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사 단체행동과 기본권 보장' 토론회
파업제재 법조항 폐지·의사노조 설립 논의 필요
"의사 파업은 당연한 권리다."
의료 거버넌스가 의사단체를 배체한 채 독단적으로 이뤄지고, 비민주적인 협상구조와 허구적 사회참여형 의료가 강요되는 상황에서 의사 개인의 노동기본권까지 제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8월 17일 의협 용산임시회관 7층 대회의실에서 '의사의 단체행동과 기본권 보장' 토론회를 열고 각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의사들의 단체행동권에 대한 법·제도적 접근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의협은 비정상적인 한국 의료를 정상화해 의사가 소신있게 진료할 수 있고, 국민을 위한 최선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들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며 "필요할 경우 전면적인 단체행동을 불사하는 강력한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협은 합법적인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해외 사례 등을 참조 검토하고 있으며, 의료법상 진료개시 명령과 공정거래법상 관련 조항 개정을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이필수 의협 부회장(전라남도의사회장)은 "정부는 보장성강화 정책을 일방적으로 독주하고 있으며, 원격의료시범사업도 의료계와 논의없이 강행하고 있다"며 "의료인의 과로사가 잇따르고 의료인에 대한 폭행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보건의료체계는 비정상적으로 퇴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부회장은 "비정상을 정상화시켜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며 "이번 토론회가 의사의 집단행동에 대한 법적 근거마련을 위한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의사의 쟁의권'에 대한 발제를 맡은 안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은 독일·스위스·프랑스·이탈리아·핀랜드·영국 등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의사파업 현황을 소개했다.
안 소장에 따르면 독일 병원의사조합인 Marburg Bund는 병원 근무 피고용의사조합으로 가입·탈퇴가 자유로우며 파업권이 보장된다. 헌법에 보장된 파업권에 따라 파업 참여는 고용의무 위반이 아니고 파업참여 통보도 할 필요가 없다. 파업기간 중에는 고용계약이 자동으로 일시 정지 되며, 파업 기간 보상 근무를 위한 근로시간 재조정 역시 안해도 된다. 또 고용주는 파업으로 인한 민·형사상 책임을 제기할 수없으며, 어떤 제재도 금지된다.
개원의도 단일 공단급여자로 조합설립이 허가돼 외래의사조합인 Hartmann Bund를 구성하고 있다.
안 소장은 "관료주의적 의료정책과 제도, 비영리 의료기관으로서 영리기관 운영방식 체제, 상급종합병원 선호에 따른 업무 과부하 및 근로조건 악화 등이 상존하는 한국에서 의사 파업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노동권의 역차별"이라며 "민주화에서 의료민주화가 가장 우선 과제이며, 공정거래법·의료법 등의 파업 제재 조치와 관련된 악법 폐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강현 의협 KMA 폴리시특별위원회 위원은 '일본 의사 파업 사례' 역사를 되짚었다. 일본의사회는 진료보수 단가 인상(1961년)과 의료보수 물가연동제(1971년) 등을 촉구하며 두 차례 파업을 벌였다.
김 위원은 일본의사회 파업의 성공 요인으로 당시 회장이던 다케미 타로 회장의 지도력과 일관성 있는 업무 추진을 꼽았다. 또 치과의사회·약제사회 등의 참여가 중요하게 작용했다며 다른 직역 단체와의 연대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일본의사회는 두 차례 파업을 통해 안정적 진료수가시스템과 수가의 물가연동제를 쟁취했다.
김 위원은 "일본의사회는 파업투쟁을 종결한 후에도 실행 감시체계를 유지해 요구조건이 제대로 관철되는 지 지속적인 감시활동을 벌였다"며 "장관급인 후생상과의 합의에 이어 협상과정에 수상의 참여를 이끌어 8개항목의 합의를 도출해냈다"고 설명했다.
김재현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조직강화이사(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동남권원자력의학원 분회장)는 '의사의 노동권' 발제를 통해 "의사들의 노동권인 진료권을 지켜낼 수 있는 정당한 법적 권력을 창출하기 위해 법적인 정당성과 이것을 쟁취하기 위한 조직의 단결과 지속가능한 투쟁 조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비민주적인 당연지정제와 폭력적인 국민건강보험법 등으로 다수결로 의학적 타당성을 대신하며 의사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한 김 이사는 "수동적인 방어전략으로는 무너지는 의사들의 노동권과 왜곡된 의료전달체계의 방향을 틀어, 의사와 국민, 국가의 권리와 책임 사이에 균형을 잡아가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까지 실패했던 과거를 분석하고 의사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법적 권력을 지닌 전국 단위 의사노조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패널토의에서는 의사 단체행동의 법적 정당성과 한계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김기영 고려대 연구교수(고려대 좋은의사연구소)는 "단체행동권 행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여러 사례에서 의사파업 이후 사망률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결과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필수 의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파업 사전 고지 등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직업의 전문성과 치료의 자유가 중요하다. 독일의사들은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과 자율규제를 통해 자치권을 확보했다"고 지적했다.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의료의 미래를 짊어진 전공의들은 우리의 문제가 곧 국민과 환자에게 직결될 수 있기에 강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며 "왜곡된 의료체계 등 갖가지 현실과 마주하지만, 단체행동에 따른 정당성 확보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국민에게 어떻게 알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다"고 의료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영국 외과 전문의로 국내에 1년간 연수차 내한한 박현미 고려의대 교수(전 재영한인의사회장)은 한국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박 교수는 "영국에서 외과전문의로 지내면서 지난 2016년 세차례 시위에 동참했다. 근무조건과 급여문제였고 연금과 관련된 진료시간 문제도 있었다"며 "교수진도 모두 동참해 주니어의사들에게 '너희가 해야 할 일이고 싸워야 할 일'이라고 격려하면서 함께 했다. 결국 여러가지 협상의 결과물이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는 왜 안 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전선룡 의협 법제이사는 "내부적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가의 문제"라며 "외부적으로는 법률 불복종운동이나 헌법적 대항권도 있겠지만, 외부의 지지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이사는 "시민단체나 의사파업을 경험했던 외국 의사회의 지지 등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