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액 환수'에 제동…"의사가 받지도 않은 급여비용 전액 환수 부당"
건보공단 환수처분 관행 비상식적…현실적인 환수기준 마련 논의 시작해야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은 이렇게 규정되어 있다. '공단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사람·준요양기관 및 보조기기 판매업자나 보험급여 비용을 받은 요양기관에 대하여 그 보험급여나 보험급여 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한다.'
요양급여 기준과 어긋나게 속임수 또는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 비용을 받으면 환수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법률은 분명히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다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은 요양기관이 부당하게 보험급여 비용을 받았다고 판단하면 해당 비용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전혀 살펴보지 않고 무조건 '전액'을 징수해왔다.
분명, 요양기관이 받은 보험급여 비용은 건보공단이 시행해야 하는 보험급여를 의료기관이 요양기관으로서 대신 시행함에 따른 대가, 즉 환자로부터 받아야 할 진료의 대가가 대부분임에도 그랬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대체 왜 '전부'를 환수할까, 분명히 법률에도 '일부'만 환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는데 예외가 없는 것인지 늘 의문이었다.
필자와 유사한 의문을 가졌던 사람들이 재판에서 이 내용을 수도 없이 주장해왔을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헌법재판소에 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비의료인에게 고용돼 개설명의자가 되었다는 이유, 즉 사무장에게 고용된 의사라는 이유로 해당 의료기관이 지급받은 보험급여 비용 전액에 대한 환수처분을 받은 어떤 의사가 헌법재판소에 '전액 환수'가 지나치게 가혹해 의사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것이다.
물론 비의료인 사무장에게 고용돼 의료법을 위반한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아무리 고용된 의사라도 자신의 이름으로 환자를 진실되이 진료했다면, 그리고 건보공단이 지급한 보험급여 비용 대부분이 의사가 아닌 사무장의 주머니로 들어갔다면, 그 사람에게 전액 환수처분을 해 한 개인의 인생을 사실상 파탄시켜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위 국민건강보험법 조항은 부당하게 지출된 급여비용을 원상회복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이며, 해당 조항은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당이득으로 징수하도록 하고 있어 구체적 사안에 따라 금액의 일부만 징수할 수도 있어 의료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즉, 헌법재판소도 위 규정의 '일부' 징수 규정에 주목해 건보공단이 얼마든지 각 사정에 따라 일부만 환수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으니 위 법률 규정 자체는 합헌이라는 것이다.
이 결정이 나온 것이 2015년이지만, 이후에도 역시 건보공단은 일관되게 비용의 '전부'를 환수해 왔다.
이런 건보공단의 '전액 환수' 관행에 제동을 건 대법원 판결은 2020년이 되어서야 선고됐다.
위 헌법소원 사례와 유사한 상황에 있던 의사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개설명의인 의사는 개설자 사무장에게 자신의 명의를 제공할 뿐, 의료기관의 개설과 운영에 관여하지 않으며, 그에게 고용돼 근로 제공의 대가를 받을 뿐 의료기관의 운영에 따른 손익이 그대로 귀속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요 이유로 들었다.
즉, 개설명의인 의사 자신이 손에 넣지도 못한 보험급여 비용이기에 이 비용 전액을 의사에게 환수처분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이다.
나아가 대법원은 비의료인 개설자 사무장은 개설명의자 의사와 달리 의료기관의 운영의 성과를 상당 부분 향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위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이 '기속행위', 즉,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의무조항이 아니라 '재량행위', 즉, 건보공단으로 하여금 각 처한 상황에 맞춰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으며, 금액도 전부가 아닌 일부만 할 수도 있는 행위라는 점을 확인했다.
이 대법원 판결 이후 건보공단은 '불법개설요양기관 환수결정액' 감액·조정 업무처리지침(재량준칙)을 마련, 요양기관 개설·운영과정에서의 비의료인 사무장과 개설명의자 의사의 역할과 불법성의 정도, 요양급여비용 관련 불법운영 기간, 요양급여비용 액수, 요양기관 운영성과의 귀속 및 이익의 여부, 요양급여 내용(비의료인 시행여부·과잉진료 해당여부), 그 밖에 조사에 대한 협조 여부 등의 감액·조정 항목을 마련하고 최대 40% 범위 내에서 감액·조정이 가능하도록 하고 이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대치인 40%를 감액한다 하더라도 실제 환자 진료에 소요된 비용을 훨씬 상회하는 부분이 환수처분의 대상이 된다.
또한 건보공단이 제시한 감액 및 조정항목이 과연 제대로 계량화·수치화되어 각 처한 상황에 적절하게 조절될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재량준칙을 내세워 건보공단이 기계적으로 환수금액을 감액하고, 법원은 재량준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건보공단의 새로운 환수 관행에 면죄부를 부여할 가능성도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에 따른 환수처분이 '재량행위'라는 대법원의 견해는 비의료인 사무장이 의료기관을 개설한 경우 뿐 아니라 다른 사안에도 얼마든지 적용이 가능하다.
병원급 의료기관이 인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 의료기관에서 의료관련 법령에 위반해 시행된 요양급여 내역이 있을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건보공단은 지금도 기 지급한 보험급여 비용의 전액을 환수하고 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보험자인 건보공단, 보험가입자인 국민, 그리고 보험자인 건보공단을 대신해 요양급여를 실시하는 의료기관 세 주체가 서로 협력해 유지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무조건 보험급여 비용 전액을 환수하는 건보공단의 관행은 상식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으며 건보공단을 대신하는 의료기관들의 불신만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의 2020년 판결로 건보공단이 환수관행의 일부분이라도 수정한 것은 높이 살 만 하다.
하지만 최소한 의료기관이 환자를 진료한 대가만큼이라도 제외한 보다 현실적인 환수 기준을 마련할 수 있도록 보험자와 의료기관이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