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관리감독 부실·일부 병원 일탈 합작품...급여기준 치외법권
정부 "기존 환자 적용 예외" 대책 마련...계속되는 불형평 어쩌나
항암제 신포괄수가 혼란이 기존 환자들을 구제하는 방향으로 일단락 되는 분위기다.
예정대로 내년 1월을 기해 문제가 된 '2군 항암제'의 본인부담률을 행위별 수가제와 동일하게 변경하되, 제도 변경 전 해당 약제를 사용하던 기존 치료 환자에 대해서는 그 적용을 예외로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일단 '튀어나온 못에 망치질'을 하는 모양새.
하지만 치료 기회나 비용 부담 면에서 환자간 불형평이 여전히 존재하게 되는데다, 오히려 일부 환자들에 국한해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셈이어서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항암제 신포괄수가 논란, 발단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달 일선 의료기관에 '2022년 적용 신포괄수가제 관련 변경사항'을 사전 안내했다.
본인부담 형평성 제고와 진료행태 왜곡 등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군 항암제'를 전액 비포괄항목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이들 항목에 대해서는 행위별수가제의 급여기준과 동일한 본인부담을 적용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는 신포괄협의체를 통해 논의하고 결정한 내용이다. 정부가 제도 시행 이전에 일선 병원에 변경사항을 알리려고 했던 것인데, 뜻 밖의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일부 암환자들이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라며 들고 일어선 것.
그간 일부 암 환자들이 신포괄수가제 시행 병원에서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 등 2군 항암제를 사실상 급여가 적용되는 수준의 비용만 지불하며 투여받고 있었고, 제도 개선으로 그 길이 막히게 되었다는 사실은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야 확인됐다.
관리감독 책임 가진 정부 곳곳 빈틈
이제와 상황을 되짚어보면 '빈틈'은 곳곳에 존재했다.
건강보험 재정을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는 정부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일부 병원들은 현행 제도상의 허점을 환자 유치도구로 활용했다.
신포괄수가는 정부가 내놓은 새로운 지불제도 모형으로, 비용 효율성을 추구하는 포괄수가와 진료 자율성을 보장하는 행위별 수가를 혼합한 형태로 운영된다.
입원기간 동안 발생하는 입원료와 처치료 등은 포괄수가로 묶고 다른 의사의 수술과 시술 등의 비용은 행위별 수가로 별도 보상하는 방식으로, 고가 약제나 치료재료는 비용상의 문제 등으로 비포괄로 분류된다.
전액비포괄 항목은 원칙적으로 행위별수가의 100%, 즉 행위별수가제와 동일한 기준에 의거해 그 비용을 별도 청구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가 된 2군 항암제들도 사실 이전부터 전액비포괄 항목으로 존재했었다.
문제는 이 같은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민간병원들의 신포괄수가제 참여가 큰 폭으로 늘었던 2019년 의료기관 대상 설명회를 열고 해당 내용을 설명했다.
당시 언급된 전액비포괄 대상 위험분담약제는 얼비툭스와 레블리미드, 에볼트라, 엑스탄디, 젤코리, 피레스파, 솔리리스 뿐. 이번에 문제가 된 옵디보와 키트루다, 임핀지, 바벤시오, 여보이, 티센트릭 등은 그 대상에서 누락됐다.
이들 항목의 비용처리 문제도 제대로 설명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병원별로 비용처리를 달리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일부에서 2군 항암제를 포괄 항목에 포함해 환자에게 5% 상당의 본인부담만 징수하는 병원이 나왔다.
사실상 일부 병원과 환자들이 급여기준 사각지대에서 약제를 사용해왔던 셈이지만, 정부를 이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 정상적으로 사후 모니터링이 이뤄졌다면 초기에 확인됐을 문제지만, 정부와 심평원 모두 그 내용을 이번 사건 이후에서야 파악했다.
약값 할인 내세워 환자 유치한 병원
일부 병원들은 이를 환자 유치에 활용하면서 문제를 키웠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런 사례는 98개 신포괄수가 시범적용 병원 가운데 6∼7곳에서 집중적으로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일부 병원이 이를 환자 유치에 활용해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일례로 수도권 A병원의 경우 유튜브 동영상 등을 이용해 신포괄수가제를 적용하는 자신의 병원을 이용할 경우 면역항암제를 싼 값에 사용할 수 있다고 홍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병원에 해당 사례 환자가 가장 많이 몰려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암 환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해당 사례 환자들의 숫자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연초 100∼200여명 수준에 그쳤던 해당 환자 수는 현재 1000여 명에 가깝게 늘어났다.
환자 구제 '고육지책'...계속되는 불형평 어쩌나
환자들의 반발에 이어, 문제가 국정감사에서까지 공론화되자 정부는 뒤늦게 대책을 내놨다.
급여기준 적용방법 변경으로 인해 신포괄 참여기관에서 항암 치료 중인 환자들이 현재와 동일하게 비용 부담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기타 희귀약이나 초고가 약제 가운데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검토해 보완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 골자다.
구체적으로 예정대로 내년 1월을 기해 문제가 된 '2군 항암제'들의 본인부담률을 행위별 수가제와 동일하게 변경하되, 제도 변경 전 해당 약제를 사용하던 기존 치료 환자에 대해서는 그 적용을 예외로 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논란의 여지는 남는다. 기존 치료 환자와 새 치료 환자간 불형평이 지속되는 까닭이다.
문제가 된 2군 항암제 다수가 현재 1차 급여 등재를 기다리고 있는 고가 약제다. 이에 다수 환자들이 신포괄수가제 참여 병원 중 이들 2군 항암제가 포괄수가 보상범위에 포함돼 약값의 5%만 내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아다녔다.
같은 건강보험 제도 안에서 신포괄 병원 이용 환자와 타 병원 이용환자간 치료기회와 비용 면에서 차등이 발생하는 불합리가 존재했던 것.
정부의 계획대로 이미 신포괄병원에서 이들 항암제를 싸게 투여받던 환자들에 한해 치료기회를 보장하게 된다면, 이에 더해 같은 신포괄 병원 안에서도 기존 치료 환자와 새 환자간 불형평이 더욱 공고히 되는 모양새가 된다.
2군 항암제의 조속한 1차 급여 등재를 통해, 모든 환자들이 차별없이 건보 혜택을 받게 해야 한다는 요구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
정부 입장에서는 또 다른 압박을 받게 됐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문제가 된 2군 항암제는 이미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돼 조속히 건강보험 등재가 이뤄져야 하는 약제"라면서 "정부는 신속한 건보 등재를 통해 해당 약제가 필요한 해당 암환자 모두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