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회에서 간호법 제정이 보류됐지만 대선 정국에서 갑자기 여야 거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약속이나 한 듯 간호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언하자 간호계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선 전 간호법 통과에 다가섰다고 판단했는지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은 12일 "우리들의 피 끓는 간호법 제정 외침과 노력에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화답하기 시작했다"며 한껏 고조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다시 환기할 필요가 없을 만큼 보건의료체계 안에서 간호법이 파생할 문제점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오직 간호계만이 당위성을 주장하고, 나머지 보건의료 직종은 이 법이 직역 간 갈등을 유발해 의료체계를 위태롭게 할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좀처럼 연대하기 힘들었던 직역들이 연대를 형성해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법안의 파급력을 방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호계는 50여일의 수요 집회, 1인 시위 및 릴레이 시위 , 코로나 방역에 투입된 간호사의 헌신과 희생을 빌미로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청원을 올려 국민 정서에 한껏 호소하고, 전국간호대학생비상대책본부가 발족하며 집단 휴학과 국가고시 거부 등의 으름장을 넣으면서 국회와 국민을 압박해왔다. 때마침 대선정국에서 지지표를 결집시키려는 여야 거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한날 동시에 간호법 제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나섰으니 이들의 전략은 일정부분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언제나 국민 곁을 지키는 간호사, 이제는 이재명이 지키겠습니다"며 국회에 선거전 조속한 처리를 당부했다. "지난 2년간 열악한 처우와 코로나 감염 우려에도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의료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간호사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우리는 그나마 여기까지 왔다"며 간호사를 한껏 치켜세웠다. 간호사들의 헌신과 희생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2년간 열악한 처우를 견디며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킨 직역이 간호사만은 아니다. 더욱이 이들의 근무환경 개선과 처우 개선에 의료계가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공교롭게도 같은날 대한간호협회를 방문한 윤석열 후보 역시 "(간호법은) 여야 3당 모두가 발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위원들과 함께 공정과 상식에 비춰 합당한 결론이 도출될 수 있게 힘쓰겠다"고 발언했다. 공정과 상식이란 용어까지 동원해 간호법 지지 의사를 표한 것인데 환자를 돌보고 치료하는 의료현장은 여러 직종의 유기적 협조체제를 통해서 지속가능한 것임에도 다른 직종은 안중에 없고 간호사만의 '공정과 상식'이란 게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달 7일 국회에서 간호협회 주관으로 열린 '간호법제정 촉구 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 양정석 과장은 간호법의 쟁점이 되고 있는 업무범위 논란과 관련해 "진료의 보조에서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바뀌는 부분에 대해 토론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처럼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이 사안과 관련 추가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명확한 입장이며, 현재 의사협회, 병원협회, 간호협회, 간호조무사협회와 관련 협의를 진행 중이다. 정부가 힘들게 여러 직역간 갈등과 혼란을 조정 중인 사안에 대해 간호계의 표를 의식한 갑작스러운 대선 후보의 발언은 국회 통과를 압박하는 지침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
두 후보의 발언 직후 당장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10개 보건의료인단체는 "특정 직역에 편향된 간호법안의 국회 통과를 시도한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법안 폐기를 위한 강력한 연대 투쟁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천명하면서 갈등과 대립이 더 격앙되는 양상이다.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을 넘는 간호업무 범위의 확대, 타 직종의 업무영역 침해, 의료관계법령 체계 왜곡 등 현행 보건의료체계의 와해가 우려되는 사안인 만큼 이해 당사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상호 갈등을 최소한으로 조정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럼에도 대선 주자들이 특정 직역의 소원 수리 처리 방식으로, 편들기에 나서 상호 갈등과 대립에 기름을 붓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고, 당혹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