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신뢰·협력·책임…의협이 사회에 명확히 표방하기 바라는 주제
전문성을 지닌 임상의사로서 진로를 설정한 이후 갈증이나 결핍을 느낄 여유란 많지 않다. 환자를 보는 일을 제대로 해낸다는 것은 요령과 지름길이 있다기보다, 투신한 노력 그만큼의 정직한 성장을 얻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한의사협회의 상근임원으로서 직을 제안 받았을 때 스스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냉정한 평가가 우선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간 과연 임상현장을 얼마간 떠나가 있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의사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는가?'
'의료계 내의 막중한 짐을 지는 하나의 지지대가 되어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사명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
'현재 의협의 입지와 의료계의 현상을 유의미하게 해석하고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그러나 5월 41대 집행부의 2년차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사인으로서의 내적갈등을 고민할 여유는 급속 증발하고 말았다. 간호법의 소용돌이 속 첫 사흘을 연이어 야근하고, 매주 국회 앞 1인 시위를 반복하며 좌절감을 느끼는 타 직역 임원진들과 상호 격려와 위로의 대화를 나누면서, 온 마음이 우리에게 닥친 다양하고 심각한 의제들을 대응하고 풀어가는 데 몰입되었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네 가지의 캠페인 문구를 집행부 2년차의 말로 설정했다. 전공의 시절부터 대한의사협회가 우리 사회에 명확히 표방하기를 바라 온 주제들이다.
국민의 마음에 다가가는 대한의사협회가 되겠습니다.[소통]
검증된 과학으로서의 의료, 대한의사협회입니다.[신뢰]
보건의료는 하나의 팀, 대한의사협회입니다.[협력]
국민 건강을 수호하는 전문가, 대한의사협회입니다.[책임]
환자로서 국민이 의료계에 기대하는 태도와 내용은 상기의 큰 네 가지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5월 이래 의협이 대중과 호흡하며 숨쉬듯 내보내는 모든 SNS 메시지는 해당 4개의 문구가 담긴 카드섹션 중 하나와 함께 배포되고 있다. 거의 모든 보도자료와 활동들은 네 영역과 직간접적으로 늘 매칭된다.
동시에 대한의사협회가 과학적 근거에 뿌리를 둔 전문가 단체로서 국제 감염병 위기 속에서 지속해야 하는 공적 역할과, 사회공헌단체로서 고유하게 이어 나아가고 있는 공익적 기능과 관련 '사회적 책무성(social accountability)' 개념을 알리고 익숙해지실 수 있도록 의협의 입장문과 성명에 적극적으로 적용하였다. 신분적 속성이 포함된 과거지향적 표현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보다 전문가와 시민의 사회적 합의를 의미하는 사회적 책무성은 이제 41대 의협 집행부의 주요한 언어가 되었다.
2022년 8월 현재 의협의 핵심 현안은 여전히 법사위에 계류되어 있는 간호법이다. 이를 저지하기 위한 보건의료 13개 단체와의 연대는 더욱 확대되어 '보건복지의료연대'가 출범해 국회 앞 대표자 집회를 시행했고 지속적인 회의와 전 회원의 결집을 앞두고 있다.
동시에 초고령 사회가 임박한 한국의 보건의료정책 근간으로서 현 복지중심에서 의료영역으로 확장하여 국민의 건강권과 높은 만족도 보장을 위한 '커뮤니티케어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한편 정부와 산업계의 주요현안인 비대면 진료를 포함 디지털 시대 의료에 통합적 대응을 위해서 '정보의학전문위원회'를 지난 7월 출범시킨 바 있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정보 중심이 아닌 진료를 행하는 의사와 최선의 치료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는 환자의 전인적인 보건의료 안전성을 그 목적으로 한 의학(medicine)과 전문성(professionalism)을 지향하는 명명이다. 특히 필자는 R&D를 발단으로 하여 상업적 매매의 위협을 받는 환자의 건강정보(Patient Generated Health Data, PGHD)뿐 아니라, 고도의 지적활동의 산물이자 사회적 책무의 결과인 의사의 진료정보(Doctor Generated Medical Data, DGMD)를 필히 규정하여 구별해 다루어야 함을 공히 제안한다.
심리학적으로 관계(relationship)는 경계(boundary)가 분명한 당사자들 사이에서 그 물리적, 지적, 정서적 범주를 상호 인식하고 그를 돌보는(care) 데에서 시작한다. 의협이 목적하는 홍보(public relations)는 메디컬 드라마나 광고가 표방하는 이미지 제고(promotion)의 일천한 수준이 분명 아니다. 서로의 현실과 경계가 분명하나 '돌보겠다는 결심'을 한 대상을 향한, 깊은 마음으로부터의 연결(connectednes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