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 구속 규탄' 궐기대회 "분만 현장 사라질 것"
"태반조기박리 사망률 최고 12%…산부인과 10명 중 1명 구속될 것"
분만사고의 가혹한 판결에 대한 의사들의 규탄 목소리가 비오는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웠다. 최근 법원이 과다출혈로 산모가 사망한 사건에서 산부인과 의사에게 책임을 물어 금고 및 법정 구속을 선고한 것과 관련한 규탄 집회다.
'산부인과 의사 구속 규탄' 궐기대회가 20일 저녁 6시 서울역 광장 앞에서 개최됐다. 600여 명의 의사들이 각 지역에서 모였다. 집회 중간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의사들은 가운 대신 우비를 걸치고 자리를 지켰다.
집회를 주최한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 ▲산부인과학회 ▲모체태아의학회 각 회장들은 "의학적 이해가 부족한 부당한 판결"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차원 대책 마련도 함께 촉구했다.
김동석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하루 아침에 산모를 돌보던 의사가 교도소에 들어갔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환자를 살려내지 못한다고 구속한다면, 어느 누가 분만을, 산부인과 의사를 하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모든 의료행위는 선한 의도를 전제로 이뤄진다. 침습적 행위는 그 자체로 통계적 위험도가 있다. 그 결과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돼선 안된다"면서 "산부인과의사들은 무서워서 더이상 분만을 못하겠다고 한다. 납득할 수 없는 판결로 산부인과의사들이 분만실을 떠나는 것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김승철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우리는 두 생명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준다는 보람과 자부심으로 산부인과의사가 됐다"며 "하지만, 대한민국의료의 현실은 이러한 사명감에 재를 뿌리고 있다. 사명감은 의료사고에 대한 근거없는 처벌과 억울한 감옥살이로 돌아왔다"고 한탄했다.
"예측 불가능한 태반조기박리의 사망률은 무려 최고 12%다. 산부인과 10명 중 1명이 감옥에 가야한다는 말"이라며 "최선의 노력을 해도 결과가 나쁘다고 구속돼 감옥에 갇혀 대법원 판결을 받아야한다면, 그 누가 산부인과 의사를 하고, 분만을 하겠느냐!"고 외쳤다.
김윤한 대한모체태아의학회장은 줄어들고 있는 분만 인프라 문제를 짚었다.
김윤한 회장은 "우리나라의 분만 인프라가 붕괴에 도달하고 있다. 분만 응급의료수가 불인정, 분만실 사용료 불인정과 타 국가에 비해 분만료 역시 턱없이 낮은 것이 큰 원인"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불가항력적인 해결에 정부지원이 미흡하다. 이번 판결처럼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를 이유로 구치소에 감금하는 현실에 산부인과의사들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안전하게 분만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한 인력과 시설, 재정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외국에서 행하고 있는 무과실 보상제도 등의 도입 또한 고려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해당 사건과 같은 불행한 사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현재 추진 중인 의료개혁 투쟁을 반드시 이뤄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대집 회장은 "최근 불가항력적 사고에 대해, 법원이 해당 산부인과의사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에서 구속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선의를 바탕으로 한 의료행위에 의사들을 법정구속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 이런 사태를 반드시 끝내야 한다!"고 외쳤다.
"의료계는 의료개혁 총력전을 선언했다. 의쟁투가 추진 중인 6대 의료개혁 과제에는 '의료사고 특례법 제정'도 포함돼 있다. 이번과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며 "우리가 힘을 합쳐 요구한다면, 반드시 관철시킬 수 있다"며 투쟁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이철호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안동에서 10여 년간 밤낮으로 헌신하며 진료하던 의사선생님이 구속됐다. 정상 분만도 아닌, 사상아 분만 중 은폐형태반 조기박리라는 병을 진단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며 "우리는 동료의사를 격려하고, 응원하기 위해, 앞으로 환자를 진료하다 교도소 담장을 넘어, 잡혀들어갈 선·후배 동료의사들의 비극을 방지하기 위해 모였다"고 말했다.
"감옥에 간 선생님은 절대 고의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지 않았다. 산부인과 원장님이 감옥에 갈 이유가 있는가? 결코 없다"면서 "10여 년을 의사로 살아온 분 사람에게 도주의 우려가 있겠는가. 최종 판결도 나지 않은 상황에서 법정구속은 옳지 않다"고 짚었다.
무소속 이언주 의원은 "결과만을 가지고 책임자를, 희생양을 찾아 일시적 여론에 부하뇌동하는 것은 비겁하기 짝이 없는 행태"라고 꼬집었다.
"해당 사건과 같은 문제는 구속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짚으며 "결과만 가지고 구속을 하는 행태가 계속된다면, 분만할 곳이 없어 산모들이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호텔이라도 잡아야 하는 웃기는 현실에 처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재왕 경북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은 해당 사건 자체가 이미 형벌이며 가해자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재왕 의장은 "의사도 사람이고, 의사도 국민이다. 해당 사건은 선의에 따른 결과다. 악의의 결과가 아니다"며 "해당사건에서 피해자는 환자와 의사 모두다. 그 자체로 두 사람 모두에게 형벌"이라고 규탄했다.
"불가항력적인 사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의료사고가 줄어들 수는 없다"며 "법원의 최종 판단으로,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 주실 것을 간곡히 기대한다"고 외쳤다.
홍옥녀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은 "해당 사건에는 간호조무사도 포함돼 있다. 만약 현 판결이 확정된다면, 의료현장에서 묵묵히 의료를 행하고 있는 간호조무사들은 허탈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며 "간호조무사협회는 법원 판결과 관련해,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와 뜻을 함께할 것이다. 향후 상급심에서 합리적인 판결이 나올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힘을 보태겠다"고 선언했다.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산부인과는 전공의 정원을 다 채우지 못했다. 열악한 현실과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젊은 의사들은 산부인과 지원을 기피하고 있다"며 기피 문제를 먼저 짚었다.
"전공의들은 이번 실형 선고와 법정 구속 조치가 너무도 큰 짐으로 다가온다"며 "더이상 감옥에 가야하는 두려움에 떨고 싶지 않다. 국민 곁에서 단단하게 생명을 지켜낼 수 있도록 간절한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산부인과의사들의 현실을 반영한 '러시안 룰렛'퍼포먼스도 이어졌다.
퍼포먼스에는 의사 5명이 등장했다. 앞에 놓인 총을 차례로 머리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러시안 룰렛은 6개 중, 1개에만 총알이 들어있다. 하지만 퍼포먼스의 등장한 러시안 룰렛에선 5개의 총알이 들어있었다.
의사들은 모두 방아쇠를 당긴 즉시 쓰러졌다. 마지막에 산모가 등장해 가지 말라고 절규하지만, 마지막 의사 역시 방아쇠를 당기고 쓰러졌다. 산모는 갈곳이 없어 허탈하게 주저 앉았다.
'원장 구속으로 본병원 분만실을 폐쇄하오니 양지바랍니다'라는 현수막을 드는 것으로 퍼포먼스는 종료됐다.
2019년 6월 27일 대구지방법원 제3형사부는 형사 2심 판결에서 산부인과 의사에게는 금고 8개월과 법정 구속을, 분만 담당간호사에게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안동 소재 개인 산부인과 의원에서 사산아를 유도 분만하던 중 의료진이 부주의로 태반조기박리에 의한 과다출혈을 인지하지 못해 산모가 사망했다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