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솔 전공의(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1년)
또다시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야 함에 애써 눌러왔던 슬픔이 꾹꾹 스며든다.
소아과 2년차 전공의 선생님이 당직근무중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선생님 유족들의 슬픔을 감히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고인은 누구보다 성실했고 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을 희생해 온 전공의, 의사의 길을 걸은 성실한 젊은 의사였다. 그러기에 더 가슴을 짓누른다.
전공의법이 통과된 지 4년째 접어든다. 하지만 의료 최전선에서 밤샘 당직을 하며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대한민국 전공의들은 이 법에서 근거하는 '최대수련 시간'을 넘어서 근무하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여전히 많은 병원에서 전공의법이 미준수된 사례들이 적발되고 있으며, 특히 교육수련부에서 파악하는 근무표와 실제 전공의들의 근무표의 온도 차이가 있다는 점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모 병원 홍보팀은 '전공의법을 잘 준수하고 있기 때문에 과로사가 아니라 돌연사'라 일단락해 이 사건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모든 이들의 분노를 산적이 있다.
전공의법이 규정하는 80시간을 꽉꽉 채워 잘 지켰다고 한다면 그것은 과로가 아닌가? 현행 만성 과로의 기준은 1주 평균 60시간 기준은 당연 인정기준으로 삼아 개인 질병이 원인이라는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도록 개정한 바 있다. 또한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면 업무와 발병 간 '관련성이 증가'한다는 규정을 신설한 바 있다.
전공의법의 시행 전후를 지켜보면 분명히 개선된 점은 존재한다. 수련병원 입장에서는 최대근무시간을 준수하기 위해 (꾹꾹 채우라는 말은 아닌데)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문의 인력을 상시 고용해 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좋은 선례를 가진 병원들이 있는가 하면, 수련 시간을 지키는 것만 집중해 당직근무 때 담당해야 하는 환자가 급수 적으로 늘어나 오히려 환자에게 위해가 가해질 상황을 초래하거나, 불법의료행위 등을 통해 이를 음성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아직도 전공의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서류상으로 적발되지 않기 위해 가짜 근무표를 제출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전공의들의 과로는 당연히 전공의의 건강을 해친다.
근무시간에 만성적인 피로로 졸음이 오는 것은 물론, 스트레스와 과도한 업무로 인해 정신과 질환을 겪는 게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해결되지 않는 과중 업무로 인해 젊은 의사의 건강이 해쳐지고 있다. 이를 넘어서 무엇보다도 전공의의 과로는 직접 환자에게 위해를 끼친다. 최근 보도되는 여러 사례를 살펴보면 전공의 본인에게 가해지는 여러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킨 사례들이 나오는가 하면, 자칫 환자의 치료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실수들도 적지 않게 보고되고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면 우리 사회는 전공의 '개인'에게 모든 탓을 돌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시스템 개선 없이는 이러한 불행한 일들은 여전히 반복될 것이고 그로 인한 피해는 우리 사회 모두가 감당해야 할 짐이 되는 것임을 수차례의 경험을 통해 이는 증명돼 왔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전공의의 간절한 바람이다. '어쩌면'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죽음의 문턱을 젊은 의사들이 넘지 않게 해달라.
우리의 외침을 외면하지 말아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