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인력 지원-정신질환자 편견 해소 위한 범사회적 노력 필요
윤일규 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순교"...법·제도 개선 의지 밝혀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병원에 대피로 등 비상시설이 있고, 당시 사건현장에 있던 간호 인력이 도움을 요청한 뒤 1분 만에 병원 보완요원이 왔는데도 사건을 막지 못했다(신호철 강북삼성병원장)."
"정신과 진료현장에서는 거의 매일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난다. 정신과 의료진들은 환자의 폭력을 일상으로 보고 있다(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
"대부분의 진료실에 대피공간, 대피로, 비상벨 설치가 안돼 있다. 이것을 개별 의료기관에 맡길 것이냐면, 사회안전망 구축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차원에서 의료기관 안전관리기금을 조성, 이에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
의료계 전문가들이 국회 증언대에 섰다. 고 임세원 교수 피살사건 이후 수면 위로 떠오른 의료기관 내 폭행사건의 실태를 밝히고, 현실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데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9일 고 임세원 교수 피살사건 관련, 긴급 현안보고를 진행 중이다.
이날 현안보고에는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 신호철 강북삼성병원장,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 등이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해 실제 의료현장의 상황을 생생히 증언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국회와 정부에 도움도 요청했다.
신호철 강북삼성병원장은 사건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노력했지만 대처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신 원장은 "사건을 조명해보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한번에 설명하기 어렵다. 환자의 경우 정상적인 진료를 받아오지 못한 상태였고, 병원도 대비를 했지만 실제 사건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특히 "병원 내에 대피로 등 안전시설이 있고, 안전요원도 배치되어 있었지만 대처할 수 없었다"며 보다 근본적인 사건 재발방지 대책이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권준수 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정신의료현장의 상황을 생생히 증언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범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이사장은 "정신건강의학과는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다. 외래 뿐 아니라 보호병동에서도 거의 매일 크고 작은 일이 일어난다. 남성 환자가 여성 의료진을 구석에 몰아넣고 구타한다던지 물을 퍼붓는다던지, 이런 일들이 늘상 벌어진다"고 했다.
그는 "신고가 이뤄지는 건수는 실제 사건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며 "정신건강의학과 의료진들은 환자의 폭력을 일상으로 보고 있다. 치료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굉장히 심각한 사건이 아니면 신고조차 하지 않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권 이사장은 이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인력과 시설 등의 지원과 더불어 정신질환자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범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이사장은 "우리나라 간호사 1명이 13명의 환자를 보는데 일본은 4명을 본다. 인력이 부족하니 사건을 막을 수가 없다.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 "퇴원환자를 관리할 시설도 제도도 미비하다. 정신질환자들이 올바른 케어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으면 보험가입 거부 등 각종 불이익을 받게 되고, 이것이 환자의 치료지연이나 기피로 이어진다"며 "정신질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지원과 관심을 촉구했다.
최 회장은 "전국적으로 3만곳의 의원과 1500곳의 중소병원이 존재하나, 이들 대부분은 진료실 내 대피공간, 대피로, 비상벨 등의 안전시설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사전적인 최소한의 예방조치로 이런 비상시설의 설치가 필요하다. 이것을 개별 의료기관에 맡길 것이냐면, 사회안전망 구축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차원에서 의료기관 안전관리기금을 조성, 이에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은 고 임세원 교수 피살사건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의 순교"라고 재정의 해 공감을 얻었다.
끝까지 환자와 주변 의료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고 임세원 교수의 뜻을 기리고, 남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잊지 않고 정신과 환자와 의료진의 안전을 보장하는 새로운 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밑바탕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