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교육부, 전국 40개 의과대학 대상 증원 수요·여력 조사
의협 "왜곡된 결과 도출 우려...객관적·과학적 근거로 볼 수 없어"
의료사고 부담 완화 등 정책 개선에는 한 뜻.."합리적 해법 논의"
보건복지부가 전국 40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증원 수요조사'에 들어간다. 의대정원 증원을 위한 사전준비 작업으로, 2025학년도부터 정원 조정을 목표로 해서다.
대한의사협회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해야 할 정원 조정 작업이, 자칫 '소원수리' 형태로 변질될 수 있다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교육부와 함께 이날부터 전국 40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대학별 증원 수요 및 수요역량 조사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대학별로 얼만큼의 정원 증원을 원하는지, 원한다면 새로 받은 학생들을 충실히 교육시킬 수 있을 만큼 대학의 여력과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라는 것이 정부 측의 설명이다.
복지부와 교육부는 각 대학이 제출한 증원 수요를 바탕으로, 그 타당성을 검토한 뒤 이를 바탕으로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속도감 있는 작업을 강조하면서 조사와 점검을 4주 내에 완료하겠다는 목표도 밝혔다.
조사 결과 증원 여력이 있는 경우 2025년 정원에 우선 고려하고, 증원 수요는 있지만 추가적인 교육 역량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있는 경우에는 2026학년부터 단계적으로 정원을 증원하겠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강력한 우려를 표명했다.
의협은 정부 브리핑 직후 입장문을 내어 "의대정원 수요조사는 이해상충에 따라 왜곡된 조사로 전락할 수 있다"며 "의과대학과 부속병원, 지자체와 지역 정치인 등 의대정원 확대를 마냥 바라는 대상의 희망만으로 결과가 도출된다면 조사의 객관성의 상실되고 과학적인 근거 분석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같은 이유로 선진국에서는 필요한 의사인력이나 적정 입학정원에 대한 추계를 주관적 수요가 아닌,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협의하고 있다"고 짚은 의협은 "우리나라 또한 의료시스템과 건강보험 재정, 의사 양성에 대한 정부의 지원 계획, 각 의과대학의 인증된 교육 여건과 능력 등을 종합해 신중한 의사 양성의 질을 제고하는 방안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대 정원의 대폭적인 증원이 현 필수의료 붕괴의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점도 재차 강조했다.
의협은 "소아·분만·중증·응급 등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필수·지역의료의 현실은 '밑 빠진 독'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라며 "필수의료 인력이 개인으로서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항아리 밖으로 이탈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구멍 난 필수의료의 빈틈을 먼저 보수하고 메꿔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객관적이고 과학적이지 못한 근거가 바탕이 된 잘못된 정책은 국가재정의 낭비와 사회적 부작용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양측은 합리적인 해법 모색을 위해, 상호 협의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정부는 이날 "현장 수요 조사와 의료계와의 협의, 사회적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정원 확대 규모를 결정하겠다"면서, 정원확대 규모와 함께 지역과 필수의료 분야 의사인력 유입을 위한 이른바 정책패키지도 함께 발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형사처벌 특례, 필수의료 분야 의료배상 책임보험 가입 지원 등 필수의료 종사자 민·형사상 부담을 완화 ▲중증응급과 고난도·고위험 의료행위에 대한 보상 확대, 필수의료 저평가 항목에 대해 수가를 인상하는 등 보상강화 ▲필수의료 근무여건 개선 등이 그 주요 과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계에서도 정부와 함께 충분한 의사인력 확대를 위한 논의에 열린 마음으로 동참해 주시기를 바란다"며 "정부는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협은 해당 과제들이 의료계의 지속 제안해왔던 사항이라고 확인하면서, 결과 도출을 위해 전문가단체로서 정부와 협의를 통해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의협은 "정부에서 준비하고 있는 정책들 중 의료사고 부담 완화, 수가 보상, 근무여건 개선 등을 통해 필수·지역의료를 지금이라도 회복시키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들은 의료계 또한 그간 강력히 제안해온 바"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어 "의협은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의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서 정부와의 어떠한 논의에도 최선을 다해 참여하고 있으며,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앞으로도 꾸준히 협의하고 협력해 나갈 것"이라며 "14만 의사들의 진심어린 목소리를 우리 사회와 정부가 부디 귀 기울여 주기를 절실하게 바란다"고 밝혔다.
40개 의과대학장들의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도 이날 입장문을 내어 정부에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종합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의대 수요조사와 별개로, 전국적인 증원 규모는 의정합의에 기반해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의료계와 정부가 협의해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의대협은 "의대 입학정원은 국민보건 향상과 사회적 수요를 감안해 필요한 경우 조정을 협의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의사 증원은 최근 불거진 필수의료 붕괴의 유일한 대책이 될 수 없으며, 수가정책 및 법적보호 강화 등 근본적인 제반정책이 반드시 선행,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전국적인 증원 규모 등에 대한 결정은 2020년 의정 합의에 따라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의료계와 정부가 협의해 결정해야 한다"고 밝힌 의대협은 "향후에는 정기적으로 의사수급을 모니터링해 의대 입학정원 규모를 조절하는 전문가 기구 또한 필수적으로 설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