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최근 비의료인 의료법인 사무장병원 소송서 잇달아 무죄 선고
"제도 남용해 법인이 사실상 껍데기 아니라면 의료법 위반 아냐" 판단
비의료인 개설 의료기관(사무장병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최근 천안과 부산지역 의료법인 사무장병원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잇달아 선고했다.
의료법에서 금지하는 개설 형태 의료기관에서 불법 진료·과잉진료가 자행되는 행위는 엄중히 단속돼야 한다. 그러나 천안·부산지역에서의 무죄 판결로 인해 의료법인이 개설한 의료기관에 대해 사무장병원 혐의를 씌우는 일은 다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법인은 도입 취지부터가 비의료인도 의료법인의 주도권을 쥘 수 있고, 이 의료법인이 의료기관도 개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료법인의 설립허가권자인 주무관청은 의료법인이 잘 운영되는지 감시·감독하고 불법행위가 이뤄진다면 이를 단속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지난 몇 년 간 의료법인을 비의료인이 주도해 운영했다는 이유로 많은 의료기관이 사무장병원 혐의를 받았고, 요양급여 환수처분, 지급보류처분을 당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최근의 무죄 판결은 의료법인을 비의료인이 주도한다는 이유로 사무장병원 혐의를 씌우는 것은 법 취지에도 어긋나는 것으로, 앞으로 유사 재판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부산지역에서는 최초…의료법인 사무장병원 무죄 선고
부산지방법원은 지난 8월 16일 의료법인 사무장병원 혐의 사건에 대해 무죄를 판결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의료법에 따라 설립된 H의료법인이 적법하게 개설한 의료기관임에도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의 이사진 등을 이루고 있는 경우 속칭 '사무장 의료기관'이라고 해 개설 이후 지급받은 모든 요양급여비용을 환수 처분하고 관련자를 의료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형사고발 했다.
재판에서 검찰은 공소사실을 통해 비의료인이 H의료재단을 설립해 영리를 취하고 의료기관 운영을 통해 수익을 창출해 의료법인의 재산을 사적으로 유용했다고 주장했다. 의료기관 개설 자격이 있는 자가 아님에도 의료기관을 개설해 위료법을 위반했다는 게 요지다.
또 의료법을 위반해 의료기관의 개설자가 될 수 없는 자가 의사를 고용해 의료행위를 하게 한 경우에는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비용 등을 청구할 수 없음에도 요양급여비용 등을 청구해 상당 금액을 지급받아 사기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산지방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료법은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의료법인에도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자격을 명시적으로 부여(의료법 제33조 제2항)하고 있어 H의료법인 설립은 적법하다는 것.
또 비의료인 설립자(피고)들이 H의료재단을 사실상 개인적으로 운영해 그 운영 이익을 취득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사기죄와 관련해서도 의료법에서 정한 대로 적법하게 의료법인을 개설할 것이므로 건보공단에 요양급여비용 등을 청구한 것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천안지역 의료법인, 1·2심 이어 대법원서도 첫 무죄 판결
부산지방법원의 무죄 판결에 앞서 천안지역에서도 의료법인 사무장병원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무죄가 최초로 확정됐다.
대법원은 지난 5월 30일 천안 소재 G의료재단 B병원 이사장 등에 대해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의료법인 사무장병원 최초 대법원 무죄 확정판결이 됐다.
이 사건은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무죄판결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의료법에 의해 설립된 의료법인은 적법하고, 건보공단에 요양급여비용 등을 청구하는 것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1심(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에서는 의료법인은 의료기관 개설 자격이 있음으로 이 의료기관이 사무장병원에 해당하려면 법인 제도를 심각하게 남용해 사실상 법인이 껍데기에 이르러야 하는데 이 사안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적법하게 설립된 의료법인이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는 과정에서 그 임원이 배임·횡령 등의 위법행위를 다소 범했다고 하더라도(그 개별적인 위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비의료인이 처음부터 의료법인의 명의를 빌려 의료기관을 개설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회계장부를 조작하거나 의료법인의 자금을 개인적으로 인출한 정황이 확인되지 않는 점, 피고인들이 이 사건 의료법인의 재산과 개인의 재산을 혼용해 사용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봤다.
항소심(대전고등법원)에서는 위 내용이 그대로 인정된 데 더해, "설사 의료법인의 이사장이나 이사들이 불법행위를 했더라도 의료법인 또는 의료인에 의해 적법하게 이뤄진 의료기관 개설행위 자체가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행위(의료법 위반)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는 "그동안 하급심 무죄 판결, 혹은 검찰 단계의 불기소처분은 있었으나, 이번 판결은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하급심 무죄 판결을 확인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며 "이 판결은 현재 진행 중인 여러 의료법인 관련 사건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 "부산·경남지역에도 의료법인이 개설했음에도 사무장병원 혐의를 받는 여러 의료기관이 있는데, 이 사건들에도 위 판결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했다.
"물론 전국적으로 문제 있는 의료법인·요양병원은 많다"고 밝힌 정 변호사는 "그러나 법리와 원칙에 맞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사상누각이 될 뿐"이라며 "이번 부산지방법원과 대법원판결로 의료법인의 불법성에 대해 더욱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판단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검찰단계서 불기소처분…의료법인 사무장병원 혐의 벗기도
한편, 검찰 조사 단계에서 불기소(무죄취지) 처분을 받아 법원 재판 없이 의료법인이 사무장병원 혐의를 벗는 사례도 있다.
김주성 변호사(법무법인 반우)는 검찰 불기소 처분 사건과 관련 "의료법인의 기본재산이 탄탄함에도 일부 이사회의 운영 미숙 등의 사유로 의료법인이 개설한 의료기관마저 사무장병원의 혐의를 받고, 그동안 지급받은 요양급여비용 전부를 환수당하며 요양급여의 지급도 보류되는 일들이 있다"며 검찰 불기소 처분을 환영했다.
그러면서 "불기소 처분 사건의 의료법인도 요양급여 지급보류라는 고난을 겪었지만, 지급보류에 대한 집행정지 처분을 받아 의료기관의 운영을 안정화했고, 검찰의 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해 무혐의 결정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검찰 단계에서 일단 기소가 되면 재판과정에서 힘든 싸움을 해야 한다"며 "막연히 잘 풀어지리라 생각하기보다 수사 과정에서 적극 어필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