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0병상 신설 의사 2700명 필요...지역 필수 의료 붕괴·의료 과잉 소비·재정 파탄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 22일 의정최 강연 "한국과 유사한 일본 타산지석 삼아야"
병상 수 세계 1위 상황에서 수도권에 11개 대학병원 분원을 설립하면 지역 필수의료 소멸이라는 '쓰나미'가 닥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왔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은 22일 의료정책최고위과정에서 '의사 인력 양성 정책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 특강을 통해 "11개 분원 설립 시 6600병상이 늘어나고, 필요한 의사 인력만 2700명에 달한다"면서 "지역의료 인력 수도권 흡수로 지역의료 인력 부족 및 경쟁력이 약화되고, 수도권 환자쏠림이 심화돼 지역 필수의료 붕괴와 지역 소멸을 가속화 하는 쓰나미를 맞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봉식 연구원장은 "6600병상 확충 시 연간 2조 4800억 원의 추가 요양급여비가 발생한다"면서 "병상 자원 과잉공급은 의료 과잉소비를 유발하고, 건강보험 재정 파탄과 의료붕괴를 유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비 증가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의사 수 확충을 주장하는 일부 학자와 정치인들의 태도에 관해서도 비판했다.
"요양급여비는 2010년 43조원에서 현재 100조원 규모에 달한다. 현재 의사 수를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17년 뒤인 2040년에는 333조원으로 폭증한다"고 우려한 우봉식 연구원장은 "현재 국가 예산이 600조원 규모인데 이렇게 증가하면 의료가 아닌 나라가 망한다"고 전망했다.
우봉식 연구원장은 "빵 집 주인이 더 많이 팔기 위해 죽어라 빵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병상은 만들면 채워진다. 어떤 식이든 입원시켜 과잉소비를 유발한다. 병상을 더 늘리고, 의사를 더 배출하는 것은 나라가 망하는 길"이라면서 "수도권 분원 설립을 제한할 수 있도록 병상총량제부터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젊은 의사들의 필수의료 기피 현상에 관해서도 "2017년 이대목동병원 사건 의료진 구속 이후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이 급감했고, 2023년 대구 응급실 뺑뺑이 사건으로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전공의 지원율이 떨어졌다"면서 "의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정부 대책과 사회적 질타를 견디며 진료하는 것이 한계에 달했다. 젊은 의사들은 감옥 대신 행복한 삶을 선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공공의료 확충이 만능해결책인양 주장하는 이면의 문제도 짚어냈다.
우봉식 연구원장은 "지방의료원의 전문질환(DRG-A) 비율이 민간병원의 20%에 불과하고, 재원일수는 10.64일로 민간병원(5.75일)의 1.85배에 달한다"면서 "주로 쉬운 질환을 보면서 오래 입원시키면 직원만 행복한 병원이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한 의료급여 등 취약계층, 아동과 모성·장애인·정신질환·응급진료·재난 및 감염병 등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국립대병원의 역할에 관해서도 쓴소리를 내놨다.
우봉식 연구원장은 "전체 의대 정원의 30%를 국립대병원에 배정했는데 공공보건의료 보다는 비급여에 매달려 더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응급의료와 필수의료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특히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앞서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이 어떤 준비를 하고, 의료제도를 개혁했는지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봉식 연구원장은 "대한민국이 의료 붕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 앞서 고령화를 경험하고, 유사한 의료환경을 갖추고 있는 일본의 의료개혁 정책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 한국은 의료보험제도와 노인요양보험제도 도입 당시 일본의 제도를 토대로 설계한 전례가 있다.
우봉식 연구원장은 "일본은 2010년 이전부터 의료개혁을 준비하고, 2015년에 플랜2025을 세워 실행하고 있다. 2025년 일본은 베이비 붐 세대(단가이 세대, 1945∼1949년 태어난 세대)가 75세에 도달하는 해다. 일본은 75세 이상자는 따로 후기 고령자보험을 든다. 왜냐하면 전체 의료비의 80%를 그때 쓰기 때문이다. 일본 보건의료 정책의 가장 핵심이 고령자를 관리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한민국은 75세 이상 데이터도 없고, 관리하지 않고 있다.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 우봉식 연구원장은 "일본은 이대로 가면 보건의료가 파탄난다며 병상 기능을 고도 급성기, 급성기, 회복기, 만성기로 구분했다. 대학병원 급성기병상과 요양병원 병상을 줄이고, 회복기병상을 늘려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봉식 연구원장은 "우리나라는 진료비 점유율이 해마다 점점 올라가고 있다. 감당이 안된다. 의원급은 유형별 요양급여비용 수가 계약하면 꼴찌다. 줄 돈이 없다. 1% 주고 알아서 비급여로 먹고 살아라는 거"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의 6600병상 확충은 의료 붕괴를 부채질 하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료 정상화를 위한 대안으로 ▲의료전달체계 재정립 ▲상대가치 및 지불보상체계 개편 ▲의과대학 학사 커리큘럼 개편 ▲전공의 수련교육 과정 개편 ▲전공의 T/O 조정 통한 수급 조절 ▲일차의료 중심 커뮤니티 케어 ▲지역사회 환자 후송 체계 구축 ▲의사 재교육과 시니어의사 활용을 통해 지역의료 인력 확보 등을 제안했다.
우봉식 연구원장은 "의료체계가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나라에, 사회에, 의료계 내부에 외쳐야 한다. 제대로 갈 수 있도록 같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