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남용 사건 잇딴 이슈화…관리체계 개선 급부상
의협, 전담 TF 구성 자정 움직임 "가이드라인 마련"
이 논란의 한가운데 의료계가 있다. 수년 전부터 부작용 문제가 거론돼온 프로포폴이 다시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된 것은 지난 8월 서울 강남의 한 산부인과에서 발생한 사체 유기사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해당 의사가 고인이 된 내연녀에게 프로포폴을 투약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부터다.
이달 초에는 피부과를 운영하던 40대 여의사가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숨진 여의사의 팔에는 주사 흔적이 있고 주변에는 프로포폴이 놓여 있었다. 평소 고인은 피로를 느낄 때 자기 병원에서 프로포폴을 가져와 상습적으로 이를 투약한 것으로 전해졌다.
프로포폴은 성형수술이나 내시경에 널리 쓰이는 정맥주사용 수면 마취제이지만, 깨어났을 때의 원기 회복감과 환각 효과 등 약물 의존성이 문제돼 2011년 2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됐다. 당시 대한개원의협의회는 "마약류 지정이 소비자의 불편을 야기시키고 유용한 약품의 사용 기회를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의 반대 성명을 낸 바 있다.
정부가 개원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향정 지정을 강행한 이유는 현행법상 향정약을 취급할 경우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판매·수수 등에 관한 관리대장을 의무적으로 작성·비치하고, 관리 및 저장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반하면 관리 의무를 지닌 의료인은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향정 지정 그 후, 사건사고 끊이지 않는 이유
그러나 향정 지정 1년 8개월이 지나도록 프로포폴을 둘러싼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올해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의 집중 타깃이 됐다. 문정림 의원(선진통일당)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료를 인용, 프로포폴 관련 사망자가 8년간 44명이라는 통계를 공개하면서 향정 지정 이후에도 오남용으로 인해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점에 주목했다.
문 의원은 "향정 지정이 프로포폴 오남용 방지의 전부인 것처럼 주장하던 식약청이 과연 제도에 따른 마약류 관리, 감독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면서 "단순히 프로포폴의 공급량 감소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공급 내역 및 유통과정에 대한 관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의진 의원(새누리당)은 경남 모 내과의원에서 30대 여성에게 연간 59건에 달하는 프로포폴을 투여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였다. 향정신성의약품에 있어서는 비급여라도 처방사실을 보고하거나, 금지약물의 경우 의약품처방조제지원서비스(DUR)에 투약일수와 관계없이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내시경 검사 등 의학적 목적으로 오랜 기간 프로포폴을 사용해온 의사들은 "다소 과장되게 알려진 면이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향정 지정 이후 관리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 만큼, DUR에 주사제를 포함시키는 안 등의 추가적인 대책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언론 보도 과장…전체 유통량 관리해야"
김용범 대한개원내과의사회 부회장은 "10년 동안 내시경에 프로포폴을 이용하면서 중독환자는 딱 1명 봤는데, 내시경을 받은 뒤 도망가서 잡을 수는 없었다. 그만큼 드문 사례라는 얘기"라며 "일부 사람들이 마취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해 문제된 걸로 본래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에까지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마약을 다뤄봤다는 이유로 비전문가인 경찰이 한 경제 라디오에 출연해 프로포폴 사용 금지를 주장하는 것을 보고 황당했다"면서 "DUR을 하든 뭘 하든, 불법으로 약을 유통하면 걸리지 않으니 별 의미가 없다. 전체 유통되는 양을 관리해야만 부작용 사건이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취과 학계에서는 프로포폴 오남·용 사건을 계기로 의료인과 환자들이 수면마취의 위험성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현재 국내에서 비 마취전문의에 의해 시행되는 수면마취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만큼 환자 상태를 적절하게 감시하지 못하는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대한마취과학회는 대한의사협회에 보내온 의견 회신문을 통해 "제도적으로 프로포폴 사용에 관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반드시 의사의 감시·감독 아래 투여돼야 하며, 산소와 감시장치, 소생장비가 갖춰져 있는 의료기관에서 투약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환자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의료계 차원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책으로 떠오른 방안은 프로포폴 안전 사용 및 치료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이다. 프로포폴 이용에 대한 적응증을 명확히 정하고, 이에 대한 의료인 사이의 합의가 이뤄진다면 '환자가 요구한다고 무조건 놔주는' 일부 병원의 행태도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강남의 한 성형외과 개원의는 "환자가 대놓고 요구해서 어쩔 수 없이 프로포폴을 주사하는 경우가 있다. 마취할 때 미다졸람을 꺼내면, 프로포폴 아니냐고 하면서 다시는 오지 않는다"면서 "옆 병원에서는 해주는데, 여기는 안 해주냐고 따져 물으면 할 말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향정 관리는 맨입으로?"…적절한 수가 보상 '대두'
황규석 대한성형외과개원의사회 기획이사는 "프로포폴에 대한 사건들이 다소 과장되게 알려졌다"고 강조하면서 "의료계 자체적으로 적응증을 정해 절개할 때나 수술시간이 1시간을 이상 걸리는 경우에만 한다든지, 주사를 이용해 하는 간단한 시술에는 쓰지 않는 등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는 대한의사협회가 제시한 향정신성의약품 관련 종합대책과도 상통한다. 의협은 17일 제16차 상임이사회에서 프로포폴 오·남용 문제에 대한 대책안을 확정하고, 향정신성 의약품에 대한 DUR과 약품사용내역 보고의무 방안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또 의료인의 프로포폴 안전 사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 각 학회 및 개원의사회, 16개 시도의사회를 통해 적극 홍보하면서 약물의 안전하고 올바른 사용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회원 연수교육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대책안을 전담할 태스크포스팀은 백경우 의협 의무이사와 송형곤 의협 공보이사를 주축으로 박수헌 가톨릭의대 교수(서울성모병원 내과)·박현태 고려의대 교수(고대안암병원 산부인과)·최정호 성형외과 원장 등 10명으로 구성됐다.
송형곤 의협 공보이사 겸 대변인은 "주사제 DUR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의협의 기본 입장"이라며 "다만 향정신성의약품의 경우 국민 건강을 위해 입장을 조금 선회한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향정약 등 주사제를 DUR에 포함시킬 경우, 의료인으로서는 그만큼 작업량이 늘어나는 것을 고려해 적절한 수가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원표 대한개원내과의사회장은 "안그래도 프로포폴은 향정에 묶여 있어 사용량 등을 정기적으로 보고하게 돼 있는데, DUR까지 적용되면 환자마다 프로그램을 검토해줘야 하는 등 힘이 더 들어간다. 아무런 보상 없이 참여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국민 건강을 위해 수용할 수 있는 정책이라도 적절한 수가 보상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