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의협 "실효성 의문·위헌 소지...무리한 정책 실패" 우려
정부 "공공의료 핵심인력 양성 불가피"...남원주민 "반대 말아달라"
지역간 의료격차를 해소하고 공공의료를 활성화 할 수 있는 대안이 정원 49명의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원)을 설립일까?
여당과 정부가 서남의대 폐교 정원으로 전북 남원시에 공공보건의료대학(원)을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공공의료에 대한 찬반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의료계와 정치권에서도 찬반 주장이 엇갈리는데다 시민단체와 남원시민까지 논쟁에 가세하면서 쟁점으로 부상했다.
대한의사협회와 의학계는 작은 정원의 공공보건의료대학(원)을 설립, 13년 후부터 49명씩 의사를 더 배출한다고 지역간 의료격차를 해소하고, 공공의료를 활성화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존 민간의료기관에 지원을 확대해 공공의료 역할을 확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반면, 일부 보건의료 행정·관리 전문가와 보건복지부, 시민단체들은 공보건의료대학(원) 졸업생을 통해 의료취약지의 응급·외상·심뇌혈관·중환자·신생아·고위험군 환자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여기에 공공보건의료대학(원) 설립 후보지인 전북 남원지역 주민들은 지역 특성상 지리산을 끼고 7개 시·군이 널리 분포하고 있어 중증환자 이송이 어려워 생명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의료계·정치권·정부가 대학(원) 설립에 협조해 달라고 호소했다.
26일 자유한국당 박인숙·김세연 의원이 주최하고, 의협 주관으로 국회에서 열린 '바람직한 공공의료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에는 공공보건의료대학(원) 설립에 직·간접인 이해관계가 있는 단체와 학계 전문가를 비롯해 남원지역 주민 등이 대거 참여했다.
토론회는 분위기는 시작부터 뜨거웠다. 토론회를 주최한 의사 출신 박인숙 의원은 "결론부터 얘기하면, 공공보건의료대학(원)을 설립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조목조목 이유를 제시했다.
"서남의대 폐교로 지역주민의 박탈감이 큰 것도 지역의료 환경이 열악한 것에 대한 걱정도 잘 알고 있다"고 밝힌 박 의원은 "지역 의료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공공보건의료대학(원) 설립보다 더 빠르고, 돈도 덜 드는 방법이 있는데, 공공보건의료대학(원)을 설립하겠다니 답답하다"면서 "기존 의대 중에서 제대로 의학교육을 하지 못하는 곳들이 있다. 이들 의대를 비교적 규모가 크고, 교수 수를 충분히 확보한 의대와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다. 서남의대 문제를 20여 년 만에 해결했는데, 비슷한 의대를 또 왜 설립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박 의원은 "공공의료와 비공공의료를 구분할 수 없다. 사실상 단일보험체제에서 당연지정제를 하는 우리나라에서 모든 의료가 공공의료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공공보건의료대학(원)을 만들어 면허를 주고, 10년 의무복무를 하지 않으면 면허를 박탈하겠다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초법적 조치이며, 현실적이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의대 하나를 제대로 설립하려면 수천억원이 든다. 그런데 정부 계획대로 공공보건의료대학(원)을 설립해도 2027년에야 30여 명이 졸업할 것이고, 이후 수련까지 거쳐야 한다. 그때 의료환경과 의료인력 수급이 어떤 상황일지 아무도 모른다"면서 예산 투입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러자 남원지역이 지역구인 무소속 이용호 의원(남원·순창·임실)이 반박하고 나섰다.
이 의원은 "의료도 차별이 존재하며, 의료 소외를 해소하기 위해 공공의료가 필요하다. 서남의대 폐교를 계기로 공공의대 논의가 시작됐는데, 폐교된 서남의대 정원을 공공의료 인력을 배출하는데 활용하는 것은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공공의대 설립은 공공의료 분야 보완을 위한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이 의원은 "설립지가 남원이 됐으면 한다. 정부가 박 의원과 의료계의 우려를 잘 반영해 정말 필요한 공공의료 분야 보완책을 마련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발제에 나선 이건세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예방의학교실)는 공공보건의료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공공의대 설립으로 일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지를 폈다.
이 교수는 "국민의 생명·건강과 직결되는 필수의료를 보장하고, 지속적·효율적인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공공보건의료 발전이 필요하다. 공공의대 설립이 기여할 수 있다"면서 "공공보건의료 발전의 핵심인 의료인력 충원에 공공의대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지역책임의료기관 지정·육성, 공공의료 거버넌스 구축 등의 방안도 함께 제안했다.
