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白子)의 미수문답(米壽問答)
백자(白子)의 미수문답(米壽問答)
  • 황건 인하의대 교수(인하대병원 성형외과)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08.1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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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호 서울대 명예교수(해부학·의학교육학)의 미수(米壽)를 맞으며
황건 인하의대 교수
황건 인하의대 교수

제자들의 교육에 평생을 바쳐오던 백자(白子·1934∼ )가 2021년 미수(米壽)를 맞았다.

문하생들은 연회를 준비하려고 했으나 전해부터 계속되는 역질 때문에 모일 수가 없었다.

13명의 제자들이 스승의 장수를 비는 축문을 모아 책자를 만들 것을 준비하던 중에, 의외로 제자들은 스승이 보낸 서신을 받았다.
 
오늘은 평소 생각을 깊이 해야할 과제를 하나 꺼냅니다. 

사람이 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갖춰야 할 반드시 필요한 요건은 무척 많습니다. 당장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도 있어야 하고 가족도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적절한 교육도 받아야 하며 가족을 지키기 위한 재산, 건강, 배우자, 친구도 있어야 합니다. 물론 나를 낳아준 부모, 스승도 있어야 하지요. 이걸 지키기 위한 명예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다 우리 모두가 살아온 과거로 보아 여러분은 이젠 남들에게 존경도 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것 말고도 당장 지켜나갈 생활 태도, 자세 등 수없이 많다고 봅니다.

이 많은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고르는 것은 오로지 한 사람의 생각에 따른 순위 문제이지요. 그러니까 정답이 따로 없고 사람마다 다 다를 수 밖에 없답니다. 이 많은 것 중에서 지금 여러분 나이에 '지금 꼭 갖추고 있어야 할 것 3가지'를 꼽으라면 여러분은 무엇을 우선으로 꼽겠는지요? 

나는 나대로의 생활 철학이 있고 살아온 방향·지표도 있으며, 지금 나이에도 앞으로 가야할 남은 길 청사진도 늘 머릿속에는 그려져 있지요(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지만). 여러분 생각을 한번 듣고 싶습니다.

현직에서 막 물러나는 수제자 완자(完子·1956∼ ) 그것은 '건강'이라고 생각했으나 나머지 둘을 선택할 수 없어 답신하지 못했다. 

50대와 60대 초에 들어선다른 제자들도 스승이 던진 화두에 쉽게 답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평소에 판단력과 처세술이 부족해 출세하지 못하였던 자건(子健·1957∼)만이 간략한 답신을 보냈다.

"이순을 지난 저의 나이에는 지혜, 판단력, 처세술 이 세가지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스승은 그에게 스스로 물은 질문에 대한 답이 담긴 장문의 답신을 보냈다.

지혜, 판단력, 처세술. 나도 공감이 많이 갑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강력한 세 필수 조건이지요. 이것들을 갖추기 위해 우리는 교육도 받고, 사회 생활에서도 그 능력을 얻으려고 사람들은 끊임 없이 노력하지요.

사람은 예전에는 인생 칠십고래희(七拾古來稀)라고 해서 나이 60을 넘기는 것이 매우 드문 일이었지만 지금 우리는 이미 백세시대(百歲時代)에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는 시대에까지 왔습니다.

무엇이 이렇게 바꾸어 놓았을까요?

사회의 변화, 전쟁의 종식, 농업기술 발달이 가져온 식량의 개선, 과학의 발달에 따른 생활 방식의 개선도 있고 여기엔 종교적 신념의 개선에 따른 개인 마음가짐의 변화도 큰 몫을 해왔다고 봅니다. 이에 더하여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 의학(지식, 기술)의 있어 이런 변화가 온 것이라고 봅니다. 

이 긴 세월 동안 그만큼 사람은 해야할 일도 많아지고 나이가 듦에 따라 갖추어야할 필요 사항도 계속 바뀌어 갑니다.

나이에 따라 사람이 살아가는 꼭 필요한 사항도 계속 바뀝니다. 이걸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어렸을 때: 부모, 친구, 가정
2. 커갈 때: 교육(지식, 지혜, 기술, 태도), 선생(스승), 친구
3. 좀더 커졌을 때: 고급 지식(판단력, 응용력, 문제 해결능력), 전문교육(특수 지식, 기술, 태도), 사람에 대한 교육. 앞의 전문교육은 대학에서의 교육을 통해, 뒤의 두가지는 대학원에서의 교육을 통해.
4. 사회생활 할 때: 직장 적응능력, 직무수행능력, 집단에 대한 이해 능력, 의무감, 협력정신, 책임감, 희생정신.
5. 결혼할 때: 애정, 가정에 대한 인식, 기본 재력, 경제 판단력, 생활 예산 조달 능력
6. 좀더 나이 먹은 뒤: 자식, 가족, 이들을 먹여 살릴 재산, 유대감, 친구
7. 아주 나이 많아진 뒤: 건강, 친구, 가족,
8. 생을 마감할 때: 가족, 사회(직업 세계)를 위한 업적, 명예, 존경심.

대략 이렇게 정리 되겠네요.

현직에 있는 동안 이러한 덕목들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기 바랍니다.

스승으로부터 사람이 성장하고 일하며 늙어갈 때 꼭 배워야 할 '교육목표'에 대해 정리된 목록을 받은 자건은 미수를 맞은 스승의 또렷한 정신과 건강에 안도했으며, 이 목록을 살펴보며 자신이 이제껏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됐다.

위와 같은 미수문답 이외에도 자건이 기억에 간직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스승이 평소에 말하고 몸소 실행하였던 '정법안장(正法眼藏)'이었다. 

"좋은 선생님이 되려면 먼저 좋은 학생이 되어야 한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 이 글은 백상호 서울대 명예교수(해부학·의학교육학)의 미수를 맞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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