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응급처치·입원환자 대처 한계…'온콜' 의사 진료할 수밖에
요양병원 "탁상 행정이 낳은 엇박자…의사 적정 근무수가 필요"
요양병원에 당직 의료인을 의무적으로 두도록 법이 바뀌면서 최근 한의사 당직이 늘고 있다. 문제는 당직 한의사의 경우 응급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환자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데 있다.
일선 요양병원장들은 "침·뜸·한약·추나요법 등 한방의료로는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응급 상황을 감당할 수 없고, 입원환자 진료도 매우 제한적"이라며 당직 한의사의 한계를 토로했다.
예를 들어 입원환자가 열이 갑자기 오르거나, 혈압이 오를 때, 또는 호흡이 빨라지고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는 등의 응급상황에서 한의사의 대응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의사의 일을 대신할 수 없는 한의사나 치과의사가 요양병원에서 당직 근무를 서는 게 옳은지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 한의사가 당직을 서는 요양병원의 경우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다른 의료기관으로 환자를 전원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같은 문제의 발단은 정부가 의료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당직 의료인에 의사 외에 한의사·치과의사까지 확대하면서 불거졌다.
의료법 시행규칙에서는 요양병원의 경우 입원환자 300명까지는 의사를 비롯해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 중 1명을 당직을 서도록 규정했다. 또 입원환자 300명을 초과하면 300명마다 당직 의료인 1명을 추가토록 했다.
당직 의료인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시정명령·과태료는 물론 영업정지 처분까지 받도록 했다.
요양병원들은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한의사들의 당직을 늘리고 있는 실정이다.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한의사는 2009년 416명에서 2018년 1834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의료계에서는 요양병원에 당직 의료인을 의무적으로 두도록 하면서 한의사와 치과의사를 포함한 이유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A요양병원 관계자는 "환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다며 의사의 콜 당직을 인정하지 않은 채 당직의료인제도를 만들었다"면서 "왜 한의사와 치과의사를 당직의료인으로 규정했는지 의문이다. 탁상행정의 끝을 보여주기 위한 당직의료인제도 아니냐"고 꼬집었다.
"한방의 침·뜸·한약으로는 응급 상황에 대응할 수 없다"고 밝힌 이 관계자는 "비현실적인 당직의료인 규정으로 인해 환자의 안전은 큰 위협을 받고 있다"면서 "당직 의료인 규정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요양병원에 대한 의무는 강화했지만, 실질적으로 돌아오는 보상은 적다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B요양병원 관계자는 "관련 법을 개정하면서 요양병원 인력 배치와 시설 기준은 강화했지만, 수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적절한 수가를 보상해 의사가 당직을 설 수 있도록 하고, 환자에 대해 제대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당직을 서는 한의사는 정작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하고, 온콜 근무를 하는 의사가 대처하거나 약물 처방 오더를 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법에서 정한 기준과 현장의 상황이 엇박자를 내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C요양병원 관계자는 "치과의사·한의사가 당직 근무를 서면서 아무런 대처를 못 하고, 의사가 전화로 응급상황에 대해 지시하다가 사망사고 등이 발생하면 의료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환자에게 적절하게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의사를 당직 근무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장의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손덕현 대한요양병원협회장은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가 당직을 설 때 응급상황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당직을 설 의료인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의사가 당직 근무할 때 보상을 제대로 해주는 것이 절실하다"면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