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과 품위

자율과 품위

  • 안덕선 고려대 명예교수 (전 의료정책연구소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12.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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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규제 가장 중요한 목표…'좋은 의료문화' 선도
의협, 회원 보호·좋은 의료문화 선도 위한 성찰 필요

안덕선 고려대 명예교수 (전 의료정책연구소장) ⓒ의협신문
안덕선 고려대 명예교수 (전 의료정책연구소장) ⓒ의협신문

한 나라의 의료는 문화적 현상으로 나라마다 경제·역사·정치 등에 의해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의과대학의 기본의학교육(Basic Medical Education)도 나라마다 조금씩 상이하다. 그러나 의사가 되기 위한 생의학적(biomedical) 지식과 기술의 교육은 국제적으로 어느 정도 표준화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신속한 전문의 진료도 우리나라 의료 문화의 특성이다. 각종 민원처리나 사회 일반적 행정 처리도 빨리 빨리가 기본인 사회가 됐다. 이런 사회 문화적 배경에서 우리나라 국민이 공공의료가 잘 발달한 유럽이나 캐나다와 같이 주치의를 만나는데 1주일 이상 소요되는 것을 참고 기다릴 수 있을까? 대답은 간단할 것 같다.

1주일 대기에 대한 환자나 가족의 불만이 대단할 것으로 보인다. 속된 표현으로 뚜껑이 열릴 사람이 수두룩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의사나 의료기관의 홍보를 당연한 듯이 여기고 비교적 의료광고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갖고 있다. 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의료윤리가 까다로운 선진국에서는 각종 미디어 매체에 가운을 걸친 채 등장하는 의사들을 자주 볼 수 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백색 가운을 걸친 의사의 영상매체 출연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고 윤리적으로 문제도 없어 보인다. 심지어 여러 의사가 동시에 출연해 가운을 입고 노래와 음악에 맞추어 박수를 치고 몸을 흔드는 장면도 보인다.

방송 매체에 인기 있는 단골 초대 의사가 된 후에 상업적 광고 출연도 서슴없이 할 수 있다. 의사라는 직책을 이용해 건강보조식품이나 건강관련 광고도 출연한다. 가족이 경영하는 업체를 위한 광고도 하고 있다. 

유럽여행을 해본 사람이면 길거리에 의료기관 광고나 의료기관의 이름이 네온사인 등 화려한 색채의 조명으로 된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대개 초록색 십자가는 약국을 표시하는 정도이거나 길거리 표지판에 종합병원 정도 표지판이 존재한다.

의료윤리가 까다로운 선진국은 의사의 이름과 진료과목을 표기하는 작은 동판 팻말 정도가 의원 간판의 전부다. 우리나라처럼 출신대학의 로고와 간단한 이력까지 붙이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는 아예 X편한, Y맨 등 다양한 형용사로 수식된 의원명칭이 등장하기도 한다.

선진국에서 의료기관의 간판에 대한 규제는 의사에 대한 개인정보 보호가 아닌 의료가 갖는 공공성에 대한 품위로 간주한다. 의료를 확대나 확장시키는 어떤 홍보성 시도도 금지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상가건물에는 다양한 업종이 입주해 있다. 어디인가 태국 마사지 숍 옆에 한방마사지 그리고 도수 치료를 써 붙인 의원 간판이 각각 다른 전문 과목으로 걸려있었다. 옆에는 교회와 치과, 약국 그리고 미용실도 있었고 같은 건물 내에 맥주집과 유흥업소 그리고 학원도 같이 있었다. 모든 업종이 간판이 눈에 잘 띄게 현란한 색깔과 무늬로 건물이 도배됐다.

우리나라의 문화에서 의료기관이 상가에 입주해 다른 업종들과 나란히 있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진보적인 것인지 아니면 직종간의 평등성의 구현인지 혼란스럽다. 선진국의 윤리조항상 의료기관의 상업용 건물 입주를 금하고 있는 나라도 있다. 대개 의료기관은 의료기관용건물(Medical Building)에 모여 있다.

처음부터 건물의 용도가 의료기관용으로 다양한 개인의원과 규모가 큰 곳은 검사실이나 방사선과가 입주해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지하철에는 수술 전후 사진을 걸거나 의사 자신의 얼굴을 열차내부의 벽에 붙이고 홍보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영어 방송채널에서 한 외국인 출연자는 지하철 내부의 모습을 보고 매우 비판적이었다. 사회적 천박성과 의사의 품위가 떨어지는 광고라는 의견이다.

물론 외국인의 눈에 비추어진 개인적 의견이다. 미용의 목적이 의술과 상술의 경계 선상에 위치한 특성에 기인하기도 할 것이다. 일본의 지하철이나 철도역에는 역사 기둥에 소아과·이비인후과 등의 작은 한자 간판을 발견할 수 있다.

간판은 있으나 그렇다고 의료기관이 지하철이나 역사에 있지는 않다. 외국은 이런 경우 별도의 환자용 동선이 확보돼 있어야 한다. 이제 지하철 역사 상가지역에서 의료기관이 생길 모양이다. 전염병 등 확산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지 궁금하다. 

우리의 의료문화에서 보여주는 의료정보 전달에 관한 매우 감각적이고 짙은 광고성 색채의 문화는 정말 바람직한 것인지는 한번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일본의 오래된 민속촌은 상가 간판이 오로지 오래된 나무판에 붓글씨로 씌여 있는 전통적 방식으로 문화와 역사가 잘 유지하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알록달록한 화려한 색채의 채색광고판이 난삽하고 현란하게 진열되어 전통 마을과 건축물에 대한 품위를 손상시키고 있다.

의료문화에서 적절하고 품위 있는 홍보는 어떻게 제도화시키는 것이 필요한지 의료계의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대한의사협회는 과거의 집행부에서 이미 속칭 쇼닥터 문제와 Social Media에 관한 윤리지침을 완성했다. 지나간 집행부에서 있었던 일이 다음 집행부에서 이음새 없이 연결이 되는 것은 거의 가설적이나 망상의 수준인 현실이다.

애써 만들어 놓은 각종 지침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윤리강령이나 윤리지침의 활용도도 어느 정도인가. 실상은 망극해 보인다. 

자율규제의 근간은 좋은 의사와 좋은 의료의 계도와 나쁜 의사와 나쁜 의료에 대한 방지가 근간이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어낸 의사에 대한 징계도 자율규제의 일부이나 전부는 아니다.

자율규제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곧 좋은 의료문화를 선도하는 것이다. 법정단체인 대한의사협회가 회원 보호와 좋은 의료문화 선도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 칼럼이나 기고 내용은 <의협신문>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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