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혼자 할 수 없는 일들

의사 혼자 할 수 없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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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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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팀 케어' 리더 역할 해내야만 한다"

"암진단 받고 처음에는 너무 힘든데 일할 사람이 없다고 계속 일해달라고 하더니만, 1년쯤 지나고 이제 좀 괜찮아지니까 나가달라고 하네요(수술 후 1년쯤 된 유방암 생존자)"

"항암치료를 하면서 도통 먹을 수가 없어서 살이 너무 많이 빠졌었어요. 그런데, 가정간호로 수액도 가끔 맞고 영양 상담도 하면서 너무 많이 좋아졌어요. 정말 감사해요(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보호자)"  

잠시 배경을 설명하면 나는 소위 Big 5병원 한 곳의 암병원에 있는 암치유센터라는 곳에서 근무하면서, 암환자들의 각종 증상 관리와 건강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이곳은 암치료를 직접하지는 않지만, 환자들이 암을 치료하면서 겪는 각종 신체적·정신적 어려움들에 대해 도움을 주고, 장기적인 건강 관리를 제공하는 곳이다.암병원 1층 로비 옆 가장 노른자위 같은 공간에서 재활의학과·정신건강의학과·정신과가 함께 진료를 하고, 영양상담·통증상담·호스피스 상담 등을 위한 상담실이 함께 있다. 

암치유센터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고 감사한 점 중 하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도움을 주는 다른 전문 인력들이 많다는 점이다. 

암환자들의 경우 직장에 복귀해야 할지, 또는 직장을 그만둬야 할지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의학적인 소견이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잘 지지해주고 대처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의사가 하는 것이 효율적이지도 않을 뿐 더러, 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위의 환자분은 '암 직장 복귀 상담'에 대한 경험이 많은 교육센터의 종양 전문 간호사분께 의뢰를 드렸다. 

환자가 의사를 보는 것은 그들의 일상에서 정말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약물치료와 같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의사가 제공해준다고 하더라도, 매일 매일의 삶에서의 식생활과 영양 같은 부분은 건강에서 약물치료 못지 않게 중요한 부분이다.

의사가 전체적인 영양 섭취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는 있겠지만, 일일이 코칭을 해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직접 가정을 방문해서 무언가를 해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위의 암환자분은 정기적으로 통증 관리를 받으시는 한편, 가정간호를 통해서 보충적인 경정맥 영양을 받고, 영양사분과 영양 상담을 하면서 항암치료를 지속하고 있다. 

이 외에도 종양 전문간호사인 코디네이터 간호사가 암생존자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교육, 호스피스 대상자 및 가족에 대한 완화의료 상담과 기관 소개 등을 해주시고 계시는데,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분이다. 아무래도 미리 한번 Survivorship에 대한 평가와 교육을 받고 진료실에 들어오시면 진료가 수월하게 진행되고, 호스피스 이용에 대한 상세한 교육이나 기관 소개 같은 상담을 도와주시니 환자 진료시엔 통증 관리 등 의학적인 내용에 집중할 수가 있다.  

내가 맡고 있는 진료 내용이 지지 치료(Supportive care) 쪽이라서 더 그렇겠지만, 환자들은 정말 다양한 요구를 가지고 있고, 의사가 이를 모두 충족시켜 주기는 어렵다. 효율성의 문제도 있겠지만, 전문성의 문제도 있다. 의사들이라고 해서 환자의 심리사회적 문제, 영양 문제 등에 대해서 전문가 수준의 training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안타까운 것은 내가 근무하는 환경은 정말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매우 예외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선진국의 경우 일차의료기관들은 점차 다학제 그룹 프랙티스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의사도 보통 여러 명이 있지만, 일차의료 기관 안에 간호사·약사·물리치료사·금연 상담사 등이 함께 근무하면서 의사와 팀이 되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내부에 없는 해당 인력이 경우에는 지역 사회 내의 영양사나 사회복지사 등에게 연결을 하고 이에 대한 수가도 받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필요한 환자들에게는 적절한 전문인력이 가정 방문도 갈 수 있고, 환자들에게 개괄적인 설명 이외에 더 밀착적인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다. 

현재 일차의료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에서는 간호사 코디네이터를 두는 것을 권장하고 있지만, 대개의 병원에서는 다학제 팀 진료는 커녕 간호사 1명을 고용할 여건이 되지 않는 곳이 많다.

정부에서 커뮤니티케어라는 것을 통해서 뭔가 다양한 직종의 전문인력을 참여시키고자 하는 방향을 잡은 것 같지만, 팀 리더로서의 의사의 역할이 불분명해 보인다.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과 같은 곳이 몇 군데 있긴 하지만, 보편적인 모델이 되기에는 의사의 개인적 성향이나 사명감이 기반이 돼야 가능한 모델 같다. 

선진국에서는 일차의료 의사의 수련 항목중에 리더십이 들어간다. Team-based care에서 의사는 Clinical team의 leader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오더를 내리는 위치가 아니라, 팀원들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이끌어나가야 하는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이 단독개원에 하루에 100명씩 진료를 해야 유지되는 우리나라의 구조에서, 여러 전문인력과 함께 일하는 팀 기반의 케어가 제공될 수 있을까? 의사가 그 팀의 리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사실 현실을 보면 회의적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가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의료기관의 자연스런 변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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