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암, 나도 예외는 아닐것"
두 달 남짓 만에 온 그는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한눈에 봐도 지난번 보다 얼굴은 많이 부었고, 머리는 듬성듬성해졌다.
그는 나와 나이가 거의 비슷한 40대 초반.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초여름이니, 1년하고 두 달쯤이 지났다.
담배 한 모금 피운 적 없지만 폐암을 진단받았고, 처음부터 반대측 폐와 간, 전신의 뼈, 그리고 시신경 근처까지 전이가 되어있던 환자다.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고, 임상시험을 기다리던 와중에 통증이 심해져서 암통증 클리닉으로 찾아왔었다.
다행히 통증은 어느 정도 관리가 됐지만, 다른 약제로 시작한 항암치료 중 식욕부진과 체중감소가 너무 심해졌다. 영양사분을 만나게 해드리고, 가정간호로 보충적 경정맥 영양(supplementary parenteral nutrition)을 몇차례 해줬더니 전신 컨디션이 좋아졌었던 환자다. 그때 그의 아내가 남편의 상태가 너무 많이 좋아졌다면서 감사하다고 말했던 그 장면은 아직 뇌리에 깊이 남아있다. 요새 진료하면서 그런 진심 어린 감사인사를 받은 적이 많지 않아서겠지만.
이후 항암을 지속하면서 한달에 한두 번 정도는 통증 조절을 위해 오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두달 만에 온 것이다. 차트를 보니 그 사이 응급실 통해 입원도 하고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 사이 그의 암은 더 많이 진행을 했고, 마약성 진통제는 양이 많이 늘었다. 그의 아내는 더 이상 항암은 할 수 없다고, 이제 완화의료를 받으라고 듣고 오셨다고 했다.
속효성 진통제를 조금 조정해드리고, 호스피스 완화의료 상담을 받게 했다. 얼마 후 다음 환자들을 보고 있는데 호스피스 상담 간호사분이 외부 호스피스 기관으로 전원을 가시기로 했다면서 전원 의뢰서를 작성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오후 외래를 마칠 때 외래 수간호사분이 커피 몇 잔을 들고 오셨다. 그 환자가 주고 싶어하셨다고 전해 달라면서, 아내분이 방금 오셔서 주고 가셨다고. 줬이 글을 쓰기 단 몇 일 전의 일이니 어쩌면 다시 또 뵐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도 그렇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나이가 비슷해서였을까? 아님 너무 착하신 분이어서였을까? 유독 기억이 많이 나는 환자분이다. 통증으로 아플 때도, 항암으로 잘 먹지 못할 때도 선한 인상으로 짜증한번 내지 않으셨다. 형식적이지도, 과도하지도 않은 인사로 감사함을 표하셨던 분이었다. 어차피 보통 하는 진료에서 특별히 잘 해드릴 것도 없지만, 그를 볼 때면 조금 더 마음이 간 것 같다. 그의 남은 삶이 조금 더 의미있고 행복하기를, 그리고 그의 착한 아내에게도 마음의 위로가 있기를 바란다.
호스피스를 전업으로 하시는 선생님들, 매일 삶과 죽음을 보시는 종양내과 선생님들 앞에서 하기엔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를 보는 일은 만감이 교차하는 일이다. 수북이 쌓여 있는 진료 예약증을 하나하나 클리어하듯 쾌속 진료를 하다가도, 말기암 환자가 들어오면 일단 잠시 슬로우 모드로 바꾸게 된다. 의료적 필요가 더 높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냥 그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야 하지 않나 하는 그런 본능적인 생각인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몇 달 정도 외래에서 보다가 이제는 호스피스 기관에 입원을 하셔야겠다면서 전원 소견서를 써 드릴때는 뭔가 마음이 착잡하다. 특히 본인의 상태를 담담히 받아들이시는 분들을 볼 때는 더욱이 그렇다.
나이가 만 사십이 넘어가면서, 삶이 유한하다는 것이 실감날 때가 종종 있다. 말기 환자들을 볼 때도 그 중의 하나이다. 평균 수명을 80을 넘어가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에게 갑자기 예고없이 찾아온 일이 나에게는 찾아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날, 조금 더 행복하고 후회 없이 맞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말기암환자를 볼 때면, 그런 생각이 가끔 든다. 곧 일상의 바쁨 속에 그 생각이 금방 달아나버리곤 하지만.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네 죽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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