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주취자보호법 재조명에 주취자 응급실 인계 증가 우려
복지부 "응급실 주취자 수용 의무화 시 응급실 안전 우려"
술에 취한 60대 남성이 집 앞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그를 집 앞까지 데려다준 경찰이 유죄 판결을 받자, 국회에 계류 중인 주취자보호법이 재조명되고 있다.
주취자보호법에는 경찰관 및 구급대원 등이 주취자에 대해 응급의료기관 등 보건의료기관에 긴급구호를 요청하거나 인계할 수 있도록 하고 인계 거절을 불가하는 내용이 담겨있어 주취자 보호 책임을 의료기관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은 16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서울 강북경찰서 소속 경찰관 2명에게 각각 벌금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지난 2022년 11월 112 신고를 받고 술에 취해 길가에 누워있던 60대 남성을 집 앞 야외 계단에 앉혀놓고 돌아가 해당 남성이 저체온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다.
이같은 법원의 판결을 두고 경찰 내부 게시판과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주취자 관련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게시글이 다수 올라오며,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된 4건의 주취자보호법도 함께 재조명되고 있다.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임호선·윤준병·전재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각각의 주취자보호법들은 주취자에 대해 긴급구호 또는 보호조치 등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시설 및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발의 된 법안 중 주취자 보호를 위해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지정하는 내용 등이 포함되면서 응급환자를 진료해야하는 응급의료기관 운영의 취지와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주환 의원은 주취자 보호조치에 경찰청장, 시도 경찰청장은 주취 상태 또는 자타해 주취자를 보건의료기관 등에 긴급구호 요청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호선 의원은 경찰관이 주취자의 상태·구급대원의 평가 등을 종합해 보건의료기관의 장에게 긴급구호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윤준병 의원은 경찰관 및 구조·구급대원은 주취자가 응급치료 등이 필요한 경우 주취자응급의료센터 등에서 주취 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겼다.
전재수 의원은 경찰관 및 구조·구급대원은 주취자에 대해 보건의료기관에 긴급구호 요청 또는 인계하도록 했다.
이주환·이호선·윤준병 의원은 주취자의 인계 거절을 불가하는 조항도 포함했다. 또한, 이호선·윤준병 의원은 지자체장이 지역응급의료센터 중 지역 주취자응급의료센터를 지정하도록 하고, 전재수 의원은 경찰청장·소방청장이 보건의료기관 중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지정해 운영하도록 했다.
주취자보호법이 재조명되자 의료계 내부에서는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A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지금도 경찰과 119가 별다른 의학적 판단없이 주취자들을 무작정 응급실로 데려놓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법안이 제정되면 더욱 많아질 것 같아 걱정스럽다"며 "응급실이 주취자를 위한 보호시설이 되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응급실을 방문한 주취자들이 환자와 의료진의 안전을 위협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도 법안 검토 의견에게 '신중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보건복지부는 "경찰관이 의료적 판단없이 주취 여부만을 고려해 응급의료기관에 주취자를 이송하는 경우 응급의료종사자들의 업무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응급의료기관의 주취자 수용을 의무화할 경우 안전한 응급실 환경 조성이 어려워 응급의료종사자뿐 아니라 일반 환자들의 생명·안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주취자 응급의료기관을 별도로 운영하는 내용에도 신중 검토 의견을 냈다.
보건복지부는 "주취자 응급의료기관이라는 개념을 별도로 규정하고 주취자 이송·처치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응급의료기관 운영의 취자와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주취자 보호는 치안 및 질서 유지를 위한 것으로 지역보건의료기관의 운영 목적과도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