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넘은 손해배상액 산정 장애평가기준 바뀌나?

50년 넘은 손해배상액 산정 장애평가기준 바뀌나?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20.11.1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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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맥브라이드 기준' 대신 '대한의학회 장애평가기준' 적용
법원행정처 "현대의학기술 반영하지 못하는 장애평가기준 개정 추진"

ⓒ의협신문
ⓒ의협신문

최근 환자의 신체장해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미국식 '맥브라이드 평가기준' 대신 한국식 '대한의학회 장애평가기준(KAMS)'을 적용한 판결이 나와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법원은 1936년 미국 맥브라이드 교수가 만든 평가기준을 사용해 왔다. 1963년 개정판이 나왔지만, 외부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를 기준으로 했다는 점과 특히 변화하는 현대의학 기술 발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법원행정처도 지난 50년 동안 바뀌지 않은 장애평가기준 개정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8월 20일 '손해배상 소송에서 활용 가능한 장애평가기준에 대한 비교·분석' 정책연구용역을 공고했다.

법원행정처는 "장애와 관련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맥브라이드 평가표는 1950년대 미국을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어서 각종 검사법이나 의학적 기술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면서 "정형외과에 편중돼 있어 치과나 추상장해 등에 관한 언급이 없으며, 세분화된 분류항목이 다소 미흡하다"고 장애평가기준 개정 배경을 설명했다.

"맥브라이드 평가표는 신체장해의 정도 또는 직업별 장해계수와 노동능력상실률이 비율적으로 부합하지 않거나 명백히 모순되는 경우가 있다"고 밝힌 법원행정처는 "한 부위의 장해가 관점을 달리하면 두 개 이상의 장해로 될 수 있는 경우가 있어 중복평가의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학협회 지침(AMA 지침)의 경우에는 장해 분류가 정밀하고, 영구적인 신체장해만 표시하고 있으며, 복합장해 평가에 있어 더욱 객관성과 합리성을 갖추고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AMA 지침은 순수 의학적 신체기능장애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환자의 나이나 업무 등을 고려하지 않은 점, 신체장해의 정도를 신체 분야별로 구체화하지 않아 일상생활 활동상의 불편 정도 등 추상적 기준에 의해 등급을 분류할 수밖에 없는 점, 신체장해율 표를 이해하기가 어려운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 시행령,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의 신체장해등급표의 경우 노동능력상실률이 기재돼 있지 않고, 아주 막연하고 불명확하게 신체장해를 표현하고 있어 구체적인 항목 적용과 판정이 어렵다. 국가배상법 시행령 별표의 신체장해등급과 노동력상실률표의 경우 국가배상기관에서 배상액수를 정하기 위한 기준으로 과학적 근거가 미약하다는 한계가 있다.

법원행정처는 손해배상 실무에서 노동능력상실률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고려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맥브라이드 평가기준이 문제가 되자 대한의학회(KAMS)는 정부 연구용역을 받아 AMA 지침 5판을 모델로 2007년 우리나라 여건에 맞는 새로운 장애평가기준을 개발, 2011년 첫 결과물을 냈다. 이를 토대로 근골격계 분야와 뇌신경계 분야를 수정·보완해 2016년 10월 <장애평가기준과 활용>을 발간했다.

KAMS의 새로운 장애평가기준은 기존 장애평가의 불균형과 누락 등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현대 한국사회의 직업분포에 맞춰 직업계수를 설정했으며, 일관성 있는 직업계수를 반영함으로?써 불합리한 맥브라이드 방식을 상당 부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2008년 AMA 지침 6판 개정판을 담지 못해 통증장애의 범위가 협소하고, 판정 기준도 최근 의학계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법원행정처는 "현재 법원의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KAMS 기준을 적용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맥브라이드 평가기준에 따라 노동능력상실률 감정이나 판단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맥브라이드 평가기준이 만들어질 당시의 의학과 현대의 의학은 많은 차이를 보여 단순히 병명 또는 장애 명만을 기준으로 맥브라이드 평가기준 항목을 적용해 장애율을 그대로 산정하는 경우에는 실제 장애의 경중에 따른 노동능력상실 정도의 차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게 되는 난점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최근 손해배상 소송에서 "맥브라이드 평가기준을 참조한 감정 결과가 나오더라도 유사한 상황에서 유리한 감정 결과가 있었던 다른 감정례를 제시하며 반론을 제시하는 당사자들이 많아 혼란을 가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문제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통일된 기준이 없어 유사한 신체 상태라도 감정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면서 "대한의학회의 장애평가기준이 마련된 지금 낡은 맥브라이드 평가기준을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할 아무런 필요도, 합리적인 이유도 찾을 수 없다. 앞으로 통일적인 기준을 만들어 노동능력상실률을 평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는 "손해배상 소송에서의 신체장해 및 노동능력상실률의 합리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맥브라이드 평가기준과 대한의학회의 장애평가기준, AMA 지침 등을 비교 분석해 장애별로 보다 명확하고 합리적으로 손해배상 소송 실무에 적용해야 한다"면서 '손해배상 소송에서 활용 가능한 장애평가기준에 대한 비교·분석' 연구용역에 무게를 실었다.

* 맥브라이드 평가기준
미국 오클라호마 의과대학 정형외과 교수인 맥브라이드가 1936년에 저술한 노동능력상실평가 방법으로, 직업과 장해 부위의 관련표로 신체의 장해를 백분율(%)로 평가한다.
예를 들어 식물인간의 경우 100% 장해, 한쪽 팔이 절단되면 59% 장해, 한쪽 눈이 상실되면 24%의 전신장해율이 적용되는 방식이다.
50년전 절판된 맥브라이드 평가표는 원전에 명백한 오기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하고, 마지막 개정판이 출간된 이후 의료기술이 크게 발전함에 따라 불가피하게 여러 변형이 가해진 상태로 이용되고 있다.
1960년대에는 존재하지 않던 CT, MRI 등과 같은 영상진단기기가 보편화되고 새로운 수술 기법과 재료가 보급되면서, 같은 유형의 사고와 손상을 입어 의학적 처치를 받은 환자의 상태가 맥브라이드 평가표가 작성됐던 시점과 비교하면 현저한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정형외과 부분은 비교적 자세하게 규정돼 있지만, 다른 분야는 매우 추상적으로 기술돼 있어 감정의 개인적인 견해나 주관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는 영역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맥브라이드 평가표에 규정된 297개 직업들은 1960년대 미국의 사회환경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어서 대부분 육체노동 분야에 한정되고, 지식정보사회인 현대 한국사회의 직업양태와는 큰 간극이 있다.
그 결과, 실제 사건에서는 대부분 일반 옥내 근로자 혹은 일반 옥외 근로자로만 단순 구별해 직업계수를 적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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