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현지조사 위법해 현지조사 결과 따른 행정 처분도 잘못" 판단
건보법·의료급여법에 보건복지부 권한 규정…심사평가원 직원 단독 조사 제동
현지조사(행정조사)에 대한 권한이 없는 무권한자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직원에 의해서만 이뤄진 현지조사와 현지조사 결과에 따른 행정 처분은 잘못됐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이 반드시 현지조사에 참여해야 하는데, 공무원 명의만 빌려서 이뤄진 현지조사는 문제가 있다고 법원이 칼을 들이댄 것.
이번 판결은 법원이 행정청의 처분이 근거가 부족해도 봐주고 넘어가던 것에서 법적 통제를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앞으로 행정청의 현지조사 관행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서울행정법원(행정 제12부)은 6월 18일 A의사가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제사한 '업무정지 처분 취소 및 의료급여비용 환수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현지조사팀이 급여비용을 부당하게 처방했다는 이유로 해당 의료기관을 방문해 관련 자료 등을 협조받고 조사할 때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이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면 현지조사 자체가 위법하고, 현지조사에 따른 행정 처분도 취소해야 한다는 취지다.
지방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A의사는 2016년 12월 5일∼2016년 12월 7일까지 보건복지부로부터 의료급여비용 적정 청구 여부 등에 관한 현지조사(조사대상 기간 : 2016년 5월부터 2016년 10월까지)를 받았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의료급여법 제32조 제2항 및 국민건강보험법 제97조 제2항을 근거로 현지조사를 실시했고, 구 의료급여법 제28조 제1항 제1호(2017년 3월 21일 개정되기 전의 것)에 따라 187일의 의료급여기관 업무정지 처분을 했다.
이어 담당 지자체는 구 의료급여법 제23조에 따라 2078만 9670원의 의료급여비용을 환수한다고 통보했다.
현지조사 결과 A의사가 ▲내원일수 거짓청구 및 약제비 부당청구 ▲선택 의료급여기관 이용 절차 위반 청구 및 약제비 부당청구 ▲의료급여기관 외 진료 후 의료급여비용 청구 및 약제비 부당청구를 했다는 이유.
이런 처분에 대해 A의사는 소송을 제기하고 부당함을 호소했다.
A의사는 현지조사에 따른 행정 처분은 절차적으로 위법한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현지조사는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의 방문 없이 심사평가원 소속 직원들에 의해서만 실시돼 조사 권한 없는 자에 의해 이뤄진 위법한 조사이고 ▲보건복지부 장관은 현지조사를 실시함에 있어서 행정조사기본법(제17조 제1항)에 따른 사전통지를 하지 않았으며 ▲현지조사 과정에서 심사평가원 직원들은 A의사에게 처분 사유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고, 환자별 부당금액을 확인할 수 있는 부당청구자 명단을 교부하지도 않았다는 것.
재판 과정에서 인정된 사실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2016년 11월 29일 현지조사를 실시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소속 주무관 B씨와 심사평가원 소속 직원으로 이뤄진 현지조사팀(보건복지부 공무원을 반장, 심사평가원 선임자를 팀장으로 편성)을 구성했다.
또 의료급여법 제32조 및 국민건강보험법 제97조에 의해 현지조사를 실시한다는 현장조사서와 의료급여 관계 서류 제출 요구서를 A의사에게 제시했다.
그러나 현지조사가 실시된 2016년 12월 5일∼2016년 12월 7일까지 현지조사팀 반장인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 B씨는 이 사건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심사평가원 직원만으로 이뤄진 현지조사의 위법 여부를 꼼꼼하게 살폈다.
의료법에서는 행정조사권을 '관계 공무원'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의료급여법과 국민건강보험법에서는 현지조사의 근거가 되는 행정조사권을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으로 규정하고 있어서다.
또 현지조사 권한을 심사평가원 또는 그 직원에게 '위탁'했는지에 대해서도 국민건강보험법·의료급여법·의료법 등을 자세하게 살폈다.
