는 미지수다.
심사평가원은 평가지표 개발, 중재, 동료의사 심층심사에 대해서는 의료계와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의료계와 잘 협조해 제도가 시행되는 데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는 정도의 입장만 밝힌 것.
먼저 주제별 분석 지표를 어떻게 개발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적정성 평가지표를 우선 활용하겠다는 것인데, 새로운 경향평가심사체계 개편(안)이라고 하기엔 별로 달리진게 없다는 지적이다.
다음으로 중재 및 동료의사 심층심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숙제다.
경향분석을 통해 문제가 있는 의료기관에 동료의사가 직접 참여해 중재를 하도록 했는데, 이는 의료계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동료의사가 중재 후 개선되지 않은 의료기관에 대해 직접 심층심사를 하는 것도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의료계 한 관계자는 "건별 심사만 하지 않은 것이지 주제별로 묶어서 총량을 조절하겠다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의학적 타당성 기반의 경향평가심사를 강조하면서 중재에서부터 심층심사까지 동료의사들이 의료기관을 평가하고, 삭감이 이루어지도록 했다"며 "이는 정부 기관이 책임을 지지 않고 의료계 내부로 민감한 문제를 떠넘긴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 제1차 보험위원회에서도 경향평가심사는 결국 총액계약제 시행을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의견이 다수 나왔다.
또 경향평가심사로 전환하면 의료기관 수익 정상분포곡선의 최상위층을 집중심사해 결국 하향 평준화 되고, 의료기관별 총 수익 공개를 통해 총액계약제를 추진하는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았다.
대한개원의협의회도 경향평가심사가 진료의 하향 평준화를 조장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일종의 진료 평균치를 설정하고 이에 벗어나는 의사나 기관에 대해 집중심사 및 삭감을 하는 방식으로서 의료서비스의 질 하락 등 큰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이유 때문.
게다가 경향평가심사는 심사기준에 맞는 최소한의 의료 서비스만을 제공하도록 함으로써 다양한 환자들의 개인특성을 고려한 의사의 맞춤형 소신 진료는 부당청구 내지 과잉진료로 분류돼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했다.
대개협은 "경향평가심사는 다양한 환자를 진료할 때마다 고려해야 할 세부항목이나 지역별 특성 등을 지표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같은 질병을 가진 환자라도 매우 다양한 임상적 양상을 보이고, 그 예후 또한 다양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내용과 양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