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건정심 임기만료 앞두고 새 위원 구성...160개 단체에 공문 '이례적'
근로자 몫 2자리 놓고 공·사기업 노조 130곳에 위원 추천 요청...삼성화재 등 포함
공급자대표도 바꾸나? 한방병원협회·한약사회·한약유통협회 등에도 위원 추천권
보건복지부가 새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위원 후보로 대형 민간보험사 노조를 포함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건정심은 급여기준, 수가, 보험료 등 건강보험정책에 관한 사항들을 심의·의결하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이들이 건정심에 참여한다면 공보험인 건강보험 운영에 '직접 이해관계자'인 민간보험사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관여하게 되는 셈이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최근 9기 건정심 위원 추천 의뢰서를 가입자 및 공급자 단체에 발송하고, 그 결과를 취합했다. 8기 건정심 위원들의 임기가 올 연말 마감될 예정 임에 따라, 향후 3년간 건강보험정책 심의를 담당할 새 건정심을 구성하기 위한 작업이다.
건정심 위원 추천 의뢰서는 무려 160여개 단체에 발송됐다. 통상 건정심 참여단체 20∼30여 곳 안팎에 공문이 보내져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규모가 이례적이다.
예년에는 정부가 건정심 참여 단체를 선정한 뒤 해당 단체에 구체적으로 어떤 위원이 참여할 것인지를 묻는 방식이었는데, 이번에는 이 같은 과정 없이 160여개 단체가 수신자로 지정되어 추천 의뢰 공문이 왔다는 것이 의료계 안팎의 설명이다.
공문 수신단체에는 특히 공·사기업 노조가 130여곳 가까이 포함됐다. 현행 법령상 노조가 건정심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자리는 근로자 대표 두 몫으로, 무려 '65배수' 추천을 받은 셈이다.
그간 건정심 근로자 대표로는 국내 노동계의 양대노조이자 산하에 의료계 유관 노조를 가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산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산하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이 오랫동안 참여해왔다.
이번에 보건복지부의 위원 추천 공문을 받은 노조 가운데는 다수 사기업 노조가 포함됐다. KT 노조나 LG전자 노조, 엘지디스플레이노조, 롯데마트노조, 전국이마트노조, 파리크라상 노조 등이 대표적인 예로, 이전에 건정심 참여 경험이 없다. 직역 노조로 대한가수노조 등에도 건정심 위원 추천 공문이 갔다.
특히나 눈에 띄는 것은 삼성화재노조와 삼성생명보험노조, 삼성화재평사원협의회노조가 위원 추천 대상에 포함된 점이다. 삼성화재와 삼성생명보험은 대표적인 대형 민간보험사다.
한 공급자 단체 임원은 "기존에는 보건의료 관련 가입자 단체 몇 곳을 특정해 위원 추천을 받아왔다"면서 "이번에는 아예 160개 단체에 추천 받아서 정부 입맛에 맞는 단체를 선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손해보험, 생명보험 노조에도 추천하라고 공문을 발송했다"면서 "공보험 건정심에 민간보험 단체를 포함하는건 놀라운 걸 떠나서 화가 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급자단체 관계자는 "공보험인 건강보험 운영권한을 사보험에 내주려는 시도"라면서 "공보험의 안정적 발전을 포기한 행태이자, 의료민영화를 위한 포석"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건정심 참여 공급자단체도 교체를 꾀하는 분위기다. 대한한방병원협회와 한약사회, 의약품유통협회와 한약유통협회 등이 새롭게 위원 추천 공문을 받았다.
건정심 내 공급자단체 몫은 모두 8자리다. 법령으로 참여 단체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으나 그간 대한의사협회, 병원협회,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 간호협회, 약사회 등 의약 6단체와 제약바이오협회가 공급자를 대표해 건정심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왔다. 새로 추천 공문을 받은 기관에서 건정심 위원이 선정되면 기존 공급자단체 가운데 일부는 건정심 참여가 제한된다.
건정심 위원 개편 논란과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새 건정심 구성을 앞두고 유관 단체들에 위원 추천 공문을 보낸 것 뿐"이라며 "방향을 정해둔 것은 없다. 논의를 거쳐 위원 선정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