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체계 지속 가능성 뒷전…의대 입학정원 65% 증가시켜 의료대란 자초"
이규식 명예교수 'ISSUE PAPER' "정책 방향 찾지 못한 채 동력 상실" 진단
현재 패러다임으로 의료체계를 운영하면 2030년대 중반에 붕괴를 전망한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가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으로 붕괴 시기를 앞당길 것"이라며 암울한 예고를 내놨다.
이규식 명예교수는 'ISSUE PAPER' 최근호에 발표한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를 위한 과제'를 통해 "정부가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내포하고 있는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은 이번 의료대란을 보면 짐작이 간다. 지방의료기관 의사 구인난이 발생한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제대로 마련할 생각은 하지 않고, 대뜸 의사 부족이라는 표피적 문제에 집착해 의대 입학정원을 무려 65%나 증원하는'용단'을 내려 의료대란을 자초했다"면서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라는 단순한 숫자만 놓고 의대 입학정원을 65%나 증가시켜 의료대란을 자초하는 정부를 볼 때 과연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의료체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기가 막힌다"고 질타했다.
의료체계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의료제도와 재원 조달 등 주된 문제는 뒷전으로 미루고, 의사 수 증원 등 표피적인 문제에 매달리느라 의료정책 방향을 찾지 못한 채 동력을 잃어버렸다는 진단이다.
이규식 명예교수는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보험재정의 지속 가능성 ▲의료서비스의 지역적 불균형 ▲과잉 의료 및 의료비 증가 등을 꼽았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지속적인 재정 부담을 겪고 있다. 재정 적자가 누적되고 정부의 추가 재정이 필요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힌 이규식 명예교수는 "의료급여 확대와 노인 인구 증가가 의료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규식 명예교수는 "현재의 의료 파동은 1999년 건강보험 통합과 보험급여제도 등 한국형 의료관리제도 개혁 과정에서 보험의료에서 영리를 취해서는 안된다는 사회보험의 원칙이 무너지고, 당연지정제를 채택하면서 공급자 시장을 분리하지 않았으며, 의료이용을 부추기는 실손보험을 허용하는 등의 여파로 인해 초래된 문제"라고 짚었다.
아울러 건강보험 통합 과정에서 대진료권·중진료권 폐지로 인해 지역화가 무너지면서 지역의료를 붕괴시켰다고 진단했다.
의료보장제도에서 제공하는 의료는 공공의료이기 때문에 별도로 공공의료를 정의하지 않고 있음에도 우리나라는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민간의료기관을 정책에서 차별한 점도 의료 파동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규식 명예교수는 " 공공의료에 대한 잘못된 정의로 인하여 정부의 정책 집행이 매번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문제의 발단인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을 폐기할 생각은 하지 않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공공의료가 취약해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공공병원의 신설이 필요하다는 한심한 생각만 하고 있다"며 "더 큰 문제는 공공병원이 적자를 내도 적자의 원인분석은 하지 않고 '착한 적자'로 둘러대어 공공병원 운영에 도덕적 해이를 정부가 조장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규식 명예교수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을 포함한 의료체계의 붕괴를 막는 일은 매우 시급하다"면서 "의료체계가 붕괴하는 원인을 분석해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다른 국가는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의료개혁을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