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원격의료 도입인가?' 국회 토론회
의료계·시민단체 "의료전달체계 왜곡·환자 안전 걱정된다" 한목소리
보건복지부 "대면진료 기본, 비대면 보조 원칙…의료기관별 보상" 밝혀
"지난주 88세 환자가 내원했다. 증상에 따르면, (혈압을)잴 필요가 없었던 환자였지만, 혈압을 쟀다. 맥박이 170에 달하는 심각한 부정맥이 발견됐다. 이내 상급 종합병원으로 옮겨 진료를 받았다."
조현호 대한개원내과의사회 의무이사는 17일 정의당 배진교 의원과 무상의료운동본부가 주최한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원격의료 도입인가?' 국회 토론회에서 지난주 내원한 환자 경험을 언급하며 "원격의료 추진 시 의료사고가 급증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증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원격의료'의 위험성을 직접적으로 짚은 것.
조현호 이사는 "의료사고는 대면진료에서도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의료의 질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대리처방에 대해서도 엄격한 규제를 두는 이유"라며 "현재 원격의료에 대한 제도적·법적 안전장치가 전무하다. 의사는 책임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이때 진료의 효용성 역시 급락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우리나라 고혈압 당뇨 환자는 OECD 평균의 2배 입원율을 기록하고 있다. 질환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고, 잘못된 노력을 하는 분들도 많다"고 설명하며 "이러한 환자분들을 중장기적으로 관리해 의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의료비 절감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전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5일 원격의료 추진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첫 진료는 대면으로 진료하더라도 이후 2번째, 3번째 병원을 방문해 약을 처방할 땐 굳이 병원을 찾지 않더라도 신속하게 약 처방받도록 하는 방안"을 언급한 데 대한 반박이다.
의료전달체계에 문제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조현호 이사는 "현재 빅5 병원을 제외한 상급종합병원조차도 무한 경쟁 상황이다. 원격의료는 1인 의원들을 폭망하게 할 것이고, 그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는 OECD 국가 중, 의료접근성이 크게 떨어지고, 의료비 부담이 큰 나라에서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원격의료 도입 필요성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토론자들은 정부가 원격의료를 추진하려는 목적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특히, 정부의 원격의료 관련 정책 추진이 투명하지 않다는 데에도 의견이 모였다.
김철중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코로나19로 경제 위기 속에서 불평등이 다시 악화하고 있고, 불평등 문제가 사회적 현실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경제부처가 앞장서고 정치권이 달라붙어서 원격의료를 거론하는 상황은 정부 정책 방향이 '재난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의료 돈별이 수단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유재길 무상의료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 역시 "IT, 통신 대기업과 의료기기산업계의 숙원을 들어주어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라며 "장비에만 20조 원 이상이 소요된다는 원격의료 비용은 환자들이 떠안게 될 것이다. 누구를 위한 신성장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원격의료가 아니라고 하지만 누구도 믿지 않는다. 주객이 전도돼 보조적 수단에 머물러야 할 비대면 진료가 주가 되고, 코로나19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대면진료에 필요한 수단들은 완전히 부차화되고 있다"고 한탄했다.
발제를 맡은 김창엽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2020년 대구지역 1/4분기 통계청 자료에서 대구지역의 사망자 수가 예년에 비해 10% 높게 나왔다. 초과 사망자가 나왔다는 것"이라며 "현재까지 드러난 감염병 유행 시, 가장 중요한 의료 이용 문제는 의료체계의 과부하 또는 기능 부전 때문에 초래되는 필수의료 이용의 어려움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건강과 보건의 관점에서 봤을 때, 원격의료는 '정책적' 합리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는 경제와 산업 관점에서도 그렇다.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포스트 코로나 대책으로서의 원격의료는 우선순위가 높지 않다"며 원격의료의 목적과 유효성에 대한 의문을 거듭 제기했다.
김국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의료계 및 시민단체의 우려에 대해 공감을 표하며, 다양한 우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고민하겠다고 정리했다.
김국일 과장은 "여러 토론자분의 지적처럼, 특별한 의료기기나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에 초점에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산업의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비대면진료는 국민건강 증진과 의료 접근성 향상, 방역 예방을 위해 추진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비대면진료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와 제안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다. 이런 부분은 정책 실무자로서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며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 문제에 대해서도 의사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겠다. 우려하는 의료전달체계 문제, 쏠림현상에 대해서도 1, 2, 3차(의료기관)에 모두 적당한 보상체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김 과장은 "단기 개선과제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경증질환은 개원가, 중증질환은 대형병원에서 받을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잡고 있다. 비대면진료 역시 이런 방향성을 가지고 마련할 것"이라면서 "비대면진료가 전달체계를 혼동시키는 결과를 가져와선 안 된다. 대면진료가 기본이 돼야 하고, 비대면진료는 보조적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임을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