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실손보험사 환자 진료비반환채권 대위 방식 허용되지 않는다" 결론
환자 채권 양수해 청구 및 환자가 직접 소송 제기 방식…또 다른 쟁점의 시작
최근 의료계의 리딩 케이스가 되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됐다.
맘모톰, 패인스크램블러, 내시경(Endoscope)를 이용한 IDET, TELA와 SELD, 경피적 풍선확장 경믹외강 신경술 등과 관련해 실손보험사와 병원 사이에 임의비급여 분쟁들이 형사·민사로 다수 계류 중인 가운데, 실손보험사가 병원에 대해 직접 환자의 진료비 반환을 구할 수 있는지를 판단한 판결이었다.
공개변론까지 진행됐고, 이 판결의 결론에 따라 많은 사건들의 향방이 엇갈릴 수 있었던 중요한 사건이었다.
대법원은 우리나라 법제도상 채권자가 채무자의 권리를 대위해 행사하는 것은 금전채권에서는 제한적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원칙을 설명한 후, 피보험자(환자)가 병원에 진료비반환채권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실손보험사가 이를 대신해서 행사할 긴밀한 필요가 있다는 밀접한 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만일 환자가 자력이 있는데도 이러한 대위행사를 허용한다면 실손보험사에게 사실상의 담보를 취득하게 하는 특권을 부여하고, 다른 채권자보다 우선해 채권만족을 실현하게 해 채권자 평등주의에 반한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피보험자(환자)가 병원을 상대로 진료비반환채권을 행사할 것인지 여부는 피보험자의 의사에 달려있고, 피보험자가 결정할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진료계약의 경우는 진단과 치료 등을 목적으로 하는 위임계약이라는 특수성이 있어서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나타날 수 있고, 극히 사적이고 민감한 개인정보의 수집과 생산이 동반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러한 개인정보가 소송자료로 사용되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봤다.
즉, 환자의 결단 또는 선택의 자유를 통해서 행사여부가 결정될 사안에서 마치 실손보험사가 대신해서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당연시된다면 환자의 자유로운 재산관리행위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된다고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실손보험사가 병원에 대해서 환자의 진료비반환채권을 대신 행사하는 방식은 법 제도상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위 판결에 따라 이후 유사한 쟁점이 있는 하급심 사건에서는 같은 취지의 결론이 속속 내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실손보험사와 의료계 사이에 지난한 분쟁은 드디어 의료계의 승리로 종막을 고한 것인가. 그 결론은 아직 이르다.
실손보험사가 환자의 채권을 대위행사하는 경우 외에, 환자의 채권을 양수해 청구한 사건들도 다수 있으며, 이 사건에서는 채권양도가 금지되는 소송행위 목적의 신탁으로서 무효인지 여부가 법적으로 쟁점이 되고 있다.
필자가 최근 수행한 사건에서는 실손보험사의 청구가 인용된 1심을 취소하면서 금지되는 소송신탁으로서 부적법하다고 병원의 항소가 인용되기도 했으나, 지금까지는 법적 판단이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보험사기로 고소된 형사사건도 아직 진행되고 있는 사안들이 있다.
그리고 일부 실손보험사들이 언어치료 등과 관련해 환자로부터 위임과 동의를 구한다는 문의가 있으며, 아마도 대법원 판결 이후 환자의 채권을 양수하거나 환자가 직접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즉, 대법원 판결에서 다뤄진 것과는 다른 쟁점으로 제2막이 시작될 수 있는 국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법원 판결 내용 중, 진료 계약은 개인의 신체 및 정신의 질병 등에 대한 진단과 치료 등을 목적으로 하는 위임계약이라는 특수성이 있고, 우리나라 법 제도상 원칙적으로 채무자에게 권리를 행사할 결단 또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설시에 지극히 공감한다.
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실손보험사가 소송의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을 저지한 대법원 판결의 취지가 다른 사건에서도 고려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