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라 서울특별시의사회 부회장
[특집] 현행 의료전달체계, 의료기관 기능의 현황 및 문제점(1)
올해는 새정부의 출범과 미래 신종감염병 대응체계 논의 등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보건의료 분야의 거버넌스 개선과 더불어, 해묵은 난제의 해결방안 모색이 활발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계간 의료정책포럼> 2022년 연중 특집 세션의 주제로 '의료전달체계'를 선정했다. [의협신문]은 의료계를 중심으로 각계각층의 다양한 입장과 의견을 살펴봄으로써, 종합적인 시각에서 국민건강을 위한 최선의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계간 의료정책포험>에 실린 특집 원고를 게재한다.
<글싣는 순서>
<시론1> 정글의 법칙만도 못한 의료전달체계
-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시론2> 올바른 의료전달체계의 정립
- 여한솔 대한전공의협의회장
1. 의료전달체계에서 대학병원의 현황과 개선책
- 염호기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인제대 서울백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2. 중소병원 관점에서의 현행 의료전달체계
- 박진규 대한의사협회 의무 부회장
3. 개원의 관점에서의 현행 의료전달체계
- 박준일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 겸 의무이사
4. 의료전달체계 개선이 안 되는 이유
- 이세라 서울특별시의사회 부회장
* 원고는 필자 개인의 견해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들어가며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에 대해 의사들 사이에 "인턴/전공의를 시키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의료정책에 대해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상대가치점수제도의 문제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해서도 오랜 시간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속 시원하게 개선되지 않았다. 다른 정책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의료 정책이 쉽게 현실에 반영이 되지 않는 이유는 많다.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안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국민입장에서 보면 의료에 대한 자유로운 욕구가 강하다. 정부나 정치인 입장에서는 비용을 적게 지불하고 국민들에게 생색을 내고 싶다. 반면 의사들의 입장에서는 자유도 잃고 경제적인 이익도 없기 때문에 방법을 찾고 합의하기가 쉽지 않다.
■ 의료전달체계 개선의 어려움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다. 반면에 의료제도는 전국민 건강보험 가입과 전 의료기관 요양기관 당연(강제)지정제로써 사회주의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의료 자원에 투자하지 않는다. 정부가 투자한 의료자원을 공공의료라고 하는데, 공공의료 부분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체 의료부문의 10% 남짓이다.
2012년 헌법재판소에서 건강보험 당연(강제)지정제가 합헌이라고 판결하였다. 이때 헌재는 정부에 대해 "공공의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 기회에 보충하라"고 판결문에 요구했음에도 정부 당국자나 정치인들은 공공의전원에는 관심이 있지만 의료전달체계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어도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는 환경이다.
<표 1>은 2019년 9월 4일 보건복지부에서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을 공식으로 발표한 이후 그 해 11월경에 보건복지부에서 단기대책에 이어서 중장기대책이라고 초안을 만들어 제시한 자료이다. [1] 일차의료, 중소병원 강화 등 지역의료 활성화, [2] 의료기관 종류별 역할 및 운영체계 정립, [3] 합리적 의료이용을 위한 제도 및 인식 개선, [4] 의료자원 적정 관리체계 이렇게 4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나름 체계적으로 제안하고 분석하고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해당 내용은 제목만 보아도 서로 이해가 상충되어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내용들이 반복된다. 무엇보다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이야기가 없다. 건강보험법에 규정된 국고 보조금을 정상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나 건강보험료 징수 요율이 증가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내용도 전혀 없다.
이 중 몇 가지만 살펴본다. 먼저 "1) 일차의료, 중소병원 강화 등 지역의료 활성화를 위해"라는 내용을 분석해 보면 일차의료 활성화 기반 구축,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 활성화, 의원급 의료기관의 환자 교육상담, 관리 기능 강화, 지역우수병원 지정·육성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까지 보면 일차의료기관에 대한 배려가 나온다고 할 수 있으나. 그 뒤에 "1-2. 지역 중소병원 육성을 위해 전문병원 제도 내실화, 중소병원 기능·역할 세분화, 지역 책임의료기관과 협력 강화"의 내용을 보면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지 애매모호 해진다. 그 이후의 내용을 보면 더 어렵다.
"1-3. 지역 의료기관 간 협력체계 강화 연계·협력제도 활성화 방안 검토"를 하면서 환자 의뢰·회송 체계 내실화, 진료정보교류 활성화, 개방병원 제도 활성화 방안 등이 제시되었고, 그 외 의료기관 간 다양한 진료 협력 모델을 마련하는 안에서 의원 간 협력모델(예: 만성질환 관리), 중증 수술 후 퇴원 환자 관리 협력 모델(예: 상급종합-중소병원), 특화된 전문기관 간 협력 모델(예: 재활병원-요양병원), 수직적 협력 모델(예: 3차-2차-1차 연계모형) 등이 제시되고 있다.
여기서 개방병원 제도는 거의 사문화된 것임은 물론이고 진료정보의 교류는 의사들에게 더 이상의 검사를 하지 말라고 하는 메시지와 함께 정보의 수집과 공개를 통해 빅데이터화 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1-4. 수도권 쏠림 억제"와 같은 방안은 더 심각하다. 인간이 가진 생명 연장에 대한 욕심, 보다 나은 서비스에 대한 욕구를 억제해야만 가능해지는 방안이다.
