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의료사고는 교통사고 등 일반 손해배상 사건과는 약간은 다른 구조를 갖는다. 법원이 정보의 비대칭, 밀행성 등 특수성을 고려한 결과다. 그중에 하나가 '불성실'에 대한 책임이다. 일반적으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려면 '위법'해야 하고,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한다.
다시 풀자면, 첫째, 주의의무 위반(위법)이 있어야 한다. 둘째, 환자에게 나쁜 결과가 발생해야 한다. 셋째, 주의의무 위반과 나쁜 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한다. 의료사고에 대한 대부분의 손해배상책임은 다른 사고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만 인정된다. 그런데 의료사고는 의사의 책임 기준을 완화하고, 책임 범위를 확장한다. 이것이 바로 '불성실 진료'에 대한 책임이다.
2006년 이래 확립된 대법원 판례의 표현을 빌자면, "주의의무 위반의 정도가 일반인의 처지에서 보아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이라고 평가될 정도에 이른 경우라면 그 자체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하여 환자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책임을 명할 수 있다"이다. 독특한 논리다. 다만, 손해의 범위를 정신적 손해로 한정했다. 대신 불성실 진료에 대한 입증책임은 환자에게 있다고 했다.
특징이라면 인과관계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고, 유사하다면 설명의무 위반에 대한 위자료 인정방식과 같다고 이해하면 된다. 최근 이 점을 재확인한 대법원 판례가 있다.
[사실]
22세의 남학생이 두통·오심 등을 호소하며 A병원 응급실에 1차로 내원했다. 구토 치료제인 멕소롱(Mexolon, 염산 메토클로프라마이드 성분)을 투여했고 호전돼 귀가했다.
다음날 새벽 같은 증상으로 A병원 응급실에 2차로 내원했다. 멕소롱을 추가 투여하고 산소 공급 등의 조치를 시행했지만 혼수상태에 빠졌다. 중환자실을 거쳐 B대학병원으로 전원했으나 20여 일 뒤 사망했다.
[1심]
원고측은 A병원에 대해 주위적으로는 오진에 대한 과실을, 예비적으로는 치료 지연 및 설명의무 위반을 주장했으며 B대학병원에 대해서는 혈액투석 치료 및 뇌압 상승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늦었다는 점 등을 주장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피고 A병원과 B대학병원 둘 다 책임이 없다고 봤다.
[2심]
법원은 먼저, A병원에 대해서는 1차 내원 당시 진료는 적절했다고 했다. 다만 2차 내원 당시 처치에 인과관계는 인정할 수 없지만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가 있었다고 판시하며, 위자료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책임 주체는 의료재단). 배상액은 망인에 대해서는 2000만 원, 부모에 대해서는 각 1000만 원. 다만, B대학병원은 책임이 없다고 했다.
[대법원]
대법원은 2심이 인정한 A병원의 배상책임을 부정했다. 첫째, 불성실한 진료를 행했다고 할 수 없고, 둘째, 망인의 악성신경이완증후군은 경험이 있는 일부 신경과 전문의가 아니면 알기 어렵다는 점 또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2018. 12. 13. 선고. 2018다10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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