한국의대·의학전문대학원협회는 공공보건의료대학(원) 설립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강석훈 전문위원(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의학교육학교실)은 남원지역 공공보건의료대학(원) 설립의 문제점으로 ▲정원이 49명으로 적고 ▲양성기간이 최소 13년으로 길며 ▲의부목부 10년을 지키지 않으면 의사면허를 취소하고 ▲지역사회 공공-민간의료기관의 원만한 관계를 저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 전문위원은 "정부가 주장하는 공공보건의료 발전 방향도 일차의료와 공공의료기관 사명의 변천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전략적 파트너인 민간의료기관을 외면하는 방향이고, 성과지표 중심의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강 전문위원은 공공보건의료대학(원) 설립 대신 일차의료기관과 행정기관을 연합하는 형태의 (가칭)'지역사회 의료 Unit'을 지역거점병원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지역별 맞춤형 공공의료를 구현하고, 일차의료 교육기관의 역할을 수행토록 하는 대안을 제안했다.
서경화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공공의대 설립의 문제점을 교육·정책·거버넌스 측면에서 고찰한 의견을 밝혔다.
서 책임연구원은 "체계적으로 의학교육을 설계하고, 기존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비용 효과 대비 편익을 고려한 근거기반 의료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면서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의견 수렴을 지향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체적인 공공의료 확충 방안으로 ▲은퇴의사 등 활용 ▲의료취약지 인적·물적 인프라 정비에 필요한 지원책 마련 ▲지역사회 교육환경과 근무여건 개선 ▲민간의료기관의 공공보건의료 역할 확대를 위한 정책 지원 등을 제안했다.
김해영 의협 법제이사는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정책위원회 의장)이 발의한 공공의대 설립과 관련한 의료법 개정안이 위헌적 소지가 있다고 짚었다.
김 법제이사는 "공공의대 졸업생에게 의무복무 10년 의무와 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면허를 취소하고, 이후 10년간 재교부하지 않도록 한 조항은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와 평등권 등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되고, 위헌 소지가 있다는 우려에도 보건복지부는 불가피론을 펴며 물러서지 않았다.
정준섭 보건복지부 공공의료정책과장은 "기존 10개 국립대병원의 교육 목표가 우수한 의료인력 배출에 맞춰져 있어 공공의료 인력 배출에 적절하지 않다"며 "공공의료 확충 대책의 핵심인 의료인력 충원을 위해 공공의대 설립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공공의대 건축비 240억원과 교수진 운용을 위한 인건비 등 외 필요 예산은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예산 (7000억원)에서 충분히 가용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군법무관 의무복무 10년, 공군 조종사 의무복무 15년 등 유사사례가 있어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다만 의무복무 불이행 시 면허를 취소하고 10년간 재교부를 제한하는 부분은 과하다는 지적을 수용해 재검토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공공보건의료대학(원) 설립 후보지인 남원지역 시의원들과 시민들이 대거 상경, 열악한 남원지역 의료환경 상황에 대해 토로하며, 공공의대 설립에 협조해 줄 것을 호소했다.
윤지홍 남원시의회 의장은 "얼마 전 남원시청 직원 가족이 뇌졸중으로 쓰려졌는데 남원에서 1시간 30분 걸리는 익산으로 이송했고, 수술 과정에서 사망했다. 남원지역은 50%가 산악으로 둘러싸여 의료접근성이 매우 열악하다. 기본적인 의료혜택은 누리지만 심혈관·뇌졸중 등 중증환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남원지역 주민의 이런 절박한 심경을 이해해서 공공의대를 꼭 유치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말했다.
소한명 공공의대 설립을 위한 범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공공의대 설립 관련 데이터를 가지고 논쟁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49명 정원인 대학원 하나 설립한다고 지역경제가 얼마나 활성화 하겠나? 정원이 적다고 하는데 남원에는 단 한 명의 의사가 소중하다. 결코 지역이기주의로 공공의대를 유치하려 한다고 매도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상태 보건의료노조 남원지부 조합원은 "공공의료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돈이 되지 않아도 유지돼야 하는 필수의료가 공공의료라고 생각한다. 남원의료원 산부인과와 응급 수술실은 돈이 되지 않아도 적자를 감수하면서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일할 의사가 없다. 극심한 의료인력난을 겪고 있다"면서 "공공의대 설립으로 남원의료원의 필수의료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폐교 전까지 서남의대에 재직했다는 주현수 전 서남의대 교수는 "제자가 스스로 심장을 찔러 자살을 시도했지만, 당시 남원의료원에 전북대병원에서 파견 나온 전문의가 있어 소생했다"면서 "남원의료원에서 이런 기적이 일상이 되도록 간절히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원지역 주민들의 호소를 들은 박인숙 의원은 "토론회 주제가 공공의대 설립과 공공의료 활성화가 아닌 남원지역의 열악한 의료현실로 바뀐 느낌이다. 남원지역 의료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보건복지부에 좀 더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데 예산도 많이 소요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공공의대 설립을 고집하지 말고, 기존 의료기관의 공공의료 확대를 위한 예산과 정책 지원을 과감하게 하라고 주문하는 것"이라며 "의대 설립에 드는 예산 일부만 투입해도 상황이 빨리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