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 수술 평균대기 129일 vs 한국 '0'…의료 접근성 "경이로운 수준"
국가별 상이한 작성 기준에 근거한 산출자료 "비교·분석 한계 분명"
보건복지부가 의사 증원 필요성을 주장하는 주요 근거인 'OECD 보건통계'가 최근 또 발표됐다. 그런데 OECD 보건통계 중 의료인 숫자는 일부분이라는 의료계 지적이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7월 20일 <OECD 보건통계 2021>을 인용, 어김없이 "보건의료 인력 규모가 낮다"는 해석을 발표했다.
'의사 인력 이슈'는 지난해 의사 총파업을 통해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이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OECD 통계다.
이번 통계 발표에서는 보건의료 인력 분야에서 한의사를 포함한 임상의사는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38개 OECD 국가 중 폴란드, 멕시코에 이어 세 번째로 적었다. 2019년 국내 의학 계열 졸업자 역시 인구 10만명 당 7.4명으로 OECD 국가 중 일본 7.1명, 이스라엘 7.2명에 이어 세 번째로 적었다.
'의사 수 부족'을 이유로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과대학원 설립을 추진했던 정부 입맛에 딱 맞는 통계를 또다시 발표한 것. 이번 통계는 향후 의·정 협의체 테이블에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흔히 'OECD 보건의료 통계=의사 부족'은 사실상 클리셰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OECD 보건의료 통계에는 "우리나라 의료 현실과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지표가 많다"는 분석이 나왔다.
OECD 회원국은 보건통계 작성을 위해 보건의료지출 및 재정, 건강 상태, 건강 위험요인, 보건의료 자원, 보건의료 이용, 의료의 질 관련 지표, 약제, 장기요양 자원과 이용 등에 대해 방대한 자료를 제출한다. 우리나라는 산출이 가능한 668개 항목을 제출했으며, 각 지표는 OECD Health Statics 2021 online database에서 추출할 수 있다.
의료정책연구소 "보건복지부 미공개 OECD 자료, 의미 있는 지표 많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우리나라의 낮은 회피가능 사망률(AM: Avoidable Mortality), 높은 의료접근성 등에 주목했다.
우리나라 AM은 2018년 기준 인구 10만 명 당 144.0명으로 OECD 평균인 199.7명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 수치는 의사 수가 많은 미국·독일·프랑스 등보다도 현저히 낮은 수치다.
의정연은 이 지표를 통해 "우리나라 의료가 적절한 치료와 관리가 이뤄지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대수명과 영유아 사망률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통계들은 객관적 건강 상태를 측정하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다.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2019년 기준 83.3년으로 OECD 국가 평균인 81.0년과 비교해 상위국에 속한다. 10년 전과 비교해 3.3년이나 증가한 결과다. 2019년 우리나라 영아사망률은 출생아 1000명 중 2.7명으로 OECD 평균인 4.2명보다 훨씬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급성기 의료 평가에서도 출혈성 뇌졸중 환자 100명 중 사망자 15.4명으로 OECD 평균 22.6명보다 낮은 편이고, 허혈성 뇌졸중 환자는 100명 중 사망자 3.5명으로 OECD 평균인 7.7명보다 낮아, 뇌졸중 사망률도 낮은 수준으로 집계됐다.
암 관리 의료질 평가에서도 평균보다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 암 관리 의료의 질은 유방암·자궁경부암·대장암·직장암·소아 급성림프구성 백혈병·폐암·위암의 7개암에 대한 5년(2010년∼2014년) 생존율로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OECD 평균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위암 생존율의 경우 OECD 평균 29.6%에 비해 68.9%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백내장 수술 평균대기 129일 vs 한국 '0'…의료 접근성 "경이로운 수준"
의정연은 백내장수술 평균대기 시간을 대표 지표로 들며 우리나라의 의료 접근성은 '경이로운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OECD에서 제시한 대기시간 측정치는 전문의가 환자를 대기명단에 올린 시점부터 환자가 해당 치료를 받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나타낸다.
