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경험평가' 의료기관 서열화 도구 전락 안 된다
'환자경험평가' 의료기관 서열화 도구 전락 안 된다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1.09.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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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불만 생길 수밖에 없는 의료체계 속 의료인·의료기관에 책임 전가
정부 보상제도 연계 추진 '불합리'…평가대상 의원급까지 확대 예정
의협 의정연 "한국 실정 맞는 환자경험 객관적 평가 문항개발 절실"
[사진=김선경 기자] ⓒ의협신문
[사진=김선경 기자] ⓒ의협신문

'환자중심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젠 '근거중심의학'과 함께 현대의학의 두 줄기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환자중심의료의 객관적 지표를 삼기 위한 '환자경험평가'에 대한 국내 의사들의 인식은 낮게 나타났다. 

왜 그럴까. 이유는 정부의 졸속적이고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는 환자중심의료라는 명분으로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를 진행하지 않고, 제대로 된 의견 수렴없이 일방적으로 환자경험평가를 시행했다. 환자경험평가 기준의 모호성, 사전홍보 및 피평가자 공유 부족 등 의료계가 우려했던 문제가 조사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국 의료현실에 맞는 환자경험평가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최근 <환자중심의료 평가 도구 개선 방안>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환자중심의료'가 '환자지시의료'로 변질되지 않도록 올바른 정의를 제시하고, 의료경험평가가 의료 통제 및 관리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 2017년과 2019년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환자경험평가를 시행했다.

두 차례의 환자경험평가는 환자중심의료에 대한 가치와 이론적 차원의 충분한 논의 없이, 목적과 필요성에 대한 공감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돼 의료에 대한 통제와 관리 수단에 머무르며 평가 의미가 퇴색했다.

실제로 의료 현장은 그로 인해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고, 앞으로도 다양한 문제점들이 예상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환자경험평가 대상을 기존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 입원 영역에서 전체 종합병원과 전문병원, 의원으로 점차 확대하고, 평가 영역도 만성기 입원과 외래 영역까지 넓힐 방침이다. 또 평가 결과를 활용해 가감지급 등 보상제도와 연계할 계획도 마련 중이다. 

연구보고서는 먼저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 평가 적용 문제를 지적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환자경험평가는 미국 CMS(Center for Medicare & Medicaid Services)의 HVBP 인센티브 방식을 준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다보험자가 의료기관들과 계약을 맺고 있어 평가 결과에 따라 계약 단가가 달라질 수 있어 환자경험평가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이라는 단일 공보험과 당연지정제에 예속된 저수가 체계에서 어쩔 수 없이 박리다매식 운영에 내몰리고 있는 한국 의료기관의 현실을 외면한 채 평가결과가 낮은 기관의 급여비를 빼앗아 우수평가기관에 보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는 진단이다.

국내 의료기관들은 환자의 의료서비스 경험 정보가 치료 질에 중요한 요소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 환자경험 측정을 통해 ▲진료 개선 ▲전략적 의사결정 강화 ▲환자 기대치 충족 ▲의료성과 관리 및 모니터링 등에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보고서는 제대로 된 환자경험평가를 위한 첩경으로 올바른 측정 방법과 평가 접근 방식을 선결조건으로 꼽았다. 부적절하게 설계된 측정 도구로 수집된 자료들은 왜곡된 결과를 초래하고, 자원 할당 및 결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와 함께 한국의 의료체계 아래에서는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이 환자중심의료를 실천하고자 해도 의료현장의 법·제도·규제 등 여러 가지 장벽에 맞닥뜨리며 물러설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심평원 환자경험평가에 대한 개선 방향도 제안했다. 

연구보고서는 먼저 환자경험평가에 따라 등급을 부여할 경우 '사례혼합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료 경험은 연령·성별·건강상태·교육수준·거주지역·성향·소득·이전 경험 등과 같은 다양한 특성과 관련이 있는 까닭이다.

다음은 우리나라 의료환경에 맞게 환자경험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적절한 문항개발이다. 현재 의료체계에서는 의료인이 환자가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충분히 설명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인식이다. 

또 입원기간 동안 수술 및 시술여부, 주관적인 건강상태가 아닌 과거 1년 동안의 질환 및 건강 상태, 환자 질환의 중증 상태 등에 대한 보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와 아닌 환자, 응급치료를 받는 환자와 비응급치료를 받는 환자, 입원기간 동안 수술이나 시술을 받은 환자와 받지 않은 환자 등이 인지하는 의료서비스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건강결과 측면인 의학적 개입에 대한 효과를 평가하는 부분도 추가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현재 OECD는 환자중심 보건의료 구현에 활용할 목적으로 기존의 환자경험측정(PREMs)과 주요 우선 영역에 대한 환자결과측정(PROMs)을 종합해 환자중심 보건의료체계 성과를 평가하는 PaRIS(Patient-Reported Indicators Survey)를 진행 중이다.

환자결과측정은 환자 개인적 수준에서 수술 혹은 임상경로가 본인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할 수 있으며, 수술 혹은 임상경로에 대해 의료진과 의사결정을 함께 할 수 있는 실시간 자료를 제공하고, 비교 가능한 측정도구를 통해 본인의 측정결과를 국내외 다른 환자와 비교할 수 있게 해준다. 
 
연구보고서는 환자중심의료가 보건의료체계 전반의 범주에서 논의되고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들의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 보건의료체계를 지속하면서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책임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환자경험평가 역시 단순히 가감지급 등을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되며, 의료기관의 서열화를 목적으로 이뤄져서도 안 된다고 되새겼다. 정부는 평가 점수로 순위를 매겨 의료기관 간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의료서비스 질 향을 유도하지 말고, 의료진이 환자중심의료를 온전히 실천할 수 있는 최상의 의료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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