이것을 실행하려면 수도권 병원의 경영 악화 문제는 물론이고 수도권의 유명병원을 찾으려는 지역 주민들의 열망을 억제해야 한다.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를 위해 "권역 내 진료 유인방안을 마련"하여 "수도권 제외 권역 내에서 진료 받는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 혹은 "지역 내 상종 진료 의뢰와 지역 외 서울·수도권 상종 진료의뢰 간 수가 차등 등"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2) 항목에서는 의료기관 종류별 역할 및 운영체계 정립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기능 중심으로 의료기관 역할을 정립하자는 의도이고 이는 의료기관의 기능·역할 재정립이다. 여기서는 현행의 병상 규모로만 의료기관 종류를 구분하는 방식은 다양한 의료수요 및 기능을 지원·관리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환자 중증도(경증, 중증) ▲질환별(급성, 아급성, 만성) ▲특화기능별(검진, 외래 상담 특화, 호스피스, 중독치료, 요양, 재활) 역할을 재검토하여 기능별 역할 정립(안)을 마련하고 의료기관 종별 역점질환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외과계 의원·병원 역할 정립을 위해, 일차의료기관의 통원 가능한 간단한 외과적 수술, 처치 범위를 구분하고, 이차의료기관의 일반적 입원, 수술진료의 범위를 구분"하자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범위를 정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한, 대국민 계몽활동의 하나로 3) 합리적 의료이용을 위한 제도 및 인식을 개선하겠다는 방향성도 제시하고 있다. 바람직하지만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4) 의료자원 적정 관리체계를 도입하겠다는 문구는 또 다른 규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각각을 놓고 보면 합리적인 방안이 도출될 수 있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너무 많은 이해가 걸려 있어 해결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정부대책에서 제시되어 있지 않은 문제, 즉 저수가와 상대가치제도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의료전달체계와 국민들의 의료 이용에 대한 욕구를 적절히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의료급여 환자들의 경우 의료전달체계에 맞춰 수술과 관련된 진료와 일정을 진행하다보면 현장은 혼란과 함께 불만이 자주 발생한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 영국의 사례
다른 나라의 예를 보자. 영국의 NHS는 사회주의 의료의 표본이다. 그런데 영국 NHS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많다. 다양한 문제 중에 치료를 위한 진료나 수술 대기가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입원대기자가 62만명(6주), 외래대기자는 99만명(3주)에 달하고, 이런 상황은 코로나19 이후에 매우 악화 되었다. 영국에서는 외래 진료를 위해 1차 의원(gatekeeper)에서 진료 후 전문의나 병원의 진료를 의뢰하게 된다.
이 때 대기 시간이 발생하는데 2021년 3월에는 43만여 명이 52주 이상 진료대기를 하였다(NHS Key Statistics, 2022). 일부 병원의 경우에는 60주 이상 진료를 대기해야 한다. 이는 의료전달체계가 잘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현재의 한국의료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그림 1)
한편 보건복지부는 의료전달체계를 잘 확립시키고 싶어 한다. 보건복지부는 의료전달체계에 대해 상급종합병원 선호 및 이로 인한 쏠림현상은 환자의 판단에 따른 선택의 결과이기에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환자가 일차의료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하여 공급자로 하여금 해당 플랫폼에 들어올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하고 환자도 자발적으로 개선된 일차의료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정부가 추진하는 제도에 참여하면 수가를 보상하는 방식으로 의료전달체계 개선책과 수가를 연계할 계획으로, 참여 여부는 의료기관의 판단사항이다.
의료기관의 기능에 맞는 수가체계 개편도 진행할 계획으로, 수가 책정을 위해서는 환자도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기에 보다 세밀한 중장기 대책 수립이 필요함을 피력한다.
■ 코로나19 재택치료가 시사해 주는 것
2022년 3월 현재 코로나19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여 재택치료가 활발히 시행되고 있다. 재택치료 일일관리료는 8만 860원이다. 대략 10명의 환자를 진료한다면 하루 8시간 외래 진료하는 비용만큼의 수익이 발생할 수 있어 다수의 의사나 개원가가 참여를 원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서울형 재택치료를 통해 개원가가 많이 참여하게 되면서 민간 의료기관과 공공기관(보건소와 시청) 사이의 협력과 협조가 가능하도록 했다. 의료정책이나 의료전달체계를 논의할 때 관련자들은 의료전달체계 하나에만 집중하지 말고 이런 부분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 제안
많은 우려와 불만이 있음에도 의료전달체계에 의사들이 참여하고 환자들도 만족할 방법을 제안한다.
첫 번째 방법으로 해당 지역주민이 지역 의료기관을 이용할 경우 본인부담금을 10%로 인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전체 지역 주민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필수의료분야 혹은 외과(계) 의료분야에 대한 정책이다. 입원 없이 외래에서 수술하는 경우에도 입원을 하여 수술을 받는 것과 같이 비용을 책정하도록 하고 1차의료기관의 경우 본인부담금 부담비율을 10% 인하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치료를 위해 입원을 해야만 손해보험에서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없애야 한다.
그러나 잘못된 건강보험 수가체계와 상대가치 제도, 그리고 사회주의적 의료제도를 기본으로 한 상태에서 자유민주주의적 사고를 하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
앞으로의 의료전달체계를 잘 갖추기 위한 목적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의료전달체계는 사회주의적 의료제도를 근간으로 해야 한다는 점과 건강보험 제도의 근본이 잘못된 상태에서 이런 일을 진행하는 것은 결코 합리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참고문헌>
Carl Baker. NHS Key Statistics: England, February 2022. Research Briefing.Available from: https://commonslibrary.parliament.uk/research-briefings/cbp-7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