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학도 수필공모전 수상작 '떳떳하게, 의대생'

한국 의학도 수필공모전 수상작 '떳떳하게, 의대생'

  • 신혜원 아주대학교의과대학 본과 2년 hana14540@ajou.ac.kr
  • 승인 2022.12.03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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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 주최·한국의사수필가협회 12회째 주관...동상(한국의사수필가협회장상)
후원 서울시의사회·대한개원의협의회·대한의학회·한국여자의사회·박언휘슈바이쳐나눔재단

▲동상으로 선정된 작품 [떳떳하게, 의대생]은 마지막까지 은상과 경쟁을 벌일 만큼 수작이었음을 밝힌다. (심사평 중에서) [사진=pixabay] ⓒ의협신문
▲동상으로 선정된 작품 [떳떳하게, 의대생]은 마지막까지 은상과 경쟁을 벌일 만큼 수작이었음을 밝힌다. (심사평 중에서) [사진=pixabay] ⓒ의협신문

의대생 4년 차 봄의 끝자락,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만남이 새롭고 낯선 설렘이 그리웠다. 

그렇게 혼자 제주도로 떠났다. 머문 곳은 용두암 해안도로 앞 게스트하우스.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우린 마치 나그네처럼 하루 동안 서로를 처음 만나고 헤어진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짧은지라 자기소개는 함께 모여 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 

한 바퀴 빙 돌아 나의 차례가 왔다. '자기소개 오랜만이네. 이름과 나이, 그리고 음... 직업은 그냥 대학생이라고 해야겠다.' 

이 정도면 하루 스칠 사람들에게 하는 소개로는 충분하다. 속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자기소개 완료. 그러자 어디선가 질문이 들린다. 

"그럼 무슨 과 다니세요?" 

너무 자연스러운 질문인데 왜 눈이 질끈 감기며 심장이 조여오는 걸까? 거짓으로 답하지 않는 이상 다시 의대생이었던 일상으로 돌아갈 듯한 불안함이 컸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다른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아, 전 의대 다니고 있어요." 

바로 이 순간. 놀라는 반응과 함께 나를 정의하는 제1 특징은 의대생이 되어버렸다. 그렇다. 난 오늘도 여전히 의대생이다. 이후 사람들이 나에게 질문을 한다. 

"수전증이 있는데 이거 어떻게 치료해야 하나요?" 

아직 수전증에 대해서 배운 기억이 없다. 아는 것은 인터넷, 그리고 주변에서 건너건너 들은 것이 다다. 그렇다면 질문해주신 분과 아는 게 별로 다르지 않을 텐데. 의대생이라는 자기소개는 이 질문에 '의학적' 답을 하도록 눈치를 준다. 

"원인이 다양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치료방법을 단정 짓기 어려운 것 같아요."라는 알맹이 없는 대답이 최선이다. 모른다고 말해도 될 텐데. 나를 의대생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나 보다. 의대생이라고 편견을 갖지 않길 바랐는데 그게 아니라면 무엇으로 정의될지 한편으론 두려웠다. 아직 의사는 아니나 건강에 대해 고민하는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도 한몫했다. 어느샌가 나도 스스로를 정의하는 키워드가 의대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다음 질문. 

"제가 피부에 여드름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피부가 좋아질까요?" 

내 피부가 엉망인데 내가 하는 대답에 신빙성이 있을까, 변명 같은 생각을 잠시 했다. 사실은 나도 궁금한데 등한시했다는 것을 외면하려는 비뚤어진 공감이었다. 수업시간 피부과는 심한 질환을 다루어서인지 질문 속 피부질환인 여드름이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조금 배웠다고 은연중에 병의 경중을 판단하고 있었나 보다. 위중한 병이 아니라고 사소한 것은 아니다. 잔잔하게 건강한 일상을 보내면서도 본인의 몸을 의식하며 더 건강해지고 싶기 마련이다. 건강이란 병원에서 환자들의 몸의 회복을 넘어서 세상 사람들 모두의 지향점이라고 의미를 넓혀본다. 그리고 의사는 인간이 건강을 추구한다는 것을 대변하는 사람으로서 사회적 의미를 얻는다. 어라. 자연스레 의사의 역할 범주가 병원에서 세상으로 넓어졌다.

이어서 다른 질문. 

"물을 많이 마시는 게 건강에 좋나요?"

마침 신장·비뇨기를 배우고 온 직후라 콩팥의 기능 중 체액의 항상성 유지가 떠올랐다. 드디어 나름 의학적인 답변을 하게 되어 설레었다. 하지만 한 단어 한 단어 뱉을수록 확신이 줄었다. 우리 몸에서 콩팥 말고도 많은 것이 물의 흡수와 배출, 체액의 농도에 관여한다는 것이 떠올라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좋냐 나쁘냐를 묻는 간단한 질문에도 고려할 것이 너무 많다. 과연 어디까지 알아야 이 질문을 대답할 때 부족함이 없다고 느낄까? 내가 계속 배운다고 해도 의학에서 무지(無智)는 마치 원소가 무한대인 여집합과 같아서 아는 게 늘어난다고 해서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훗날에도 다를 바 없다면 환자들이 신뢰하기에 부족한 의사는 아닐까 염려됐다. 

[떳떳하게, 의대생]은 제주도 여행을 통해 의대생으로서의 자아를 찾아가는 시간을 사실적으로 잘 엮어냈지만, 소재와 주제가 약간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심사평 중에서) [사진=pixabay] ⓒ의협신문
[떳떳하게, 의대생]은 제주도 여행을 통해 의대생으로서의 자아를 찾아가는 시간을 사실적으로 잘 엮어냈지만, 소재와 주제가 약간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심사평 중에서) [사진=pixabay] ⓒ의협신문

이날 받았던 질문과 나의 대답은 좀처럼 잊기 힘들었다. 어쩌면 그들은 처음 만나 어색한 상황에서 공감대 형성을 위해 건넨 별 뜻 없는 질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나서도 공부하다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다시 대답하는 상상을 한다. 

신혜원 아주대학교의과대학 본과 2년 ⓒ의협신문
신혜원 아주대학교의과대학 본과 2년 ⓒ의협신문

의대생이라는 사실을 숨기려 했으나 의대생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 아이러니했다. 

의대생 4년 차, 어느새 졸업이 더 가까워졌다. 배울수록 의학은 복잡하고 다면적이었다. 알아간다는 느낌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흐려졌다. 가끔씩 의대생의 명패를 감당하기에 벅차 사람들이 날 의대생이 아닌 무제(無題)의 나로 바라봐주길 바랐다. 그리고 주변에서 하는 질문들은 내가 진정 의대생인가에 대해 세상이 시험하는 질문 같아서 대답을 통해 증명하려 노력했다. 요즘 들어서는 의학에서 완벽하게 아는 것은 지향점이자 마음가짐의 영역이며 달성은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대한 타협은 아닐지 걱정도 된다.

그러나 의사들의 '할 수 있다.'는 말보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이 나에게 더 진실하게 와 닿기에 이것이 진리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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