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백색 글쓰는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

백인백색 글쓰는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

  • 김유빈 의협신문 명예기자 (가톨릭관동의대 본과 2년) yoobien.kim@gmail.com
  • 승인 2022.03.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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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 작가(이화의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의협신문
응급의학과 의사이자 작가인 남궁인은 2016년 한미수필문학상 대상과 2019년 보령의사수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문학동네에서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출간 이후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나 의 복숭아(꺼내놓은 비밀들):글항아리> 등 여러 권의 산문집을 냈다. 
ⓒ의협신문

백인백색 인터뷰 대상을 고민하던 중 예전부터 팬이었던 남궁인 작가(이화의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떠올랐다. 의과대학 진학 전 남 작가의 책을 즐겨 읽고 페이스북 글까지 찾아 읽던 기자였기에 무척 떨리는 마음으로 취재요청을 했다. 그리고 따뜻한 2월 말, 해방촌 한 카페에서 응급의학과 의사, 그리고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남궁인 작가를 만났다. 너무나도 우울한 응급실 이야기를 책으로 풀어냈기에 혹여 무거운 인터뷰가 될까 걱정했지만 인터뷰 내내 밝은 미소로 성심성의껏 답변했다.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순간들을 사는 사람들을 응급실에서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남궁인 작가를 소개한다.

Q. 먼저 응급의학과를 전공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 사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건·사고가 벌어지면 응급실로 올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고나 범죄와 같은 사회의 많은 문제를 직접 받아서 치료하는 포지션인데, 이런 포지션이 재미있었어요. 이런 것을 내가 직접 겪고 책임을 지고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바이탈과에 관심이 많았죠. 바이탈과의 의사는 사람의 사망까지 책임지는 포지션인데, 내과와 외과, 그리고 응급의학과를 제외하면 환자는 잘 사망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것까지 책임지는 것이 좋았습니다.

또 현실적으로 의사 일 말고도 경험해보고 싶은 다른 일들이 많았는데, 응급의학과는 당직을 서면 자유로운 스케줄이 나온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Q. 지금은 '글 쓰는 의사'로 활동하고 계신데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중학교 때부터 문학 소년이었습니다. 특히 한국문학, 시를 좋아했습니다. 서른 살까지 꿈이 시인이었어요. 계속 시집을 들고 다니면서 읽고, 문학회 활동을 하고 싸이월드에 글을 썼습니다. 한국 시를 좋아하고 그들과 닮은 문장을 쓰고 싶어서 시 장르로 계속 창작을 했어요. 의대생 문예대회에서 시 부분 수상도 하고, 고려대학교 문학회 활동도 했습니다. 의학도서관에 있는 시집을 아무도 보지 않아서 제가 혼자 빌려서 다 봤습니다.

그러다가 레지던트 때 산문으로 전향했습니다. 십몇 년 넘게 시만 쓰다가 산문으로 전향한 것이죠. 사실 응급실 이야기를 시로 써놓으면 누가 잘 읽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산문으로 쓰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응급실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구나 충격을 받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산문으로 완전히 전향해서 이제 산문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남궁인 작가(이화의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의협신문
남궁인 작가(이화의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의협신문

Q. 보통의 의사들과는 조금 다른 진로를 선택했는데 글을 쓸 때 작가님만의 원동력이 있을까요?

원동력은 누가 뭐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죠. 글쓰기를 좋아하고 훌륭한 책이나 멋진 문장을 평생 동경해왔고, 그것을 닮고자 노력한 것이 제 원동력이었습니다. 좋아하지 않았으면 못했겠죠.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고, 또 글을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글을 쓰면 사람들이 많이 보니까 익숙해져서 다른 원동력이 필요한 시점이긴 합니다.

Q. 의사로서 환자를 만나면서 글로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는 언제인가요?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 의사들이 환자를 계속 보다 보면 좀 쉽게 생각하고 지나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한마디 더 물어보고 한 환자가 아닌 사연이 있는 한 사람으로 보이는 순간이 있을 때 쓰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훌륭한 책이나 멋진 문장을 평생 동경해왔고, 그것을 닮고자 노력한 것이 제 원동력이었습니다. 좋아하지 않았으면 못했겠죠.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고, 또 글을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글을 쓰면 사람들이 많이 보니까 익숙해져서 다른 원동력이 필요한 시점이긴 합니다.

Q. 의업과 작가라는 두 개의 업을 병행하면서 가장 기쁘거나 뿌듯했을 때, 그리고 반대로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요?

의사가 뿌듯할 때는 당연히 환자가 살아나고 좋아질 때죠. 작가로서는 많은 사람이 제 말이라든지 글을 읽고 행동을 취한다든지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든지 혹은 감동을 한다든지 그럴 때입니다. 글은 분명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 글을 통해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던 수많은 삶과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줬을 때 보람을 느끼죠. 힘든 점은 바쁘다는 것에요. 또 작가로서 글이 안 써질 때 가장 괴롭습니다.

Q. 작가 남궁인이라는 아이덴티티가 의사 남궁인에게 도움이 될 때가 있을까요?

작가 남궁인은 환자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환자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또 어떤 사연이 있을까, 이 사람의 인생은 도대체 어땠을까 등을 생각해볼 수밖에 없는 것이 작가로서의 일입니다. 저는 적어도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고민을 진심으로 하는 사람이고, 이러한 행위 자체가 의사 남궁인의 어떠한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을 이렇게 대해도 될까?' 등의 고민을 하며 항상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라고 작가 남궁인이 의사 남궁인에게 시킵니다. 당연히 도움이 되죠.

Q. 글쓰기, 일상의 기록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취미 중에 글쓰기가 가장 좋은 취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우선 글을 쓰려면 많은 공부를 해야 합니다. 글쓰기가 지금까지 가장 오래되고 클래식한 교육의 방법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또 글을 쓰려면 당시를 복기해야 하니까 반성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글쓰기는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아카이빙의 뜻이 있습니다. 저는 저만의 언어로 벌써 20년 동안 글을 썼습니다. 그런 기록들이 다 남아있기에 제가 스물다섯 살 때 어떤 생각을 했고 누구를 만났는지 돌이켜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글쓰기 자체는 예술의 의미가 있습니다. 내 능력으로 닿을 수 있는 좀 더 나은 예술, 즉, 좀 더 나은 글쓰기의 지점이 분명 있을 것이고, 그게 삶의 목표가 되어줍니다.

Q. 앞으로 쓰고 싶은 글이 있는지?  ​​​​

과학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환자의 사연이 아니라 의학 교과서를 요약한 듯한 글입니다. 대중 과학서를 보면 과학자가 자기 입으로 과학에 관해서 얘기를 하듯이 그런 느낌의 의학 버전을 쓰고 있습니다. 언제 완성될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내로 완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Q. 작가를 꿈꾸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글이라는 것은 꾸준히 많이 쓰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매일 기록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뭐라도 쓰지 않으면 그날은 아무것도 남는 게 없게 돼서 나중에 그날을 되돌아봤을 때 잊어버리게 됩니다. 무엇이 됐듯 매일 쓰는 것이 글쓰기의 가장 기본인 것 같아요. 다만 글을 남길 때 누가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공들여서 써야 합니다. 매일 공들인 글을 남기려고 노력한다면 그 분량과 주제가 무엇이든 계속 잘 써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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