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 갇힌 말들
진료실에 갇힌 말들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1.05.2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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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종(경기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
김연종 원장
김연종 원장

두어 평 진료실에 갇힌 말들을 한데 묶어 다시 세상에 내 보낸다. 한국의사시인회 제9시집 <진료실에 갇힌 말들>, 어느덧 아홉 번째다. 지난 해 <코로나19블루>에 이어 이번에도 시집을 통해서만 서로의 안위를 확인한다.

우리 모두의 삶이 황폐해졌습니다.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생각되지만 마땅한 방법이 보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밖에 없는 이때 우리들의 詩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소박한 심정으로 한국의사시인회 아홉 번째 사화집을 펴냅니다.

시집 서문에 피력한 홍지헌 회장의 소감이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비대면 총회를 통해 회장직을 수락하고 역시 비대면으로 활동하고 있는지라 코로나 이후 한번도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 물론 다른 회원들도 마찬가지다. 

서로 대면하지 못한 채 문학적 교류를 지속하고 있지만 글로서라도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우편으로 배달된 시집을 펼쳐본다.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듯 한편 한편 시들을 읽는다. 시인들이 쓴 두어 줄 산문인 '시인의 말'에서 회원들의 근황과 함께 진료실에 갇힌 말들을 어렴풋이 짐작해 본다.

"내내 사각의 진료실에 갇혀 마스크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하루……마음 놓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킬 수 있으면 행복이다. 그저 봄이 봄다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북 봉화에서 <봉화제일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최예환 시인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코로나 귀로나 봄은 곁에 있고 입에 걸린 마스크는 필수품이 되어버린 2021년, 2평 진료실에 갇힌 말들을 나열해본다. 청진기로 들어오는 호흡, 액정이 읽어내는 체온들 문전박대 당한 해시태그는 38C를 넘어서고 복면으로 가린 불안이 불러온 춘곤증은 늘어진 청진기를 깨우는 오후 4시" 

성동구에서 <아이편한 소아청소년과>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송명숙 시인의 진료실 풍경이다.

"뭐든 단순해지고 있다. 바뀐다는 것이,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자세인지 되새긴다. 지난 1년간 관리, 적응이라는 두 단어를 배웠다. 그런데도 우리는 새로운 선물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대전 <을지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로 근무 중인 김호준 시인, 바쁜 중에도 열심히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를 쓸 때면, 벌판에 서 있는 깃발이 된 느낌이다. 한자리에 붙박인 평생의 불운을 누가 옮겨 꽂을 것인가. 색 바래도 깃발은 깃발, 지친 새 한 마리가 부리를 닦는다. 아마 생전에 헝겊 노릇이나 하면서 살아온 게 전부였나. 이제는 바람에 몸통 흔들며 펄럭펄럭 아우성만 칠 것이다." 

<청라베스트재활요양병원> 진료원장인 서화 시인은 시 쓰는 어려움을 토로한다. 

"코로나19, 아직도 2.5단계 여전한데 사별(死別)의 거리 도저히 가늠할 수 없어 먼 산 바라보다 높푸른 하늘 쳐다보네." 

논산에서 개원한 권주원 시인이 세 편의 시와 '시인의 말'로 지난 해 겪었던 상처의 큰 슬픔을 다독이고 있다. 절제된 감정으로 덤덤히 말하고 있지만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다시 한 번 위로의 말을 전한다.

"요양원 4년, 결혼 소식 가득한 4월 달력에 푸른색 글자 동그라미/ 한 해가 가고 엄마는 이제 그만 오란다." 

대전에서 <나라 신경정신과>를 운영하고 있는 박권수 시인은 하수상한 시절에 요양원에 계신 노모와의 만남을 애틋한 심정으로 그리고 있다.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봄은 다시 찾아왔다. 봄날에는 이런 봄날에는 따스한 봄볕이 괜찮다, 괜찮다, 하고 다독여주기도 하지만 서럽고도 비현실적인 이런 봄날에는 그냥 모두 다 놓아버리고 양지바른 곳에 있는 그 옛날의 배냇속에서처럼, 영원(永遠)처럼 안온(安穩)해진 벤치에라도 몸을 파묻고 눈을 감고, 을숙도쯤일까? 조으듯 하직하듯 먼 남쪽나라로 떠나도 좋으리."

광명 <우리내과> 원장인 주영만 시인은 희망이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리라는 간절한 소망을 말한다.

"환자의 팔에 들려온 안개꽃 한 다발이 조용히 미소 짓고 있다.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잘사는 것인지 정답을 찾기는 여전히 힘이 든다." 

대구에서 개원한 관계로 맨 먼저 코로나의 아픔을 겪었고 슬기롭게 극복한 <박언휘 종합내과> 원장이자 <시인시대> 발행인인 박언휘 원장은 여전히 환자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또한 시대의 아픔을 고민한다.

우울한 시절을 보내면서도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은 다른 모든 회원들도 비슷하다. 코로나라는 암벽에 부딪혀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시기에도 열심히 진료하고 여전히 시를 쓰며 마음을 추스른다. 

오늘도 진료실에 갇힌 말들은 소통을 꿈꾸고 있다. 

이번 주 부터 동네의원에서도 코로나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다시 만나서 회포를 풀고 그동안 못 다한 문학에 대한 갈증을 실컷 풀어보는 것도.

소통의 부재중에도 송명숙 시인과 한경훈 시인의 합류는 한국의사시인회의 큰 수확이라 할 수 있다. 문학하는 의사 특히 시 쓰는 의사를 찾기 힘든 형국에 신인의 탄생은 큰 힘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사시인회는 신인들의 참여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의사 이면서 등단 시인이면 누구나 참석이 가능하다. 지면을 통해서나마 신인들의 합류를 적극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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