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의료진에 30% 과실 인정한 1심 유지
"중환자 경과 관찰·필요 조치 등 주의의무 위반"
중환자실에 입원치료를 받던 중 심정지가 발생, 식물인간 상태가 된 사건에서 의료진의 30% 과실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는 급성 뇌지주막하출혈 및 뇌내출혈로 응급수술 후 중환자실에 입원치료를 받던 중 심정지가 발생, 식물인간 상태가 된 사건에서 1억 8천여만 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A씨는 2013년 6월 11일 저녁 8시 30분경 자택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로 발견, 지방 Y대학병원으로 후송됐다. 뇌 전산화단층촬영(CT) 결과, 좌측 중대뇌동맥의 뇌동맥류 파열과 급성 뇌지주막하출혈 및 뇌내출혈 진단을 받은 A씨는 서울에 있는 B대학병원으로 전원했다.
6월 12일 B대학병원 응급실로 전원한 A씨는 오전 9시 32분경 뇌혈관조영술을 받았다. B대학병원 의료진은 이날 오후 3시부터 7시 55분까지 개두술 및 뇌동맥류 결찰술을 시행했다.
내과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A씨는 6월 23일 활력 징후에 이상을 보였으며, 심정지 및 호흡 정지가 발생했다. 의료진은 심장마사지, 앰부배깅 등 심폐소생술과 응급약물 투여 후 심박동을 회복했지만,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A씨 가족은 최초 뇌동맥류 파열에 대한 지연 및 치료가 지연됐으며, 설명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수술 후 경과관찰을 소홀히 한 과실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며 3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이 중 경과관찰 소홀에 대한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했다.
"중환자실에서 A씨의 경과를 면밀히 관찰해 산소포화도 저하 등 이상 상황을 발견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산소포화도가 40%로 측정된 오후 6시 30분에 바로 산소공급 등 조치를 취해야 함에도 10분 가량 처치를 지연, 뇌 손상을 악화시켰다는 판단이다.
중환자실의 경우 측정기기가 일정 시간 간격으로 환자의 신체 활력징후를 반복 측정하도록 자동 세팅된다. 일반적으로 산소 수치가 설정치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측정기기의 모니터 상으로 산소포화도의 색깔이 녹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고 알람음이 울리도록 돼 있다. 설정치는 보통 산소포화도 90%로 설정된다.
재판부는 "사건에서 산소포화도가 40%로 측정됐다면 이때부터 이미 저산소증에 의한 뇌 손상을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의료진은 추가적인 산소공급과 기도확보 등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며 "해당 시점으로 10분이 지난 이후에 상황인지를 하고, 응급대처를 했다면 그 대처는 늦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봤다.
B대학병원은 담당 간호사가 우선적으로 처치를 시행한 후 기억에 의존해 기록하던 중 A씨가 정상상태였던 시각과 이후 산소포화도 저하가 발생한 시각을 오인하고 기재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B대학병원은 심정지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뇌동맥류파열 및 지주막하출혀로 인해 장해가 있어 여명 기간 동안 치료비·개호비가 필요한 상태였다면서 심정지로 인해 A씨의 상태가 악화됐다 해도 예상되는 치료비 및 개호비는 사건과 상관없이 소요됐을 비용인만큼 전부 부담토록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심정지가 발생하기 이전에 A씨의 의식은 혼미상태였다가 심정지 이후 혼수상태로 악화된 점 ▲심정지 및 그로 인한 A씨의 의식상태 악화 등의 상황을 봤을 때 회복 가능성이 그만큼 더 희박해졌다고 볼 수 있는 점 ▲앞선 이유들이 결국 치료비 및 개호비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볼 수 있는 점을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A씨가 심정지 및 호흡 정지가 발생하기 전 이미 뇌내출혈을 동반한 지주막하출혈로 인해 의식이 혼미한 상태였던 점 ▲지주막하출혈로 인한 상당한 정도의 장해와 치사율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던 점 ▲심정지로 인한 저산소성 뇌 손상이 없었더라도 A씨가 의식을 회복하거나 독립적으로 일상 활동을 수행하기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점 등을 고려해 의료진 책임 비율을 30%로 제한했다.
B대학병원은 고법 판결에 불복,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받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