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보여준 냉혹한 섭리

코로나19가 보여준 냉혹한 섭리

  •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04.2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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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전세계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불편을 겪고 있다. 1957년에는 H2N2 아시아독감, 1968년에 H3N2 홍콩독감, 2009년에는 신종플루(swine flu) 팬데믹이 있었는데 이번만큼 큰 피해를 입힌 팬데믹은 1918년 스페인독감에 이어 10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100년이 우리의 인생에서는 긴 시간이지만 진화적으로는 아주 짧은 시간이다.

바이러스·세균·기생충 등의 병원체가 다른 종의 숙주에 퍼져서 피해를 입히는 일이 자연에서는 흔하게 발생하며, 부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우리 인간만 봐도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없는 낙후된 지역의 사람들은 다양한 야생동물의 기생충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단지 사람 간에 직접 전염되지 않아서 우리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코로나19가 유별난 점이라면 전염성이 매우 높다는 점 정도다. 인류는 항생제를 여러 가지 개발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균성 전염병은 차단시킬 능력이 있다. 기생충은 대개 중간숙주를 통하거나 대변으로 배출된 충란을 통해서 감염되기 때문에 도시에서는 잘 전염되지 않는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호흡기를 통해 직접 전염되며 즉각적으로 대처할 약물이 없어서 확산을 막지 못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은 원래 다양한 감염병에 시달리며 살았다. 심지어 세균도 바이러스에 감염돼서 죽는 일이 있다. 인간 유전체에는 먼 옛날 삽입된 레트로바이러스의 DNA가 10% 가까운 비율을 차지한다. 우리가 아주 복잡하고 정교한 면역계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진화과정에서 항상 감염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2008년 <Nature>에 발표된 <Global trends in emerging infectious diseases(신종감염병의 세계적 동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에 1940년부터 2004년까지 학계에 보고된 신종감염병을 조사한 결과가 실렸다. 

조사기간 동안 야생동물의 병원체가 새롭게 사람에게 감염되는 일이 1년에 평균 2건 이상 발생했다. 보고된 지역은 선진국이 대부분이었다. 야생동물과 접촉이 잦은 낙후된 지역에서 신종감염병이 더 많이 발생했더라도 학계에 보고할만한 전문가들이 없어서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픽·일러스트/윤세호기자 seho3@kma.orgⓒ의협신문
그래픽·일러스트/윤세호기자 seho3@kma.orgⓒ의협신문

야생동물의 질병에 전염될 위험이 가장 높은 집단은 동물을 사냥해서 살아가는 부족일 것이다. 동물에게 물리거나 동물의 혈액이나 배설물을 통해 동물의 병원체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고 멀리 이동하지 않고 자기 집단 구성원들끼리만 접촉하며 사니까, 신종감염병이 발생해도 부족원들 중 일부만 죽고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끝날 가능성이 높다.

야생동물의 질병이 가축에게 전염되는 경우 외에는 우리가 발견하기 어렵지만 자연계에서도 신종감염병 발생이 드물어야 할 이유는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유사한 다양한 코로나바이러스들을 박쥐가 보유하고 있는데 천산갑에서도 유사한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유전적 유사성으로 봤을 때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수백 년에서 최근 사이에 천산갑에게도 전염되어 퍼진 것이다. 

태즈메이니아 섬에 사는 유대류인 태즈메이니아데빌은 전염성 암(Devil facial tumour disease) 때문에 멸종위기 상황에 처했다. 1996년에 처음 발견된 이 암세포는 유전자 분석 결과 한 마리의 동물에서 기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되면 12개월에서 18개월 사이에 감염된 숙주를 100% 죽인다. 이 끔찍한 질병이 더 오래 전에 발생했다면 전염이 불가능할 지경까지 숙주를 죽이고 같이 소멸해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전염성 암은 조개류에서도 몇 가지가 발견됐다. 남미에 사는 칠레담치와 유럽에 사는 진주담치는 서로 먼 거리에 서식하는 다른 종인데도 같은 종류의 암세포에 감염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간이 배를 타고 다니다보니 적도를 건너서까지 병을 전염시켰다. 

생태적 관점에서 보면 동물의 몸은 전쟁터다. 살을 뜯어먹으려는 맹수, 피를 빨아먹으려는 벌레, 장 속에 들어와 영양분을 뺏어먹으려는 기생충, 체내에 침투해 번식의 토대로 삼으려는 병균과 바이러스까지 득실대는 자연에서 버텨내고 번식하는 과정이야말로 자연의 섭리라고 할 수 있겠다. 모두가 각자의 유전자에 새겨진 대로 따라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인류를 오랫동안 괴롭혀온 기생충과 병균과 바이러스의 상당수를 떨쳐내고 평화를 누렸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가 이 냉혹한 생태계에서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야생동물을 잡아다 거래하는 등의 위험한 행위를 중단하고, 새로운 병원체에 대비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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