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변호사 "방어진료 줄여 환자 건강권 증진...피해 신속히 구제"
"개별적 해결은 민간 방치...국가·사회 위험 분산시스템 필요"
전성훈 의협 법제이사 "의료사고 피해 해결 위해 국가가 나서야"
환자와 의료진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진료받기 위해서는 고의적인 의료과실이나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의료행위 등을 제외하고 형사 처벌을 하지 않도록 법적인 뒷받침을 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대한의사협회는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보건복지위원회)과 함께 22일 의협 용산 임시회관에서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을 위한 (가칭)의료분쟁특례법 제정'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이준석 변호사(법무법인 담헌)는 지난 2018년 8세 소아환자의 탈장을 조기에 진단하지 못해 사망한 사건이 벌어지자 1심 재판부가 담당의사 3명을 법정 구속한 사건을 비롯해 2020년 대학병원 교수가 대장암이 의심되는 장폐색 환자에게 장정결제를 투여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이유로 법정수속하고 54일간 구치소에 송치한 사건,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감염 사건 당시 의료진을 구속했지만 전원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를 들며 "침습적인 의료행위의 특성상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망이라는 악 결과를 이유로 의료진을 법정 구속하거나 실형을 선고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 변호사는 "고의없이 선의로 의료행위를 한 의료인에게 사망과 같은 나쁜 결과에 대해 결과론적 관점으로 판단해 처벌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면서 "고의에 준할 정도의 의료과실이나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의료행위 등을 제외하고는 의료인의 형사 처벌을 면제하도록 하는 의료분쟁특례법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의료사고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한 경우 형사 처벌 특례를 규정함으로써 업무상 과실에 관해서는 형사 처벌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의료분쟁을 형사 책임 영역으로 확대하지 말고 민사배상 책임 단계에서 해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밝힌 이 변호사는 "이는 의사에게 일방적인 혜택을 주기 위한 조항이 아니라 피해 환자의 신속한 회복을 위해 법적 분쟁 없이도 원만하게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의료분쟁특례법의 제정으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로는 ▲의료사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의료인 전과자 양산 방지 ▲의료사고 위험이 큰 진료과에 종사하는 의료인에게 안정적인 진료환경 보장 ▲배상책임보험 가입률 증가로 손해배상을 쉽게 하고, 당사자 간 갈등을 원만히 해결 ▲의사의 방어진료를 줄이고 소신진료를 통해 환자의 건강권 증진 ▲환자가 입은 피해를 신속히 구제하고 의료사고를 빌미로 제기되는 무분별한 고소·고발 방지 등을 제시했다.
지정토론 참가자들은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과 환자의 신속한 피해구제 등을 위해 의료분쟁특례법을 입법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다만, 구체적인 특례 적용 사례와 미적용 사례를 법안에 담아야 하고, 법안 시행을 위한 전제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전성훈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법무법인 한별 변호사)는 의료사고 해결 시스템의 부재 문제를 짚으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민사상 합리적인 배상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형사 소송으로 가게 된다"라면서 "피해자는 무력감과 분노를 의사면허 취소를 확대하자는 식의 엉뚱한 결론으로 가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전성훈 법제이사는 "피해가 생겼을 때 개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의료사고 발생 시 국가와 사회가 위험을 분산하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고, 개별적으로 해결하라고 민간에 방치하는 것은 좋은 방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충분한 논의를 통해 의료분쟁특례법을 입법하면 환자는 진료받을 때 의료사고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의사도 진료에 관한 책임을 걱정해 방어진료를 하지 않아도 되므로 서로 마음 편하게 진료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면서 "의료분쟁특례법은 의료 시스템 전체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의택 서울지방변호사회 기획이사는 "의료분쟁특례법의 핵심은 형사 처벌을 면하는 것이 아니라 형사 절차 자체에 회부되지 않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중상이나 사망은 어쩔 수 없지만 가벼운 의료사고는 절차에 회부하지 않고 면책하는 형태로 입법해야 한다"라면서 "일반인이 의사의 과실 여부에 관한 증거를 형사 절차가 아닌 민사 절차에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뒷받침한다는 전제로 가야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욱 한국의료법학회 총무이사는 "의료사고 시 형사 처벌 특례 조항은 2012년 의료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등에 관한 법률을 입법할 당시에도 논란이 됐다"면서 "의료분쟁조정법에는 형사 처벌 특례에 관한 내용을 배제했지만 형사 처벌은 결국 의사들의 방어진료, 과잉진료로 이어져 의료비 증가를 초래하고, 결국 국민과 환자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의료분쟁특례법을 입법할 때에는 과거의 경험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언급한 장욱 총무이사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서 특례로 인정 안되는 12가지를 열거하고 있듯이, 의료분쟁특례법을 입법화하기 위해 다양한 의료 상황에 전문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의사협회와 의학회 중심으로 특례를 적용하거나 미적용하는 경우를 면밀하게 조사·연구해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