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약침·추나, 한의사가 하면 모두 '전통'이 되나①

기획 약침·추나, 한의사가 하면 모두 '전통'이 되나①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1.06.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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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침-무자격자 개발 민간시술, 추나 - 근거없이 급여화
약침 확산·추나요법 급여화엔 정부 잘못된 인식 큰 몫
지금이라도 안정성·유효성 평가 통해 제대로 검증해야

ⓒ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
[그래픽=윤세호기자] ⓒ의협신문
'전통'이 의학적 안전성·유효성의 근거가 된다. 정책 입안자들까지 그 전통에 '설득력'을 부여하고 검증 면죄부를 준다.
 
'전통'으로 인정받으려면 얼마나 오래전이어야 하고, 어떤 경험치들이 쌓여 있어야 할까.
 
당황스럽지만 한의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약침과 추나요법은 1990년대 이전엔 흔적을 찾기 힘들 정도로 실질적인 기원이 짧았다. 20년 남짓된 '전통'을 근거로 체내에 한약을 주사할 수 있도록 하고, 더구나 추나요법은 지난 2019년 건강보험 급여까지 적용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한방약침치료와 추나요법의 기원과 실체> 연구보고서를 통해 약침과 추나요법의 허상을 파헤쳤다. 그 허상을 촘촘히 따져봐야겠다.
 
먼저 약침요법이다.
 
약침은 한약을 주사기를 이용 경락 등 체내에 주입하는 치료법이다. 1998년 보건복지부 유권해석으로 한의사의료행위로 인정받았고, 2001년 건강보험 급여대상이 됐다가 2006년부터 비급여 행위로 전환됐다.
 
한의사는 천연물을 이용해 한방원리에 따라 한약을 자유롭게 조제할 수 있다. 문제는 투여방법에 대한 규제가 없어 임의대로 한약을 주사기에 넣어 체내에 주사하는 방법도 허용된다.
 
약침 도입 초기에는 근거나 검증없이 민간에서 개발된 방법으로 조제했으며, 최근에는 대부분 약침액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원외탕전원'에서 구입해 사용한다.
 
한의계는 약침요법의 기반을 마련한 저서로 두 권을 꼽는다. 남상천의 <경락>과 김정언의 <기적의 약침요법>이다. 저자 두 사람 모두 한의사가 아니다.
 
남상천은 1930년생으로 1963년 한약업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는 1966년부터 약침액을 직접 만들어 임상강좌를 통해 주입 방법을 보급했다고 한다. 경락의 실체와 생리를 연구하기 위해 스스로 실험대상이 되어 약침액을 주사했다고 주장한다.
 
김정언은 자신 소개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으며, '동양경락약침학회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가 쓴 <기적의 약침요법>은 1987년 출간된 약침 단행본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동양경락약침학회' 회원 모집 공고가 게재됐는데, 자격요건이 ▲인간성이 성실한 자 ▲고졸 이상 학력을 갖춘 자 ▲본 학회 목적에 찬성하는 자 등이다. '고졸 이상'의 자격을 감안하면 한의사 면허 소지자와의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남상천·김정언은 이후 우주경락학회를 결성해 약침 보급에 나섰다. 한의계가 약침요법 태두로 인정한 두 사람의 이력을 감안해 추정하면 결국 1960∼1990년 사이 약침요법은 한의사 영역이 아니었다. 또 비전문가 몇몇이 착안한 민간시술이었다.
 
1980년대까지는 한의사들도 약침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와 함께 한방의료행위를 벗어난 의료법 위반행위가 아닌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 들어서면서 개원가를 중심으로 개인경험을 기반으로 한 약침요법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정부 잘못도 크다. 보건당국이 유권해석을 통해 약침요법의 유효성에 대한 한의계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추나요법 역시 한의학에 기반을 둔 게 아니라 카이로프랙틱을 위주로 차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의계는 "한국 추나학은 전통 추나이론의 기초 위에 동서양의 수기요법을 우리 것으로 수용해 체계화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전통 추나이론'의 실체가 명확치 않다.
 
<한국추나학>에서 제시된 기초이론에는 추나와 음양오행(陰陽五行)·장부경락(臟腑經絡)·영위기혈(營衛氣血) 관계에 대해 설명하지만, 진단과 치료를 제시한 부분에서는 한의학적 원리에 따른 설명이 매우 적다.
 
국내 한의학에서는 추나·안마 등이 의료행위로 인식하지 않았으며, 1980년대까지는 맹인안마사들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추나요법은 유효성에 대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2019년 건강보험 급여화가 결정했다.
 
당시 정부의 해명은 더욱 군색하다.
 
급여화를 결정한 2018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보건복지부는 "추나행위는 신의료기술 행위가 아니라, 안전성·유효성이 입증된 비급여 행위"라고 밝혔다.
 
그러나 추나요법이 비급여로 등재된 2003년에는 '신의료기술등의 결정 및 조정기준'에 따라 의료인단체, 전문학회 등이 안전성·유효성을 인정했는지 여부만으로 급여·비급여 등재를 결정했다.
 
결국 추나요법은 지금까지도 유효성 평가를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게다가 추나요법 급여화의 근거로 삼은 중국의 추나 유효성 관련 논문들은 한국 '추나'와는 이름만 빼고 전혀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급여를 원점에서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인식에도 문제가 드러났다.
 
2018년 심평원에서 발간한 <추나요법 급여 전환을 위한 시범사업 평가 연구>에서는 추나요법 급여화 배경을 설명했다.
 
"한방치료의 건강보험 보장률이 의과보다도 낮아 추나요법의 급여화가 필요하다."
 
당시 의료계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한방 보장률을 높이기 위해 안전성·유효성 검증도 안됐고 비용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추나요법을 급여화한다니…. 어이 없는 이유였다.
 
안전성·유효성 평가 없은 상황에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추나가 안전하다는 한의계 주장과 달리 늑골골절·경추추간판탈출증·요추추간판파열·혈종·사지마비·신경손상 등이 한의사들에 의해 보고되고 있다.
 
<연구보고서>는 약침·추나에 대한 안전성·유효성 검증을 촉구했다.
 
보고서는 "약침은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전통적인 경험조자 없이 개발됐다. 반드시 의약품과 같은 검증이 필요하며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추나요법에 대한 안전성·유효성 입증 없이 급여화를 결정한 것은 잘못"이라며 "각각 질환·추나기법 등에 대한 검증을 통해 안전성·유효성이 입증된 항목에 대해서만 급여적용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향후 실질적인 대응 방안에 대해서도 짚었다.
 
<연구보고서>는 "정맥에 주사하는 혈맥약침은 2019년 대법원 판결로 제동이 걸렸지만, 약침은 여전히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며 "무자격자들에 의해 민간에서 발생한 약침에 대한 규제를 정부에 촉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약침을 상품화해 대량으로 유통시키고 있는 원외탕전원에 대한 약사법 위반 여부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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