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수단 정당화 할 수 없어...의료인 인권 짓밟아
불신 조장·의료인 위축·개인정보 유출...환자에게 재앙
지난 20대 국회 마지막을 뜨겁게 달군 쟁점법안 중 하나였던 '수술실 CCTV 설치법안'이 제21대 국회가 들어서자마자 경쟁적으로 발의가 되고 있다. 김남국 의원은 지난 7월 9일 의료법 개정안을 첫 발의(김남국 1법안)한 데 이어 7월 24일 첫 발의안보다 강화된 개정안을 또 발의(김남국 2법안)했다. 지난 12월 15일에는 유일한 의사출신 민주당 국회의원이자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출신인 신현영 의원이 CCTV 설치 관련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제21대 국회에서 발의된 CCTV 법안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김남국 1법안'의 주요 골자는 "모든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도록 강제하고 있으며, 의료인·환자 등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아 수술실 내에서 의료행위를 하는 장면을 촬영하되 의료인·환자 등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기 어려운 응급상황의 경우는 예외"로 하고 있다. CCTV로 촬영한 자료의 사용에 관해서는 의료분쟁 조정 등의 목적 외에는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으며, 만일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김남국 2법안'은 첫 발의안보다 처벌을 더 강화했다. '의료분쟁 조정 등의 목적 외에는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으며 만일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조항에 더하여 환자나 보호자가 요청할 경우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했다. 영상정보처리기기 미설치, 의료행위 미촬영, 촬영한 영상 미보존 시 시정명령을 하는 내용도 담았다.
지난 12월 15일에는 의사출신 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유사한 법안을 발의했다. 주요 골자는 의료기관 개설자가 수술실 등에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설치·운영할 수 있으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에 필요한 비용 일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CCTV 촬영시 환자·보호자 뿐만 아니라 해당 의료행위에 참여한 의료인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으나 영상정보에 담긴 개인정보를 탐지하거나 누출·변조 또는 훼손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법안의 '제39조 제5항'은 '제38조의2 제5항'의 오류로 보임.)
이러한 CCTV 설치법안들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의료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당시 가입국 58개 국가 중 50개 국가가 찬성하여 채택한 <세계인권선언문> 제30조에는 "이 선언에서 말한 어떤 권리와 자유도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짓밟기 위해 사용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누군가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다른 누군가의 권리와 자유를 짓밟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환자의 권리도 중요하겠지만 수술실에 종사하는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인의 권리도 중요하다.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에게 "과연 의료인은 환자의 권리를 위해 짓밟혀도 좋은 존재인가?" 묻고 싶다.
둘째, 헌법 제37조 제2항의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고 규정한 '과잉금지의 원칙' 위반의 소지가 있다. 본 법안에 대한 벌칙인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은 '의료인 면허를 대여하거나 대여받은 자 또는 알선한 자'에 대한 처벌과 동일한 수준으로 지난 20대 국회 말 안규백 의원 발의안의 벌칙(벌금 500만원)에 비해 크게 강화된 것이다. CCTV 정보 유출로 인한 환자의 피해가 과연 무면허 의료행위와 같은 수준인지는 생각해 볼일이다.
셋째, 신현영 의원 안의 경우 CCTV 설치 장소를 '수술실 등 의료행위가 일어 나는 공간'으로 명시하고 있어서 수술실 뿐 아니라 의료행위가 일어나는 의료기관내 모든 영역으로 CCTV를 확대 설치할 법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이전에 발의된 CCTV관련 법안들보다 의료기관에 더 큰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의협 대변인 출신 국회의원이 이러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데 대해 심히 유감이다.
넷째, 김남국 의원 안의 경우 정보주체 동의의 강제성으로 인해 의료인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 침해되고 있다.
다섯째, 개인정보가 유출될 경우 고해상도의 CCTV 설치로 인해 영상 노출시 환자의 민감한 정보가 여과 없이 유출될 위험 있으며, CCTV 설치비용 부담도 상당하다. 수술실 CCTV를 설치 운영중인 경기도의료원의 CCTV 설치 비용은 1개 병원당 3000만원이라고 한다. 수술실과 분만실을 운영하는 전국 1만여 곳의 의료기관에 CCTV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3000억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여섯번째, 선진국 어느 나라도 수술실 CCTV를 설치 운영하는 나라가 없다. 특히 개인정보를 중시하는 프랑스는 수술실 CCTV 논의 자체가 된 적 없으며,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유방확대 수술 중 부분마취제 과다 사용으로 환자가 사망한 이후 수술실 CCTV 설치에 관한 법안이 지난 2018년 1월 발의되었지만 상원을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이 외에도 의료인의 인격권 및 직업수행의 자유 침해, 위축진료로 인한 의료질 하락 및 소극진료 초래, 전공의 교육 차질 및 의학 발전 저해 등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지난 해 12월 어린이보호구역 내 제한속도를 시속 30km 이하로 하고 과태료를 3배로 올리는 소위 '민식이법'이 통과된 이후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으로 들어오는 차로 뛰어드는 척하거나 뒤좇다 부딪치는 '민식이법 놀이'가 유행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민식이법을 악용한 자해공갈범죄가 늘어난다고 한다. 만일 수술실 내 CCTV 설치 법안이 통과된다면 이와 유사한 부작용이 생기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나?
기대되는 유익에 비해 많은 문제와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될 CCTV 설치에 앞서 범죄 예방과 범죄 수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원칙적이고 일반적인 모든 조치들을 검토한 이후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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