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법원 지난해 판결...한국 '리베이트 쌍벌제' 와 대조
의약품 리베이트 사건으로 의사 19명이 기소되고 1300명이 행정처분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독일 최고법원이 의사들의 리베이트 수수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독일 연방법원은 지난해 3월 29일 자국의 대형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일선 개원 의사들에게 해당 회사의 의약품 처방 총액의 5%를 현금으로 지급한 사건에서 '형법상 처벌할 수 없다'며 영업사원의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의 피고는 영업사원이지만 연방법원은 '사적 영역에서의 뇌물죄'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 역시 죄가 없음을 간접적으로 판시했다.
첫 번째 쟁점사항은 건강보험 체계 속에서 활동하는 모든 의사를 '공무원'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독일 형법은 공무원이나 공공서비스를 위한 특별한 의무를 지닌 사람이 자신의 공적행위에 대한 대가로 이익을 약속받거나 수수한 경우, 6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연방법원은 "처방된 의약품이 건강보험제도의 재정지원을 받는 의약품이고, 건강보험의 재정이 공적체계를 구성하고 있으나 의사들에게 공공을 대표해 일하는 자로서의 지위를 부과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의사의 모든 행위는 각 환자를 위한 행위이지 건강보험제도나 보건행정을 위한 행위가 아니고, 따라서 의사들에게 공무원과 유사한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연방법원은 공공병원(시립·도립·국립)에 고용된 봉직의들에게는 독일법상 공무원의 지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처방의 대가로 주어진 이득은 처벌대상 아니야"
두 번째 쟁점은 사적인 거래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의사가 처벌 대상인지 여부다. 독일 법은 상업적 거래관계에서 물품이나 상업적 서비스의 구매에 대한 대가로 뇌물을 요구하거나, 수수하는 기업의 대표 또는 직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독일 검찰과 하급심은 리베이트를 수수한 의사들에게 건강보험의 대표로서의 지위를 인정함으로써 뇌물수수죄를 적용했다. 그러나 연방법원은 '건강보험과 의사는 동등한 지위를 가진 별개의 객체'라고 지적했다.
즉 의사는 보험자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환자에 의해 선택되는 자영업자라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의사가 의약품을 처방하는 행위는 오로지 환자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며, 비록 의사의 처방이 건강보험 재정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해도 이 같은 사실관계는 변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결국 처방의 대가로 개원의들에게 주어진 이득은 형법상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인 것이다.
이번 연방법원의 판결은 현행 독일법상 의사의 리베이트 수수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일 뿐, 의약품 리베이트에 대한 윤리적·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리베이트 쌍벌제...터무니 없는 입법
실제로 연방법원 판결 후 독일 정치권 내에서는 리베이트를 수수한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 법제화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독일의사협회는 윤리지침을 통해 뇌물을 수수한 의사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므로 자율적인 방법으로 리베이트 수수를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독일 연방법원 판례가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점은 건강보험과 의사를 종속적 관계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사 개개인을 건강보험이라는 국가 시스템의 일부로 바라봄으로써 의사의 모든 행위를 공적인 영역에서 재단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엄연히 구별되는 시각이다. 독일 연방법원의 판단대로라면 의약품 리베이트가 보험약값에 반영돼 건보재정을 악화시키는 주범이 되므로 리베이트를 수수한 의사를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의 '리베이트 쌍벌제'는 터무니없는 입법이다.
더욱이 보험약값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우리나라에서 의약품 리베이트와 건강보험 재정은 아무런 연관이 없기 때문에 리베이트 쌍벌제는 더욱 설득력을 잃게 된다. 우리나라의 법학이 독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리베이트를 바라보는 두 나라의 상반된 법적 관점을 더욱 아이러니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