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용 엑스레이기기, 일종의 보조수단…우선적 사용하는 병·의원 0%
"한의학 정체성 스스로 부정…사용하고 싶다면, 의과대학 입학해라"
현행 의료법상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면허범위 외 의료행위는 무면허 의료행위로 간주,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한의사가 혈액분석기·엑스레이 등 의과 의료기기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현행법을 정면으로 위배한 한의협의 선언에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의료계는 일제히 해당 발언을 비판하며 반발 성명서를 잇달아 내고 있다. 이번엔 근골격계 엑스레이 주무과인 정형외과의사들의 비판이 나왔다.
대한정형외과의사회와 대한정형외과의사회 한방대책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최근 한의협 회장의 ' 혈액분석기·엑스레이' 사용 선언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형외과의사회는 성명서에서 한의협의 해당 발언에 스스로의 의학적 한계를 인정한 것이라고 짚으며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고 밝혔다.
의사회는 "의료계는 그간 한의학이 과학적 검증이 안 된다고 지속 비판해 왔다. 그때마다 한의학은 원리나 치료방식이 서양적 의학과 달라, 의과 기준으로 검증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는 궤변을 해 왔다"면서 "한방원리인 체질과 기의 순환을 엑스레이 장비로 진단하겠다는 것인가? 지금까지 주장했던 한의학의 독창적 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의료 전문가에게 의료행위의 독점적 자격을 주는 이유는 그 행위가 잘못 행해졌을 때 국민건강에 미치는 위해성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엄격한 기준에 입각해 교육을 시키고, 이를 통과한 사람에게 부여하는 것"이라며 "한의사는 의사가 아니다. 엄격한 교육과 수련을 받은 자들이 아니기에 엑스레이를 보고 환자를 진단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의사회는 "한의사들이 의과 의료기기를 사용하겠다는 것은 스스로 한의학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한의학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의과대학에 입학해 정식적으로 정당한 교육을 받아, 자격을 갖추라"고 꼬집었다.
대한정형외과의사회 한방대책위원회도 '한의협 회장의 저출력 X-ray 사용하겠다는 발언에 고함'이라는 제목의 비판성명을 냈다.
한방대책위원회 역시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줄 수 있는 그릇된 생각과 얇은 의학지식을 자랑하는듯한 당당함에 어이가 없을 뿐"이라고 밝혔다.
한의협회장은 "10mA/분 이하 저출력 X-ray부터 적극 진료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주당 최대 동작 부하의 총량이 10mA/분 이하인 X-ray는 현행 법령상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 의무 선임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방대책위원회는 "척추와 같은 인체의 깊은 부분까지 골격구조를 재연할 수 있는 영상을 얻기 위해선 적어도 200mA 이상의 전류가 순간적으로 방사선 발생 장치에 흘러야 우리가 원하는 양의 방사선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이것에 의해서만 척추 영상이 비로소 의사가 판독할 수 있는 정도의 해상도로 구현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양의 방사선이 인체에 조사되려면 반드시 격리 차폐된 공간에서 의학적 전문가들에 의해서만 허용돼야 한다"면서 "휴대용 엑스레이 기기는 아주 제한된 상황에서 사용되는 것이다. 진단용 방사선 영상은 피폭이 환자 이외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방대책위원회는 10mA 이하 휴대용 엑스레이기기만을 진단에 우선 사용하는 병·의원은 한 군데도 없다고도 짚었다.
"휴대용 엑스레이기기는 일반 방사선 검사의 일종의 보조수단일 뿐이다. 그 자체를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곳은 0%"라며 "해당 진단기기에 대한 파악 없이 기자회견을 하는 단체의 장에 국민건강을 맡긴다는 것이 너무도 걱정된다. 국민들에게 피해가 갈 상황 또한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방대책위원회는 "진료실에 대기하고 있는 다른 환자에게 방사능 피폭을 아무렇지도 않게 당하게 할 것인가? 만약 그 환자분이 소중한 생명을 잉태한 임산부라면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참으로 부끄러운 발상"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방사선의 인체 유해는 철저히 알고 대비해야 한다"며 "진료실에 진단용 영상 장치도 아닌 기기를 가져다 놓고,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이 진료에 활용하겠다는 한의협회장은 의료단체를 이끌어갈 전문지식이 없는 것이다. 사퇴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국민건강을 지키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기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한의협 회장의 발언과 관련해 "한의사 X-ray 사용 문제에 관한 정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관련 법령과 판례에 따라 원칙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