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안 좋다고 형사처벌…부정확한 감정서 표현 재판 악영향
법관 직무 독립권처럼 의사도 직무상·신분상 진료권 인정해야
최근 의료소송 판례에서 선한 의도로 시행하는 의료행위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를 배제하거나 피해자의 악결과에 치중해 판결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중재원)의 감정 결과 역시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정이 주 목적인 중재원에서 낸 감정서에 '하지만'·'아쉬움' 등 정확하지 않고 부정적인 표현이 적시되면 의사를 형사처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13일 '의료행위 형벌화의 제문제 Ⅱ' 토론회를 열어 의사 형사처벌 경향의 원인을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김해영 의협 법제이사(변호사·법무법인 우면)는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경향의 원인과 제문제' 주제발제를 통해 "사법권의 독립은 재판에서 어떤 간섭도 받지 않는 법관의 직무상·신분상 독립에 의해 실현되는 것처럼 환자의 질병을 낫게 하기 위한 선한 목적으로 행하는 의사의 진료권은 헌법적 가치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해영 법제이사는 먼저 의료행위에 대한 형사처벌화 경향의 문제점을 짚었다.
김 법제이사는 "과거에는 의료소송에서 20~80%의 과실상계(책임제한)가 적용돼 왔다. 의료행위에 대해 특수성을 인정했다"며 "그런데 최근 판례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있다. 100% 책임을 규정하는 경우도 생겼다"고 지적했다.
중재원의 감정이 의료소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법제이사는 "2011년 중재원이 생기면서 형사처벌 경향에 변화가 생겼다. 조정을 주 목적으로 하는 중재원의 감정 의견에 '하지만'·'아쉬움' 등의 표현이 있을 경우 법원이 인과관계를 인정해 의사를 형사처벌하는 주요 사유로 적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외국에서는 형법적 관점에서 의료행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김 법제이사는 "독일에서는 의사의 의료행위를 환자의 건강을 개선시키는 행위이므로 피해자의 승낙 유무에 따른 결과반가치의 흠결 여부를 따지기 전에 상해의 고의가 없으며, 악결과 발생시에도 의학적 원칙에 맞는 의료행위인 경우에는 과실도 성립하지 않아 처음부터 구성요건 해당성에서 배제된다는 입장이 다수설"이라고 밝혔다.
진료과정에서 과실을 감추려는 인위적인 시도는 절대 금물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김 법제이사는 "과실을 감추는 것은 안 된다. 진료기록이나 차트는 최후의 방어진지다. 고치는 순간 모든 게 날아간다. 형사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경각심을 당부했다.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 경향에 대해서는 "법과 의료의 공존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김 법제이사는 "의료에 대한 무지가 만연하고 있다. 법이 의료를 지배한다는 규범적 생각을 버려야 한다. 두 가치 모두 존중해야 한다"며 "의료는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하는 데 수십년 걸린다. 의료행위를 처벌할 수 있지만 해당 전문과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수술도 안 하게 된다. 특혜가 아닌 의료의 전문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김기영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의료관리학)는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에 대한 판례 동향'에 대해 살폈다.
김 교수가 분석한 의료사고 형사처벌 판례 동향을 살펴보면 2012년부터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의료기관별로는 의원급이 절반 이상이며, 전문과별로는 정형외과·산부인과·성형외과 등이 50%를 넘게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과실유형으로는 수술실 과실과 술기상 과실이 가장 많았다. 판례에서 과실과 인과관계를 모두 인정한 사례는 224건이며, 과실은 인정했지만 인과관계가 없는 사례는 9건으로 파악됐다.
김 교수는 "독일에서는 과실과 인과관계 인정 비율이 24%인데 비해 한국은 지나치게 높다"면서 "의료소송의 증가로 인해 불필요한 검사의 확대, 과도한 예방조치, 위험 회피를 통한 방어적 의료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고소·고발이 남용되는 현실을 짚으며 의료 접근성뿐만 아니라 사법 접근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고소·고발을 남용하면 수사기관의 업무량 폭증과 수사력 낭비, 사법비용 증대, 피고소인 및 피고발인의 권리 침해 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지적한 김 교수는 "환자의 권리와 의사의 치료의무,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의사의 배려의무 사이에 필요한 균형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인 형사처벌에 대한 실증연구가 부족하다는 점도 짚었다.
