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듯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가 지난 12월 21일 불법 약침 근절을 위해 국회에 국민동의 청원을 올렸다. 이는 대법원이 10월 29일 불법 약침을 제조·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전 대한약침학회장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집행유예 3년) 및 벌금 206억 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한 데 따라 차제에 한방 불법 약침을 제도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국회 청원은 "의료법 제27조(무면허의료행위의 금지)에 의료인이라도 허가받지 않은 천연물·합성물·약물 및 기타 물질을 배합·조제하여 인체에 침습적인 방법으로 투여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하거나, 약사법 제 23조(의약품 조제)에 약사·한의사·한약사라도 허가받지 않은 천연물·합성물·약물 및 기타 물질을 배합하여 주사제를 조제할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하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회 국민동의 청원은 100명의 찬성이 있으면 요건을 검토하여 공개한 뒤 30일 이내 10만 명의 동의가 있을 경우 입법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물론 소관 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본회의 보고 여부가 결정되지만 불법 약침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판결이 있는 만큼 입법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한다.
100명의 찬성은 얻어냈다. 문제는 30일 이내에 10만 명의 동의를 얻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13만 의사가 관심을 갖고 나서는 게 중요하지만 의사라 해도 이 사안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려 동의를 얻어야 한다.
사실 이번 사안이 아니더라도 국민에게 한방의 폐해를 적극 알릴 필요가 있다. 그건 국민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의사의 의무다. 굳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 여부를 따지지 않더라도 한의사가 주사행위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인체에 침습적 행위인 주사는 안전성과 약효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확인하지 않으면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또 한 가지, 주사행위를 한의사 면허 범위 내 의료라고 볼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한의사의 주사행위가 일상적으로 행해져 왔음은 이번 대법원 판결로 여실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법원은 약침을 불법 제조·유통한 전 대한약침회장에게만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약침액을 주사한 전국 2,200여 개 한의원들에게도 죄를 물어야 한다. 당초 검찰이 이들 한방 병·의원의 한의사들도 기소해야 했다는 얘기다. 물론 현실적으로,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임은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불법행위가 드러났음에도 이를 방치한다면 어찌 법치국가라 할 수 있는가. 검찰과 경찰은 지금이라도 인지 수사를 해야 한다.
한방 불법 약침 제조·유통과 관련,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한의협 회관 내 원외탕전실에서 그런 불법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리고 전국 대부분의 한방 병·의원이 이에 가담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한의협은 지금까지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전 대한약침학회장은 벌금 206억 원을 내지 않고 있다. 만일 그가 끝까지 "배 째라" 하고 버틴다면 500일 간 노역장에 유치된다(대법원 판결). 그렇게 되면 얼른 계산해봐도 일당 4000만 원이 넘는다. 그야말로 황제노역이다. 그런 점에서 마땅히 한의협이 벌금에 대해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 필자가 지난 2020년 12월 9일 한의협 회관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것은 한의협에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한방은 현대 의학이 들어오기 이전 전근대 사회 당시에 이루어지던 의료였다. 당시에는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에 한방에 의지한 것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현대 의학이 자리를 잡은 지금, 특히 한국의 의료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선 오늘날 한방이 왜 존재하는지 참으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대체의학으로서 현대 의학이 한방을 연구한다면 모르지만 한방 그 자체가 의료영역의 일부나마 차지하고 있는 현실은 난센스다. 그것도 정부가 앞장서서 국민을 볼모로 삼으면서 말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서는 한방의 역할은 점차 줄어들어야 한다. 불법 약침 근절을 위한 국회 청원은 그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의협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회원들에게 알리고 참여를 호소해야 한다. 나아가 국민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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