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감정노동' 위험수위

의사 '감정노동' 위험수위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1.10.2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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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70점 vs 감정노동 종사자 62점..."관리 절실"
여성·의원급·정신건강의학과·전임의 감정노동 지표 높아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대규모 의사 감정노동 수준 분석 공개

한국 의사의 감정노동 평균 수준. [자료=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한국 의사의 감정노동 평균 수준. [자료=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의사는 감정노동을 겪을까. 그렇다. 그것도 관리가 필요할 정도로….  

의사의 감정노동 수준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대규모 연구결과가 공개됐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최근 <감정노동의 시대, 의사도 감정노동을 하는가> 연구보고서를 통해 의사들의 심각한 감정노동 실상을 알렸다. 

이번 연구보고서는 지난 2020년 시행한 전국의사조사 가운데 감정노동 설문을 바탕으로 진료 경험이 있는 의사 5563명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연구 결과 매일 아픈 환자들과 마주하며 진료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감정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의료현장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의사의 감정노동은 수준은 평균 70.03점으로 지난 2015년 조사된 우리나라 전체 감정노동 종사자 평균인 61.56점을 크게 앞섰다. 

의사는 진료실에서 아픈 환자의 감정과 생각을 공감하고 존중하며 전문직 역할를 수행한다. 그런데 환자와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내면에 생기는 다양한 부정적 감정을 병원 분위기나 원활한 진료를 위해 억누르고 참으려다보니 감정노동의 올무에 사로잡히게 된다. 

문제는 감정노동 영향이 의사에게만 국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감정노동의 결과는 의사들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근무하는 의료기관에도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며, 특히 의원급 의료기관은 심할 경우 진료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보건의료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사들은 어느 정도로 감정노동을 겪고 있을까. 

감정노동은 크게 표면행위와 내면행위로 구분한다. 

표면행위는 내적인 감정은 그대로 두고 외부로 표현해야 하는 감정을 조직의 표현규칙에 일치시키는 것으로 실제로 내부감정은 부정적임에도 겉으로는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표현을 통제하는 내외적 감정의 모순을 말한다. 표면행위는 자신의 감정과 겉으로 드러내야 하는 감정이 불일치 되기 때문에 직무에 대한 불만족을 야기시키고, 이는 직무 소진 감정의 부조화와 긴장감과 연결된다. 표면행위 하위 영역으로는 '타인 중심 감정 억제', '규범에 의한 감정가장' 등이 있다.  

내면행위는 조직이 요구하는 감정을 겉으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그런 감정을 실제 갖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생각의 변화뿐만 아니라 실제 행동의 변화 등 적극적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단순히 겉으로 표현하는 감정보다 조직의 표현규범과 자신의 감정표현을 내부에서부터 변화를 주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진정성에 바탕을 둔 내면행위를 취하려는 종사자들은 그들의 업무 역량과 조직의 직무요구가 일치할 경우 만족감을 가질 수 있어 감정노동의 긍정적 영향과 관계가 있다.

분석 결과 의사들은 내면행위 수준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감정노동에 시달리지만, 전문직으로서 감정조절을 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실제 지표로는 감정노동 수준이 70.03점으로 일반 감정노동종사자를 크게 앞선 가운데 내면행위는 75.42점, 표면행위는 65.71점이었다. 표면행위 중 '타인 중심 감정 억제'는 68.94점, '규범에 의한 감정가장'은 60.87점 등이었다.

내면행위 지표가 높다는 것은 의사들이 아픈 환자의 감정과 생각을 공감하고 존중하면서 전문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환자의 감정과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성별이나 나이 등에 따른 감정노동 수준 차이도 확인됐다. 

여성(71.69점)이 남성(69.51점)보다 감정노동 수준이 더 높았다. 연령은 낮은 수록 더 높아, 30대 이하(70.78점)가 가장 높았으며 60대(67.42점)는 가장 낮게 나타났다. 

■ 직역별 감정노동 평균 수준 [자료=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 직역별 감정노동 평균 수준 [자료=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직역별 구분에서도 적지 않은 차이를 보였다. 

전임의(71.48점)의 감정노동 수준이 가장 높았으며, 개원의(70.70점)·군의관(70.52점)·봉직의(69.90점)·공보의(69.66점)·전공의(69.43점)·교수(69.32점) 등 순이었다.

내면행위는 군의관(77.18점)이, 표면행위는 전임의(68.01점)가 가장 높았다. 
 
진료과목 별로는 정신건강의학과(75.77점)의 감정노동 수준이 가장 높았으며, 표면행위·내면행위 등 감정노동의 하위영역에서도 최고점을 기록했다.

다음으로는 재활의학과(73.31점)·소아청소년과(72.26점)·피부과(72.12점)·신경과(71.33점)·안과(70.66점)·이비인후과(70.57점)·방사선종양학과(70.56점)·산부인과(70.36점)·정형외과(70.17점)·가정의학과(69.74점)·내과(69.49점)·직업환경의학과(69.30점)·신경외과(68.78점)·일반과(68.69점)·외과(68.65점)·비뇨기과(68.35점)·영상의학과(67.99점)·마취통증의학과(67.76)·흉부외과(67.67점) 등이 뒤를 이었다.

응급 환자가 많아 상대적으로 환자와의 상호작용이 적은 응급의학과(66.70점)는 감정노동 수준이 가장 낮았다.

의료기관 종별로는 의원급 의료기관 의사(70.92점)의 감정노동 수준이 가장 높았다. 군대/군병원(70.58점)·의과대학/의전원/보건대학원(70.27점)·30병상 이상 병원(70.25점)·요양병원(70.16점)·상급종합병원(69.67점)·보건기관(69.35점)·100병상 이상 종합병원(68.87점) 등 순이었다.

■ 근무기관에 따른 감정노동 평균 수준 [자료=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 근무기관에 따른 감정노동 평균 수준 [자료=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일반 직역보다 높은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의사들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연구보고서는 의사들의 감정노동 관리를 위한 다양한 해법을 내놨다.

먼저 의대생·전공의 때부터 의학교육의 기초과목으로 감정노동을 관리할 수 있는 교육을 포함하고, 병원 경영진은 다양한 감정노동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해 의사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의사 개인·특성별 감정노동의 차이가 확인된 만큼 이에 따른 교육·관리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법적 측면에서의 검토도 이뤄져야 한다는 견해다.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인 산업안전보건법에 의사들도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물론 개원의는 법 적용 대상인 근로자가 아니지만,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해 만든 법인 만큼 적용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의료기관 내부 규정으로 감정노동을 사안이 발생할 경우 즉시 진료를 중단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거나, 감정노동 강도가 높을 경우 의무 휴일제를 지정해 감정노동 환경으로부터 분리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은 "한국 의사의 감정노동 수준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향후 의사의 감정노동 관리를 위한 현실적이고 다각적인 방안에 대한 후속연구와 국가의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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