그 결과,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행정권한의 위탁은 법령에 근거가 필요하나, 보건복지부 장관이 현지조사 권한을 심사평가원에 위탁할 수 있는 근거 법령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이 실제 참여하지 않고 심사평가원 직원(권한 없는 자가 시행)만으로 이뤄진 의료급여기관에 대한 현지조사는 위법하고, 현지조사에서 취득된 자료는 증거로 쓸 수 없다"고 봤다.
이와 함께 "행정처분의 근거가 된 이 사건 현지조사는 권한 없는 자에 의해 실시된 하자가 있어 위법한 행정조사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각 처분은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보건복지부는 1심 재판 결과에 불복해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다.
이번 사건 원고 측 변호를 맡은 김연희 변호사(법무법인 의성)는 "현지조사는 행정조사에 해당하지만 현지조사를 통해 부당한 요양급여비용 청구 증거를 수집하고 이를 근거로 행정 처분 및 형사 절차가 진행되는 이상 의사들은 방어권 보장을 위해 현지조사의 근거 법령, 행정절차법 등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건강보험법상 현지조사의 권한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권한으로 돼 있는 만큼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에 의해 현지조사가 진행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판결"이라고 덧붙였다.
김주성 변호사(법무법인 반우)도 "보건복지부는 심사평가원 직원들이 보건복지부 장관의 위임을 받고, 장관 명의의 조사명령서를 근거로 현지조사를 했으므로 적법하다고 항변한 것으로 보이지만, '의료법 제61조의 보고와 업무 검사' 등에는 적용될 수 있겠으나 이 사건 '국민건강보험법 제97조의 보고와 검사'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의료법 제61조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관계 공무원을 시켜' 의료기관의 업무 상황을 검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관계 공무원인 심사평가원 직원에게 의료법 제61조에 따른 업무 검사를 할 수 있지만,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보고와 검사는 어디까지나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의 권한과 의무여서 위임할 수 없다는 것.
김 변호사는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의 참여 없이 심사평가원 직원이 단독으로 현지조사를 하는 것은 무권한자의 행정조사로서 무효이기 때문에 무효인 행정조사에 근거한 행정 처분은 위법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관련 법령>
* 국민건강보험법 제97조(보고와 검사)
② 보건복지부장관은 요양기관(제49조에 따라 요양을 실시한 기관을 포함한다)에 대하여 요양·약제의 지급 등 보험급여에 관한 보고 또는 서류 제출을 명하거나, 소속 공무원이 관계인에게 질문하게 하거나 관계 서류를 검사하게 할 수 있다.
* 의료급여법 제32조(보고 및 검사)
② 보건복지부장관은 의료급여기관(제12조에 따라 의료급여를 실시한 기관을 포함한다) 및 제11조 제6항에 따라 급여비용의 심사청구를 대행하는 단체(이하 "대행청구단체"라 한다)에 대하여 진료·약제의 지급 등 의료급여에 관한 보고 또는 관계 서류의 제출을 명하거나 소속 공무원으로 하여금 질문을 하게 하거나 관계 서류를 검사하게 할 수 있다.<개정 2017. 3. 21.>
* 의료법 제61조(보고와 업무 검사 등)
①보건복지부장관,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의료기관 개설자 또는 의료인에게 필요한 사항을 보고하도록 명할 수 있고, 관계 공무원을 시켜 그 업무 상황, 시설 또는 진료기록부·조산기록부·간호기록부 등 관계 서류를 검사하게 하거나 관계인에게서 진술을 들어 사실을 확인받게 할 수 있다.
②제1항의 경우에 관계 공무원은 권한을 증명하는 증표 및 조사기간, 조사범위, 조사담당자, 관계 법령 등이 기재된 조사명령서를 지니고 이를 관계인에게 내보여야 한다.<개정 2011.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