2017년 OECD 국가별 백내장 수술 대기시간은 스웨덴 48일, 캐나다 66일, 노르웨이 108일로 나타났다. OECD 16개국 평균은 129일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백내장 수술 시 당일 검사 및 수술이 가능하다. 이에 수술별 대기시간에 대한 자료를 별도로 제출하지 않고 있다. 즉 대기시간이 '0'이라는 얘기다.
'도시-농촌' 간 의사 분포 차이 역시 OECD 국가 중 2번째로 적었다. 도시-농촌간 격차가 심하다는 우리의 통념과는 상반된 결과다.
OECD 보건통계를 가공해 발간하는 <OECD Health at a Glance 2019>에서는 국가별 의사의 지역적 분포를 다루고 있다. 국가단위로 봤을 때, 우리나라의 대도시와 시골 지역 의사분포의 차이는 0.6명에 불과했다. OECD 평균 1.5명에 비해 도시와 농촌 간에 의사인력이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정부는 OECD 보건지표 전반에 대해 있는 그대로 팩트에 기반해 균형감 있게 통찰해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현 수준을 평가하고 정책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발전을 위해서는 현재 과잉 공급 상태에서 기존 민간병상 인프라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추가로 공공병상이나 공공의대를 늘리는 것보다는 비영리 민간병상을 적극 활용해 병상기능을 조절하고, 병상활용에 따른 인력·시설·비용 등을 지원하거나, 국가가 기존 민간병상을 적정 가격으로 매입하는 방식으로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고 필수의료 보장성 강화를 추진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OECD 보건통계, 의료정책 수립의 절대적 기준 삼아선 안 돼
의료계는 위 분석과 같이 의사 수를 포함한 OECD 지표가 국가 간 차이나 개별 국가의 현황을 점검하는 유용한 자료가 포함됐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통계 자체가 국가별로 상이한 작성 기준으로 제출되는 점을 들며 절대적 지표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점도 함께 경고하고 있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적은 의사 수' 근거로 내세우는 해당 지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들여다봐야한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의정연이 지난해 9월 발간한 <정책포럼>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작성 기준에 부합하는 통계자료가 아예 없거나 서베이 및 추정치를 적용하는 나라가 있었던 것. OECD 통계 산출 기준에서 '구강악안면외과의사' 또는 '구강의사'를 제외하고 있지만 이를 포함해 의사 수에 포함한 나라도 있었다.
OECD 통계자료 작성 기준에 부합한 자료를 제출하고 있는 국가는 단 10개국에 불과했다.
단순 인구 대비 의사 수가 아닌 '의사 접근도'와 밀접한 '의사 밀도'를 분석한 자료도 있다. 이는 OECD 통계에는 포함되지 않은 지표다.
동일 면적내의 의사수와 의사 1인당 책임져야하는 면적을 비교해 실제 환자가 의사를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거리를 각 국가별로 산출하면, 우리나라는 10㎢당 12.10명으로 네덜란드 14.77명, 이스라엘 13.17명에 이어 세계 3위였다.
즉, 환자가 의사들을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고, 용이하다는 의미다. 만약 의사가 부족하다면 환자들이 의사를 접하기 어려워야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여건 상 '용이하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이는 이번 OECD 보건의료통계에서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가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를 기록한 결과를 뒷받침한다. 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 17.2회를 기록, OECD 평균인 6.8회의 무려 3배 가까이 높은 통계를 기록했다.
국가별로 서로 다른 작성 기준에 근거해 산출된 자료들은 국가들의 의료현황을 대등하게 비교·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세계기구에서 제공하는 통계치라도 국가별 정책·법제도·의료이용행태·의식 수준 등에 따라 달리 해석될 소지가 크다는 것.
이런 점에서 볼 때 단순히 '숫자' 만을 놓고 의사 수가 많거나 적다, 혹은 늘려야·줄여야 한다는 논의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의정연은 "정책 입안자들은 중요한 정부 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 단순히 단일 통계치만을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며 "해당 문제와 연계된 다방면의 사항들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고, 이를 정책 시행에 적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