김 교수는 "의료인 형사처벌에 대한 적절한 통계가 없고, 비의료인의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과 혼재돼 있어 수치로 확인할 수 없으며, 검찰의 불기소처분 통계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면서 ▲의료의 상업화 및 경제성 원칙 강화에 따른 의료사고의 구조적 위험 증가 ▲과실 분석을 통해 인적·물적 자원 부족으로 인한 책임 여부 분석 ▲인과관계 여부 분석▲양형 분석 등을 통해 공소제기에 대한 법원의 통제율 분석을 제안했다.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이 좌장을 맡은 패널토론에는 이동필 대표변호사(법무법인 의성)·김나경 성신여대 교수(법학)·윤구현 간사랑동우회 대표·이준석 변호사(법무법인 지우)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이동필 변호사는 "일부 형사재판에서 민사재판에서의 과실과 인과관계 추정 법리를 정확히 구별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에서 의료행위에 대한 과실과 인과관계 추정 법리가 혼용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국가가 개인을 처벌하는 형사재판에서는 민사재판과 분명히 달리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 변호사는 "형사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돼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따르더라도 범죄의 구성요건이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이 있다면 당연히 무죄가 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최근에는 민사재판에서 감정의사 1명의 감정의견에 따라 재판부가 과실을 추정해 판결하면, 환자 측이 그 판결문을 증거로 의사를 형사고소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심지어 형사재판 담당 판사도 '민사재판에서 이미 과실이 있다는 확정판결이 있었으므로 당연히 유죄가 아닌가'라는 유죄 심증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계가 자율적으로 주의의무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한다는 당부도 나왔다.
김나경 교수는 "의료행위로 인해 창출된 위험이 의학적으로 허용된 위험이라면, 설령 위험 실현으로 인해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했더라도 그 결과를 행위자의 책임으로 귀속시킬 수 없다"며 "의료행위는 속성상 그 위험성을 늘 안고 있기 때문에 문제된 의료행위로 인해 창출된 위험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위험인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은 쉽지 않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형사재판에서는 민사 책임보다는 더 좁은 범위로 의료사고를 규율해야 한다. 입증이 충분하지 않다면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며 "형법적 판단을 통한 의료행위 규범은 의료계에서 보편적 규범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도 주의의무에 대한 인식을 갖추는 자율적 노력이 필요하다. 주의의무의 범위와 관련한 의료 현실을 감안해 어떻게 범위를 확정할 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임상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한 김 교수는 "과중한 업무와 부족한 자원 등 업무환경 개선을 위한 공론화작업도 필요하다. 이런 노력이 수반되면 시민사회에서 환자와 의사가 상생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의료행위의 형벌화 경향은 결국 환자에게도 피해가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준석 변호사는 "형법에서는 고의범을 처벌하고, 예외적으로 과실범을 처벌한다. 형벌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게 범죄 예방적 기능인데 의료에는 적용할 수 없다"며 "의료행위는 신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예상이나 기대하기 어려운 악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소송이 많은 전문과들은 현재도 미래에도 정원을 채우기 힘들다. 악결과만 보고 형사처벌은 물론 법정구속까지 한다면 누가 어려운 진료과를 선택하겠는가?"라고 반문한 이 변호사는 "머지 않아 외국에서 의사를 수입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변호사는 "최근 형사조정절차를 통해 불기소를 조건으로 조정을 압박하는 경우가 있다. 의사 면허와 관련되는 의료법 위반도 추가해서 고발하는 기획소송 변호사도 활동하고 있다"면서 "과도한 형사처벌을 부과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진료를 하는 의사들은 쫓아내는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결코 환자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의료소송에서 민사배상액 규모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윤구현 대표는 "현재 법원의 판단은 민사 배상에다 형사처벌을 가중하는 추세다. 민식이법·중대재해처벌법 등에서 그런 흐름을 볼 수 있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제정한다고 해도 과연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어떨지 의문"이라며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을 최소화할 필요는 있지만 민사배상액을 합리적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대안 없는 형사처벌 면책 주장은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